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ecdote

24 프레임

엄마와 함께 <시네마 천국>

by 이지수
우리가 영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우리를 선택했다.
Jean-Luc Godard (1930-2022)

누벨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가 남긴 말이다. 고다르 감독은 영화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초당 24번의 진실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그의 작품은 다소 난해하고 실험적이지만 본인만의 시선으로 사회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매력이 있다.


고다르만큼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나도 단편영화를 한 편 찍어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영화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조예가 깊지도 않지만 20대를 돌아봤을 때 나는 영화에 미쳐있었던 것 같다. 삶에 치여 울고 싶을 때나 웃고 싶을 때면 영화를 보러 갔다. 일주일에 한 번 영화관에 가서 한 편 보고 나오면, 그 하루로 일주일을 견딜 수 있었다.


한때는 몹쓸 홍대병에 걸려서 괜히 예술영화만 골라서 보기도 했다. 선댄스니 칸이니 그런 영화를 일부러 찾아봤는데 아는 게 없어서인지 봐도 재미가 없었다.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 이후로는 고다르 말마따나 ‘나를 선택한’ 영화, 나에게 다가오는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언젠가 책에서 읽기를 위대한 예술은, 우리가 작품의 위대함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다시 찾게 하는 데 있다고 했었다. 나의 시선을 머무르게 한 작품, 봐도 또 보고 싶은 작품이 예술이라는 이야기다.


나 역시도 좋아하는 영화는 5번 이상은 봤던 것 같다. '최애' 영화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얼 네임>으로 매해 여름이면 연례행사처럼 찾아보곤 한다. 아마 10번도 넘게 봐서 대사와 장면을 거의 외울 정도다. 한 소년의 열병 같았던 어느 여름의 첫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영화의 OST와 색감에 여운이 많이 남았다. 정말 많이 봤는데도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영화기도 하다. 영화의 촬영지인 이탈리아의 크레마에 가보는 게 또 다른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사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건 우리 가족의 가풍이기도 하다. 피는 못 속인다고 나름 3대째 이어오고 있다. 언젠가 엄마께서 말씀하시길 외할아버지는 극장 간판화가로 활동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20대 내내 극장에서 살다시피 하셨고 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그림도 잘 그리시는 편이다.


또 나는 영화 보는 게 취미에 그칠 뿐이지만, 동생은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할 정도로 영화를 지독히 사랑한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갈 때면 동생이 미장센이니 후시녹음이니 롱샷 풀샷 그런 영화 기법을 설명해 주는데, 솔직히 들어도 잘 르긴 매한가지다. 그래도 종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갈 때면, 관람 후에 서로 소감을 나누는 그 순간이 참 좋다.


올여름에는 유난히도 재개봉작이 많았는데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 천국>도 그중 하나였다. 몇 년 전에 집에서 태블릿 화면으로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영화관에서 보는 건 또 다를 것 같아 바로 예매를 했다. OST인 엔니오 모리코네의 <Love Theme>을 극장에서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재개봉 소식을 엄마께도 말씀드렸더니 같이 보러 가자고 하셨다. 엄마는 이 영화를 20대 초반에 극장에서 보셨다고 했다. 그렇게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같이 보려니 감회가 새로웠다. 예술 작품은 역시 단절된 시간을 다시 이어주는 힘이 있다.


우리 모녀는 상영관의 중간 열에 나란히 앉아 <시네마 천국>을 관람했다. 랑하면 닮는다고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며 웃었고 또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주인공 토토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선 엄마께서는 몰래 눈물을 훔치는 듯했다.


엔딩 크레딧이 부 올라갈 때까지 우리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역시 엔딩씬은 여운이 많이 남았다. 꿈을 찾아 떠났지만, 결국 남는 건 사랑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마께서는 영화관에서 나와 당신의 소감을 말씀해주셨다. 20대 때는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했는데 이번엔 토토가 저명한 감독이 되어 고향에서 알프레도를 그리워하던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하셨다. 감히 짐작건대 엄마께서는 극장을 쏘다니던 토토의 모습을 보며 당신의 20대를 떠올리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엄마께 여쭤봤다. 사랑이 중요한지 아니면 나의 꿈을 이루는 게 중요한지 말이다.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지만 내겐 꽤 오랜 고민이기도 했다. 마께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이루고 하셨다.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어서다.


여전히 모르겠다. 아직까진 꿈도 사랑도 뚜렷한 게 하나 없다.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너무도 많아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게 막연한 요즘이다. 20대의 과업이 학업과 취업이라면 30대는 가정을 이루는 데 있는 걸까. 난 잘 모르겠다.


철부지인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보러 다닐 예정이다. 편 영화 만들기라는 작은 꿈을 이룰 때까지 말이다. 먼 훗날 다르덴 형제나 워쇼스키 자매처럼 동생과 함께 크레딧에 이름을 올려 보고 싶다.



이번 글의 주제는 열정.

역시 좋아하는 거 쓰는 게 제일 쉽고 재밌다.

쓰는 내내 경쾌하게 써내려 갔다.

이런 글만 쓰고 싶다.


추신) 집에서 <시네마 천국> 덕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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