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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너와 나의 여백을 채우는 일

사랑의 변증법

by 이지수

이번 주에도 발제가 있었다. 인문사회계열 대학원 수업은 발제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발제문을 작성했지만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발제는 대실패였다. 솔직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글에 기교를 부렸더니, 혼이 제대로 났다. 교수님과 동료 선생님들께 하나하나 논박당했다. 여전히 논증적 글쓰기는 어렵다. 속이 상하기도 했다. 비판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이것밖에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이 너무도 작아 보이고 바보 같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발제가 끝나고 나서, 한 선생님께서 내게 "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보셨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를 묻는 질문 같아서,


나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나도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사랑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다. 나를 드러내 보이고 상대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꺼내어 보이는 일, 특히 나의 어두운 면을 상대에게 현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나의 단점을 말하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될까 두렵다. 나 역시도 그랬고 여전히 그렇다.


그렇지만 인간은 인간이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인공지능만큼 완벽하거나 빠지 않다. 인간이기에 여백과 공백이 발생한다. 갑자기 제약이 생겨 멈춰 서기도 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론 공허한 메아리만을 외칠지도 모른다. 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꼭 들어맞는듯하다. 누군가에게 닿지 않는 성긴 섬들 사이에서, 우리는 외마디 외침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낯선 이에게 나를 드러내 보인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나 또한 너라는 타자의 삶에 기대 있다.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하고, 당신 또한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 서로의 여백과 공백을 채우는 일, 그것이 결국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나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취약성 또한 바라봄으로써 서로가 서로에 기대 있는 것.


그러나 우리는 꽤 많은 순간들에서 우리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남을 쉽게 재단하거나 힐난하기도 하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좌절하기도 한다. 나만 하더라도 괜한 자존심에 든 일이 있어도 괜찮은 척하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살아갈 뿐이.


어쩌면 인간은 그런 틈과 간극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누군가와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철학자 헤겔은 사랑을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내가 그 사람과 다름을 인식하고 나의 세계를 확장하면서도, 나 자신이 결코 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대의 취약성과 나의 한계를 동시에 깨닫는 과정이 사랑인 것이다. 그 과정을 지나며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른 존재가 된다. 인간인 우리는 사랑이라는 운동을 통해 부서지고 회복하고 성장한다.


나 역시도 내가 대단하거나 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무너져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 지금까지도 버텨올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변증법적 사랑 덕분이었다. 서로 격려하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을 빚기도 했다. 랑의 파도에도 우리의 관계가 부서지지 않았던 이유는, 서로가 사랑하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쓰디쓴 잔소리가 그랬고, 친구의 사려 깊은 충고가 그랬다.


수많은 현인들은 사랑이란 서로의 우주를 나눠갖는 일이라 보았다. 나만의 세계로 누군가를 들이는 일은 기대와 두려움이 점철된 순간이다. 누군가와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이어지는 반면, 또 누군가와는 거친 파열음을 내며 까스로 서로의 모서리를 다듬을지도 모른다. 의 파편으로 태어난 우리는 서로의 모난 파편을 맞춰가고 있을 뿐이다. 어떤 형태가 되든 랑은 사랑이고, 내가 당신을 마주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은 변지 않다.


나는 앞으로도 누군가를 계속 사랑하며 살아가려 한다. 때론 외사랑이 될지도 모른다. 닿지 않는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눈빛을 건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는 여전히 누군가의 세계가 궁금하다. 그 사람의 여백과 공백이 독백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사랑을 하는 이유다.


거칠게 썼지만 사랑 그 위대함을 찬미한다.



- 추신

여기서의 사랑 개념은 '인륜'으로서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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