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의 의미
누군가의 냄새 또는 향기는 강렬하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것'처럼 인간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이 후각이다. 인간의 진화사에서 후각은 생존의 역할을 담당했다. 부패한 사체와 썩은 음식물의 냄새를 맡음으로써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피할 수 있었다.
특히 익숙지 않았던 냄새를 맡는 일은 강렬한 편이다. 꽤 오래전 독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베를린에서 한 달 정도 머물렀을 때였는데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가 '지하철의 냄새'다. 베를린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달리 지하철은 무척이나 어두컴컴했다. 노숙인들의 체취와 코를 찌르는 소변의 냄새가 너무도 짙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는 꽃집과 빵집이 줄지어 있었는데, 꽃 향기와 노릇한 빵의 냄새 그리고 암모니아 냄새가 뒤엉켜 어지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독일에서의 지하철 냄새 말고도, 홍콩 재래시장의 향신료 냄새와 대만 야시장의 취두부 냄새 역시도 여전히 잊히지 않는 기억 중 하나다.
생각해 보면 냄새는 기억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은 마들렌을 먹으며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애틋한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처럼 특정한 냄새가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이 '프루스트 효과'이다.
왜 특히 냄새는 더 강렬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걸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다른 감각들 이를테면 시각, 청각, 촉각, 미각은 뇌의 허브인 시상을 거쳐 전달되는 반면에 후각은 시상(Thalamus)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해마와 편도체로 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고 재구성하는 역할을 하며 편도체는 공포와 혐오 등의 감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인간은 어떠한 냄새를 맡으면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함께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후각은 무엇보다 근거리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띤다. 시각과 청각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현대 기술로 감각적 구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냄새는 여전히 가까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의 냄새 또는 향을 맡는 일은 그 사람과 나의 거리가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져 올수록 그 향은 나에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그 사람이 참 괜찮다'고 생각한 순간에는 그 사람의 향 역시도 배어 있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향수와 드레스퍼퓸의 냄새, 그리고 옷에 스미어든 섬유유연제의 냄새까지. 그 사람이 쓰는 향이 그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나의 향을 고르기 위해 수많은 향을 시향했을 테니 말이다. 그 사람만의 감도와 취향의 섬세함이 향에 묻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어느 날 문득 길을 걷다, 전에 만나던 사람의 향이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그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물론 그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는 향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늘 곁에서 산뜻한 섬유유연제 향이 나던 사람이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향이 그와 꼭 닮아 있었다. 이젠 얼굴도 목소리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향만은 여전히 무의식의 어딘가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향은 짙다. 직접적인 냄새로서의 향도, 그리고 비유적으로 그 사람이 남긴 잔향의 의미로서도. 인간의 향은 만리를 간다는데,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짙은 향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나의 마음속에도 누군가의 잔향을 오래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