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다음 타자는?
지난 2017년,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버버리에 새로운 둥지를 튼 리카르도 티시의 뒤를 이어 지방시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부임했습니다. 끌로에를 6년간 이끌어왔던 그녀는 지방시에 세련되고 차분한 무드를 가져와 기존 팬들을 물론 새로운 팬들 또한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지방시의 남성복과 여성복 그리고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다뤄왔던 그녀의 퇴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지방시 하우스의 아티스틱 디렉터직은 모든 디자이너가 꿈꾸는 선망의 대상일 것입니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하우스를 맡았지만 그녀가 이 레이블에 기여한 점은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3년 전 지방시에 합류한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지방시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가 남성 디자이너들만을 고용하고 있었기에 굉장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끌로에를 통해 보여줘 왔던 세련되고 차분한 디자인을 지방시를 통해서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리카르도 티시와는 정반대의 무드와 실루엣을 보여줬고 '오니츠카 타이거'와 함께 협업 스니커즈를 발매하며 과감한 행보 또한 걸었습니다.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커플의 결혼식을 위한 지방시 드레스를 제작한 것도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 될 것입니다.
이제 그녀를 이어 지방시를 맡을만한 디자이너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과연 어떤 디자이너가 '뉴 지방시'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바탕으로 지방시의 새로운 얼굴로 적합한 디자이너를 9명으로 추려봤습니다.
33살의 나이에 불과한 시몬 로샤는 2010년 데뷔 컬렉션을 시작으로 영국 패션 어워드와 하퍼스 바자 어워드에서 다수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시몬 로샤가 보여주는 반항적인 이미지와 독특한 여성스러움은 지방시와도 연관성이 있어 보이며 몽클레르 지니어스 프로젝트를 위한 디자인을 통해서도 그녀의 실력은 입증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 10 꼬르소 꼬모와 같은 세계적인 부티크에서도 만나 볼 수 있는 시몬 로샤가 지방시로 온다면 지방시는 젊은 팬들을 더욱 보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튜 윌리엄스는 데뷔부터 칸예 웨스트, 레이디 가가, 헤론 프레스턴과 같은 굵직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탄탄한 브랜딩을 구축해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레이블 1017 ALYX 9SM을 통해 스트리트 웨어도 럭셔리한 감성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으며 '디올 맨'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도 참여하며 LVMH 그룹과의 관계 또한 맺고 있습니다. 시몬 로샤와 함께 몽클레르 지니어스 프로젝트의 일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그가 지방시의 새로운 디렉터로 온다면 그는 자신의 레이블에서 보여준 모습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셀린느를 떠난 이후 패션계를 떠났던 피비 필로가 곧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마침 지방시의 미래를 책임질 디렉터 자리가 공석이 됐기에 그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셀린느를 통해 보여줬던 심플하고 차분한 스타일은 지방시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많은 팬들은 피비 필로가 만들어 낼 지방시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보고 싶어 할 것입니다. 끌로에를 이끌었던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지방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듯이 피비 필로 또한 지방시의 유산을 잘 이해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관능적인 실루엣과 극적인 효과를 가진 컬렉션을 보여주고 있는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는 지방시 하우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복에서 성공을 맛본 그는 지난 2019년 봄·여름 시즌을 시작으로 남성복 또한 전개하며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혔고 현재 그는 수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가 디자이너로서 보여준 다재다능한 능력은 분명히 지방시 하우스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젊은 유망주 중 한 명인 마린 세레 또한 이미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새긴 디자이너입니다. 칼 라거펠트나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린 세레의 컬렉션이 현재의 패션계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스포츠 웨어에 오트 쿠튀르적인 디자인을 결합해 젊은 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지방시에 진정으로 필요한 '새로움'일 것입니다. 아리아나 그란데, 리아나, 두아 리파와 같은 셀러브리티들이 즐겨 입는다는 사실도 그녀가 지방시에 어울릴 재목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런던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틴 로즈는 이미 영국 최고의 남성복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마틴 로즈는 스트리트 웨어와 테일러링 그리고 반항적인 젊은 세대의 코드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지방시가 원하는 새로움이 스트리트 웨어적인 것이라면 그녀를 데려오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의문점을 제시하자면 마틴 로즈가 얼마나 멋진 여성복을 만들 수 있냐는 것입니다.
2018 LVMH 프라이즈의 특별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대한민국의 디자이너 황록. 자신만의 해석이 담긴 의류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특히 그의 드레스는 파리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보여준 차분한 무드의 컬렉션과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더욱 과감한 실루엣의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기에 충분히 지방시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자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성복으로 시작해 지난 2019년 봄·여름 컬렉션부터는 여성복까지 전개하고 있는 웨일스 보너는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만든 스포츠 웨어로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세련된 룩과 리카르도 티시가 보여준 애슬레저 룩의 디자인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상상하게 만드는 그녀의 독특한 미적 감각이 깃든 컬렉션을 보고 있자면 지방시에서도 멋진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예상이 확신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러브 매거진의 편집장 케이티 그랜드와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토모 코이즈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의 작품을 본 뒤 그의 능력을 높이 샀습니다. 단순히 관심만을 보인 것이 아니라 그가 뉴욕 패션위크에 설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는 웨어러블 한 컬렉션이 주를 이루는 현재 패션계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오트 쿠튀르의 예술성을 다시금 가져다주었습니다. 엄청난 볼거리를 가져다주는 토모 코이즈미가 지방시의 디렉터로 온다면 그의 커리어를 한걸음 더 앞서게 될 것이고 지방시는 보다 예술적인 이미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