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SSTYPE Aug 10. 2017

제스타입 작업일지 #27

흔들리는 정체성에 돌아보는 발걸음



#



어떡하면 좋을까.

[뭘] [어떻게] 하면. [뭐]가 좋을까. 막연한 생각.

이따금 그럴 때마다 작업의 흐름을 뚝. 하고 끊어진다.

디자인. 과거로 돌아가 다시 길을 정할 수 있다면 나는 또다시 디자인을 선택할까.



#



오랜만에 지금까지 기록한 작업일지를 읽어본다. 

이렇게 종종 과거에 기록을 다시 들춰보면 소소한 재미가 있다. 당시 생각들과 지금의 생각.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어느 만큼 성장했는지. 부끄러운 헛소리를 하지는 않았는지. 때로는 과거의 기록에 지금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 나쁘지 않다. 


서체 제작에 관심이 많은 일인이 어떠한 서체 제작 프로그램을 사용하는지 궁금해 하기에 답변을 남긴다.

처음. 그러니깐 폰트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개념과 정보가 1도 없었을 당시 나는 구글링을 통해 캘리그래피를 하는 사람들이 손글씨로 폰트를 제작하는 방법에 대해 남긴 자료에서 힌트를 얻어 폰트 크리에이터라는 프로그램으로 처음 폰트 디자인을 시도했었다. 그 후에 국내 폰트 디자인 업계에서 폰트랩을 주로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폰트랩을 사용하다가 지금은 글립스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폰트랩보다 인터페이스가 익숙하기도 하고. 폰트랩의 다양한 기능들을 어차피 사용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글립스가 폰트랩보다 저렴하고. 일단 폰트랩보다 글립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폰트랩의 인터페이스가 달라지면 폰트랩이 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내가 사용하는 기능들은 단순하다. 프로그램을 10-20% 정도 사용하는 수준이다. 100% 활용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어느 정도는 개발자의 영역이라 프로그램을 익히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디자인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



어쩌다 작업일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을까. 

브런치에 공개하기 전 작업일지는 아이디어 노트의 기록이었다. 아이디어 스케치와 기획 단계의 기록부터 과정 상에 고민들과 피드백에 대한 코멘트. 그저 듣고 넘기지 않고 기억하고 반영하고자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나 자신이 피드백을 남기는 방식으로 기록하는 행위에 의의를 두었지 딱히 잘 정리된 기록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작업일지를 기록해오면서 브런치에 공개되는 작업일지는 사실 작업에 대한 기록보다는 작업하는 과정에서. 혹은 작업이 끝난 이후에 개인적인 생각을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작업에 대한 기록을 하기에는 뭔가 많이 번거롭기도 하고. 때로는 캔처된 이미지나 영상기록도 시도해 보았지만. 꾸준히 이어가기에는 되려 작업에 방해가 되다 보니 관두게 되었다. 작업을 방해하는 작업일지라니. 그래서 작업보다는 개인적인 기록이 주가 되어 버렸다. 사실 이 기록들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뒤돌아 보는 것. 그게 필요했다. 내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언가 잊어버리진 않았는지. 가고자 하는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 이렇게 기록하고 다시 읽어보면서 그에 대한 생각들을 새롭게 기록하다 보면 나 자신과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대화록이라는 기록도 만들어볼까 했지만 뭔가 이중인격 같고 오글거려서 관두었지만. 


브런치에 남긴 초기 기록들을 보면 텀블벅의 프로젝트에 대한 기록이 대다수다. 당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폰트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얼마나 멋진가.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작업일지 #1을 돌아보면 이런 말이 있다. 나 자신의 고유함을 지키기 위해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나 역시 때때로 다른 사람의 그럴싸한 작업물을 보고서 트렌드라는 핑계로 그런 스타일에 편승할 생각을 해보고는 했다. 그게 썩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 이후에 더는 그러지 않았지만. 오리지널리티. 고유함. 정체성. 크리에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나를 구분하고 차별성을 주며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내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작업한 내 작업물. 한두 번 작업해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있나. 꾸준히. 몇 년을 계속하다 보면 고유함이 살살 올라오는 것도 같은데. 사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나에게 그런 고유한 정체성이 있는지.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나는 헤매고 있는 듯하다.



#



어느 순간부턴가. 머리 속의 아이디어들이 뚝. 끊어져 버린 것 같다. 새로운 작업을 하기가 막막한 느낌. 기존에 하던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기도 그렇고. 조금 더 나은 작업을 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 오래간만에 또 벽을 마주한 기분. 고민도 많이 해봤지만 결국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는 다 방법이 있다. 작업량을 늘려서 쏟아내다보면 뻥하고 뚫리기 마련이다. 마치 막힌 변기에 물을 쏟아부어버리듯. 작업과 결과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쏟아내 버리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새로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비워낼 필요가 있듯. 꽉 차버린 외장하드를 정리해야 할 때가 찾아온 것인지. 버릴 것은 버리고..





일단 비옴 타입페이스 작업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10-안개비. 30-가랑비. 50-비. 70-작달비. 90-장대비. 이 중 70-작달비만 남아 있다. 물론 한글 부분을 완성한 후 영문과 숫자. 문장부호와 특수문자를 전체적으로 다듬어야겠지만. 8월 말까지 열심히 달려서 작업을 끝내고 검수에 들어갈 생각이다. 리워드 제작을 위한 간단한 글들도 써야 하고. 요새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손이 근질근질하다. 비옴 타입페이스 작업이 끝나면 한동안 패밀리 폰트를 한 번에 작업하지는 않을 것 같다. 기간도 기간이고 집중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문다. 하나씩. 하나씩 잘 만들어가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어떤 형태의 한글을 그릴 것인가. 여러 후보가 있지만. 슬슬 생각을 정리하고 10월부터는 기획을 준비해야겠다. 지블랙 타입을 디자인하면서 작은 언덕을 하나씩 하나씩 넘어왔다면 비옴 타입은. 휴.. 큰 산 하나를 어기적 어기적 넘어온 듯한 기분이다. 아무튼 정상을 넘어 이제는 내리막 길인가. 끝까지 집중해서 좋은 폰트를 만들고 싶다. 좋은 폰트라. 그보다 사용자가 좋아하는. 자꾸 찾게 되는 그런 폰트를 만들고 싶다.



#



폰트계독 모임을 위해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이번에 글을 쓰고자 정한 주제는 머리글자와 합자에 대해서 쓰려고 자료들을 찾고 조사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는 즐거움은 글자를 그리는 즐거움 못지않다. 간혹 엉뚱한 책에 빠져 일주일을 작업에서 손을 놓고 책만 읽을 때도 있지만. 조만간 글자디자인. 그래픽디자인에 관한 추천도서를 정리해서 소개할 생각이다. 내가 읽고 도움이 되었던 책들이라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분명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을 다시 찾아보고 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제스타입 작업일지 #2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