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ecdote

꿈과 책, 힘과 벽

석사 코스웍 과정을 마치며

by 이지수
석사과정 수료

어느덧 석사 4학기 과정을 모두 마쳤다. 짧으면서도 길었던 2년의 시간이었다. 특히 이번 학기는 마지막 학기라서 그런지 더욱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다. 논문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럼에도 아직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조바심이 나를 짓눌렀다.

논문 준비와 발제문 작성, 스터디 참여가 한 주의 사이클이었다. 읽어야 할 논문과 텍스트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원문이 영어와 독일어인 탓에 읽고 해석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까막눈이어서 번역기에 의존해 떠듬떠듬 읽어나갈 뿐이다.) 그래도 이번 주만 버티자 버티자 하다 보니 이렇게 마지막 학기가 끝이 났다.

학부 때 해도 내가 공부를 조금은 하는 학생인 줄 알았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성적이 괜찮게 나오는 편이어서 그랬다. 하지만 난 외우는 것만 할 줄 알지 머리가 좋은 건 아니었다. 철학 공부에 필요한 소양인 논증적 글쓰기나 주장을 비틀어 비판하는 데에는 꽝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는 게 없어서인지 철학자들이 하는 말이 다 맞는 말 같았고 또 일리가 있어 보였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하며 감탄하며 읽었는데, 논증하는 글쓰기에서만큼은 좋은 읽기 습관이 아닌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도교수님께선 나의 글에서는 '문제의식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름 논박한다고 하긴 했지만 내가 읽어도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요약에 불과한 글, 앵무새처럼 학자의 주장을 따라 쓴 글이 내 글이었다.

어떤 글에서 석사 과정은 '자기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 2년 간 배웠던 건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앎과 모름을 구분할 정도가 되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때로는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거나, 잘못 해석해 을 오독할 때도 있었다. 자신이 바보 같음을 끊임없이 직면해야만 했 시간이었다. 부족한 내 모습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거장의 문헌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개념조차도 학자마다 맥락마다 달리 사용되고 있었다. 단편적으로 외웠던 개념은 텍스트를 읽으며 다시 새롭게 나만의 언어로 정제해야만 했다. 누군가의 주장은 -ism(-주의)으로 혹은 하나의 개념으로 쉽게 말할 수 없었다. 하나의 개념은 양면성을 띠고 있었고, 학자들은 이미 글에서 내가 생각했던 반박과 약점까지 모두 논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게 되자, 나는 그의 주장을 함부로 비판할 수가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연구가 숭고한 결과물이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학위 논문 작성을 앞둔 요즘, 대학원 진학 전에 철학과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아주 고독한 길이 될 거예요. 그렇지만 지수 씨 본인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할 테죠.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앞으로의 학업을 응원할게요."


아마도 나는 나를 찾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불확실한 삶이라서, 평범하지는 않았던 삶이어서 더 그랬던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음을 느낀다.


대단하지 않은 나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사랑 덕분이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루를 견뎌내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가 2년간 철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바다.


공부를 한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의 발자국을 끊임없이 좇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다져놓은 길을 자박자박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생길 수도 있다. 완전하고 어설프지만, 하루하루에 감사함을 느끼며 나만의 보폭으로 길을 다져나고 싶다.





아마도 마지막 원고.

총 6편의 글을 제출했다. 두세 편을 더 쓰긴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휴지통으로 보내버렸다.


이번 원고들은 다소 담담한 어조로 쓰려 했다. 감정적인 서술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럼에도 다시 읽어보면 전히 격정적인 문체다.


이제 남은 건 글을 다듬는 일. 다듬고 또 다듬어야겠단 생각이다.

문집으로 나올 먼 훗날을 기다리며.

이번 여름 숙제도 끝.

이젠 정말 공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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