딸아이가 스케이트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요즘 여섯 살 딸아이가 롤러스케이트를 배우고 있어요. 바퀴 달린 신발을 즐겁게 타는 언니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고 싶었나 봅니다. 잔뜩 기대한 딸과 처음으로 롤러스케이트 장에 간 날,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첫 발을 내딛은 딸은 한 걸음도 가지 못하고 넘어졌어요. 잔뜩 기대한 마음과 달라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딸아이는 그 이후에도 계속 롤러스케이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첫날 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딸아이가 넘어지는 것이 무서웠어요. 계속 넘어져서 금방 그만두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딸아이 뒤에 바짝 서서, 겨드랑이 밑에 손을 넣고 넘어질 것 같으면 바로 잡아주며 엉거주춤 뒤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넘어지려고 해도 휙 잡아 버리는 제가 불편했는지, 아이가 멈춰 선 후 돌아서서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 넘어져도 괜찮으니까 내가 혼자 한 번 해 볼게요”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어요. 알겠다고 하고 저는 트랙 가장자리로 가서 딸아이가 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아이가 롤러스케이트를 배울 때, 사실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더라고요. 트랙에 있는 안전 손잡이를 놓고 걸어 보는 것도, 넘어지는 것도, 그리고 다시 일어나 조금 더 걸어보는 것도 온전히 아이의 몫입니다. 그 시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트랙 밖에서 큰 소리로 괜찮냐고 묻고, 또 응원해 주는 것뿐이었어요.
아이에게 롤러스케이트를 가르쳐 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듣고 또 남에게 해주는 “넘어져도 괜찮다”는 말은, 결국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해줘야 하는 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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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배우고 성장하고자 할 때 넘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고, 그건 온전히 당사자의 몫입니다.
스키를 처음 배우던 때가 생각납니다. 스키를 탈 때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은 다름 아닌 넘어지고 혼자 일어나는 방법이었어요. 스키를 배우기 위해서는 숱하게 넘어져야 하니까요. 안전하게 넘어지고, 또 혼자 일어나는 방법을 모른다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스키 실력이 늘지 못할 것에요. 아프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넘어지지 않는 것에 집중하면 실력이 늘지 않을 거예요. 조금 더 가파른 경사를 타는 것도, 빠르게 속도를 내보는 것도, 울퉁불퉁한 요철 코스를 통과해 보는 것도 모두 숱하게 넘어져야만 가능해집니다.
학교에서 공부했던 시간을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모든 문제를 한 번에 맞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그렇듯 우리는 문제를 틀리면서 배우니까요. 우리는 시험을 치르고 틀리면서 모르는 것을 발견해 배워 나갑니다. 다행스럽게도 학교에는 나의 틀림을 바로 잡아 줄 선생님과 틀릴 때 참고할 수 있는 답안지가 있습니다. 그저 문제를 틀리지 않는 것에 집중하면 내가 잘 알고 있는 문제만 풀려고 할 거예요. 풀 문제의 난이도를 낮추는 것이죠. 많은 학생들이 문제의 난이도를 낮추며 위안을 얻습니다. 하지만 스키나 롤러스케이트처럼, 공부도 넘어지지 않으면 배울 수 없습니다. 틀리면서 배운다는 말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해 줘야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넘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회사에서도 사람들은 넘어지지 않게 위해 많은 애를 씁니다. 왜 지금 하고 있는 일 만으로 충분한지, 왜 새로운 일을 할 필요가 없는지 열심히 설명하는데 시간을 쓰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늘 하던 일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게 쉽기 때문입니다. 넘어질 일도 없고, 그래서 아프거나 부끄러울 일도 없으니까요. 학생들이 틀리지 않을 문제만 푸는 것처럼 우리들도 하는 일의 난이도를 스스로 낮춰 버립니다.
다행히 회사에도 학교처럼, 좋은 상사나 선배가 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가 넘어질 것 같으면 주의를 주고, 넘어졌을 때 힘내서 일어날 수 있도록 손도 내밀어 주니까요. 회사에도 기꺼이 넘어질 것 같은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짝이는 그들의 눈에는 “넘어져도 괜찮으니 혼자 한번 해보겠다”는 딸아이의 눈에 보이던 것과 비슷한 것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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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언젠가부터 넘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회사 안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요.
새롭게 도전하는 모든 일에서 넘어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처음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저의 생각이 글이나 영상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때, “네가 뭔데 그런 말을 하냐”며 부족한 점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처음 출간한 책이, 그리고 고생해서 준비한 프로젝트들이 모두 성공한 것도 아니에요. 기대에 이르지 못하는 작은 판매 부수와 소소한 프로젝트의 결과를 보며 아쉬운 마음도 컸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저 또한 배운 것이 있다면 실망에 익숙해지는 법입니다. 우리는 언제든 넘어질 테니까요.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지나가면, 부족한 점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며 더 나은 다음을 준비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살피고, 주위에서 조언을 구하고, 딸아이가 했던 것처럼 다시 일어나서 다음에 넘어지기 전까지 조금 더 롤러스케이트를 타 보는 것이죠.
넘어져도 괜찮으니 혼자 해 보겠다고 말하는 딸아이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지겹도록 듣고 또 남에게 해주기도 했던 “넘어져도 괜찮다”는 말은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으면 배울 수 없으니까요. 우리 모두 넘어져야 합니다. 넘어져도 괜찮다는 생각과 기꺼이 넘어져 보겠다는 마음이 성장과 기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오롯이 스스로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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