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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직 Jun 23. 2024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정체

기술과 스킬로 직업을 정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케터로 예를 들자면 “나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야”, “나는 광고를 운영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케팅뿐만이 아니에요. 디자이너 중에 “나는 피그마를 다루는 사람이야”라거나, 개발자 중에 “나는 SQL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있어요. 우리가 잘 아는 다른 직업을 같은 방식으로 정의해 그 아쉬움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수술하는 의사를 보면 수술용 메스로 피부를 절개하고, 상처 바위를 바느질로 꿰매고, 주사를 놓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의사를 칼을 다루는 사람, 바느질을 하는 사람, 주사를 놓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지 않습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축구 선수는 달리기를 하고, 패스를 하고, 슈팅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축구 선수를 단순히 달리는 사람, 패스하는 사람, 슈팅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지 않고요.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의사는 환자가 아픈 원인을 찾고 건강을 되찾도록 돕고, 축구 선수는 축구라는 규칙안에서 경쟁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사람입니다. 기술과 스킬은 그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고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칼을 들고, 축구 선수는 단순히 빠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달리기를 합니다. 


한 발자국만 떨어지면 훨씬 입체적으로 그 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에 너무 가까운 나머지 이런 입체적인 관점을 놓칩니다. 


저는 기술과 스킬만으로 어떤 일을 정의하기 힘들다고 믿습니다. 비슷한 실험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명 장바구니 테스트입니다. 연구자들이 쇼핑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맞추는 실험을 했다고 해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을 왜,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입니다. 이를 모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해요. 달리고 있는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축구 선수인지 달리기 선수인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바구니에 잔뜩 기술이 담겼다고 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 힘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느낌에 의존해 내가 하는 일의 정체성을 찾아 나섭니다. 장바구니에 일단 잔뜩 기술을 담았는데 왜 그것이 필요한지,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죠. 결국 어떤 사람들은 거창하고 멋지지만 실체 없는 느낌에 의지해 내가 하는 일의 정체성을 만들어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마케터”라던가, “브랜드에 감도를 높이는 디자이너”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느낌’만으로는 성장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내가 하는 일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는 건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 정체성이 오늘 우리가 할 일을 결정하니까요. 만약 기술로 일을 정의했다면 그 일만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축구를 하는지 마라톤을 하는지 모른 채로 일단 달리는 것이죠. 내가 수술을 하는지 요리를 하는지 고민해 보지 않고 일단 칼질을 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정의할 때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단순한 질문은 “내가 만들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입니다. 오늘도 여러 기술과 스킬을 이용해 일을 했다면, 내가 오늘 한 일이 어떤 가치를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는 겁니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었나요? 꼭 고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가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파트너에게,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었나요? “오늘 내가 해결한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좋습니다. 구체적이지만 단순하게요. 오늘 열심히 기술과 스킬을 사용했다면 그것이 푼 문제는 무엇인가요?



어떤 마케터는 “고객의 행동을 정량화하고 이를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고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마케터에게 콘텐츠와 광고는 좋은 수단이 돼요. 어떤 디자이너는 “시각적인 창작물로 사람들의 직관적인 선택을 이끄는 일”을 한다고 정의할 수도 있어요. 이런 디자이너에게 피그마와 포토샵은 좋은 스킬이 됩니다. 어떤 개발자는 “기술적인 불편함을 해소하여 금전적인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코딩은 좋은 수단이 되고요. 


이렇게 하는 일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분명해집니다. 나에게 더 필요한 기술과 수단은 무엇인지, 내가 다음에 그려보아야 하는 도전과 미션은 무엇인지도요. 내가 하는 일을 정의하는 질문은 중요합니다. 커리어의 다채로운 방향성과 다음 스텝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니까요. 


더 깊은 이야기는 인스타그램 @zseo_hj, 링크드인 @서현직으로 DM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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