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SSTYPE Aug 25. 2015

제스타입 작업일지 #1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


텀블벅을 이용하여 크라우드펀딩을 준비하고 있다. 

한글 서체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서체 제작도 처음이었고 크라우드펀딩도 처음이었기에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성공된 프로젝트와 사례들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그럴싸하게 흉내 내보았다. 크라우드펀딩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창작자와 소비자 혹은 사용자가 직접 소통하며 함께하는. 그러나 이전에는 개인적인 그래픽. 레터링 작업만 했기에 크라우드펀딩으로 진행할 프로젝트가 없었다. 


활자 디자인을 시작하고서 이용제 디자이너의 바람체 제작 사례를 수십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늘 넘치던 자신감에 나도 한 천만 원 후원받아야지 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프로젝트가 무산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이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넘어야 될 장애물들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가시화된 것은 일주일 전 레이지스미스의 대표님을 만나고서 부터다. 레이지스미스의 정광훈 대표님은 내 첫 번째 서체의 첫 번째 구매자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결제와 세금계산서도 끊어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크라우드펀딩까지 도달했다. 많은 조언을 통해 지난 일주일 간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현재는 텀블벅의 공개 검토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


후원자들을 위한 소개 글을 작성하면서 놓치고 있던 문제들이 드러났다. 우선 작업 계획과 일정을 너무 무리하게 잡았다. 연말까지 넉 달 동안 네 가지 서체를 제작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부분들을 생각지 못했다. 리워드 제작. 소개 책자 편집. 후원자 확인. 포장 및 발송까지 부가적인 작업들이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소모할 것 같았다. 결국 네 가지 서체 중 두 가지를 우선 작업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리워드에 대한 고민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내가 제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주섬 주섬 챙겨 넣었다. 이 역시 나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줄 수 있는 것과 받고 싶은 것만 딱 작업하는 편이 훨씬 적합해 보였다. 그리고 프로젝트 완료 이후에 판매를 어떻게 진행할지. 라이선스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웹사이트 제작은 어떻게 할지. 등 너무 많은 문제들이 내 앞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발생하게 될 골치 아픈 일들은 미뤄두고 일단 진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


나는 본래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스트릿과 서브컬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이번 서체 제작과 연계된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까지 모든 것이 일련의 시험이고 도전이다. 성공적으로 완료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실패할 수도 있고 반응이 시원찮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디자인 회사를 퇴사하고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서 또 다른 회사를 찾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남의 일을 받아하면서 더 이상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회사의 경쟁력에 포함되어 희석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이러한 자신감은 결국 나를 고꾸라뜨릴 수도 있다. 그게 이번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넘어지면 어떠랴. 다시 일어나면 그만인 것을. 부디 이번 프로젝트가 대박 나서 보다 나은 작업 환경을 마련할 수 있기를 . 결국 내가 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올 테니 밤이고 낮이고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문득 다시 그래픽 작업이 하고 싶지만.


#


나 자신의 고유함을 지키기 위해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라이선스 인증 방식이 그렇다. 서체제작사들은 저마다 폰트매니저 프로그램을 개발해 온라인 인증 방식으로 서체 사용권을 준다. 컴퓨터 속을 아무리 헤집어봐도 폰트 파일을 찾을 수가 없다. 과연 기술이 대단하긴 하다. 나는 그러한 기술도. 프로그램을 개발할 비용도 인력도 없으니 불법복제를 막을 수는 없다. 당장은 라이선스 인증을 위한 프로그램도 웹사이트도 없으니 불법 복제한 서체를 들이밀어도 라이선스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가 인증을 확인할 방법을 고안했다. 라이선스 인증서에 밀랍 인장을 찍어 발부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은  아날로그뿐이었다. 인장이야 내 고유한 디자인으로 주문 제작하면 되니 핵심은 밀랍이었다. 나는 향초를 만들 수 있다. 고로 사람들이 구할 수 없는 색을 조색하여 만들 수 있다. 세 가지 라이선스와 세 가지 조색된 밀랍이면 아무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아날로그 인증 방식이 탄생한다. 밀랍이 너무 내구성이 떨어진다면 실리콘도 사용할 수 있고 아날로그적인 방법이야 무궁무진하다. 물론 라이선스 사용자도 직접 기록하고 보관한다. 불법복제를 막을 수는 없지만 저작권 위반을 잡아낼 수 있는 방법. 그게 지금 내가 고안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방법이 없다.


- 아쉽게도 이 방식은 구현하지 못했다. 방법은 알고 있더라도 손이 너무 많이 가기에. 프로젝트 진행 기간 동안 시도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후원자와 구매자의 정보를 직접 기록하고 보관하여 라이선스를 관리하지만. 비효율적이다. 매번 찾아봐야하고 여간 불편한게 아니지만 나에게는 방법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조금 더 고민해봐야할 부분이다. (2017. 09. 07)


#


서체 제작을 진행하면서 활자와 주물에 관심이 생겼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를 보고 있자니 아날로그는 얼마나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며 디지털은 얼마나 편리한가. 디지털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지만 아날로그에 대한 수요는 디지털이 공급해줄 수 없는 부분이니 디지털로 경쟁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조금만 편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지겠다. 원룸에 틀어박혀 노트북 달랑 하나로 디자인을 하고 있는 내가 아날로그 장비를 들일 공간도 비용도 없지만. 나중에 전시를 기획한다면 내가 만든 폰트를 2,350개의 납활자로 주조해서 보여주고 싶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된다면 개인전도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한글

#폰트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레터링

#그래픽

#제스타입

매거진의 이전글 제스타입 작업일지 #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