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SSTYPE Sep 22. 2017

폰트계독 #3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 2

2017. 08. 17


-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를 읽으면서 한글과 알파벳의 차이가 조금 더명료하게 다가왔다.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은 합자 Ligature. 합자는 기술적으로두개이상의글자를합쳐서하나의글리프로만든것으로그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으며 구텐베르크가 자신의 책을 필사본처럼 보이게하기위해사용한도구중하나라고한다.이는글자를합하거나생략함으로써 일의 속도를 올렸을 뿐 아니라 활자가 들어가는 공간을 줄이고단을맞추는기능을했다.합자에는두가지기능이있다.첫째공간을줄이는것.둘째아름답게꾸미는것.이를표준합자와자유재량합자로구분짓는다. 현재 제작되고 있는 영문 폰트를 살펴보면 합자를 활용한 타입을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은 후자인 자유재량 합자로 글꼴의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한 듯하다. 잘 만들어진 본문용 글꼴을 살펴보면 fi, fl 부분에서표준합자를확인할수있다.이는선택이아닌필수요소인듯하다.


한글과 알파벳은 그 구조와 형태가 다르기에 동일한 개념의 합자를 적용할수는없겠지만그쓰임이비슷한경우가없을까하여조사해보았다.이책을읽기이전에나는리가처를이음자.연자의개념으로이해하고있었다. 글자를 연결하거나 이어주는 것이라 생각해서 옛 한글의 형태에서글자가 끝나는 부분과 시작하는 부분이 붓으로 이어지는 선도 리가처라고생각했다.물론그러한개념으로쓰이기도하는만큼그또한리가처라고할수있겠지만이책에서말하는합자의개념은조금다른듯하다.한글은기본적으로모든글자가합자.조합자라고할수있다.그구조나형태가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파벳의 경우와 동일하게. 조합되며공간을 절약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fi, fl과 같이 일부가 아닌 11,172자전체가 합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한글에서의 리가처는 합자의 개념보다는 이음자의 개념으로 글자 조형에 활용할 수밖에 없다. 붓으로 쓰인옛 한글의 형태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이음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있다. 때로는 일의 속도를 위한 이음자도 있고 글줄의 아름다움을 위한이음자도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한글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다 보니읽기가쉽지않다.특히글자가어디서끝나고다시시작되는것인지그구분이 모호한 경우도 많다.


영문폰트중모든글자가연결되는형태의글꼴도있다.스크립트타입에서는 조형 자체를 시작되는 선과 끝나는 선의 높이와 각도를 맞춰서연결되도록 조형하기도 하고. 보다 깔끔한 세리프. 산세리프 타입에서는오픈 타입 리가처 기능을 활용하여 낱자와 합자를 혼용하기도 한다. 한글폰트에서는 이러한 리가처를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옛 한글에 나타나는이음선. 글자의 끝과 시작을 연결하는 이음자는 가로 쓰기에 나타날 수없다. 그 선이 억지스럽고 공간만 잡아먹을 뿐 실용적이지 않다. 세로쓰기에서는 옛 한글의 이음자를 나타낼 수는 있지만. 그 작업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에비해 그 수요가 명확하지 않고 실험적이며 의미는 있겠지만 상업적 가치는 불분명하다. 그러니 누가 쉽게 덤벼들겠는가. 단순히 조형을 이어주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옛 한글의 형태를 제대로 재해석하고 지금까지제작된 그 어떤 궁체. 목판본. 방각본보다도 뛰어난 조형을 해냈을 때 빛을볼수있을것이다.그러기위해서는무수한경험.연륜이있어야하지않을까. 해서 나는 60세가 지나면 한번쯤 시도해볼 계획이다. 적어도 의미있는작업은될테니그전까지는상업적가치를지닌폰트를제작하고그후로는 주로 가치보다는 의미를 쫓지 않을까 싶다.


한글에서이음자를활용할수있는또다른방법이있다.영문리가처.fi,fl을보면획의시작과끝은중요하지않다.단지공간을절약하기위해이어질 뿐이다. 한글에서도 필법을 배제하고 조형 자체를 연결한다면분명그활용도를찾을수있을것이다.조금다른경우지만리가처를활용한 시도를 배달의 민족 도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확히 이음자의개념은 아니지만 리가처 기능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정 자음 사.자.하가반복되는경우뒤에붙는글자의형태가변한다.글자의조합에따라형태가 변하는 글꼴. 도현체의 조형은 모르겠지만 이러한 시도는 의미가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실용적으로 접근한다면 글줄의 길이를 좁게사용하는 작은 크기의 장체 글꼴. 주로 패키지. 성분표기를 위한 작은 글꼴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다듬어 가독성을 높일 수 있는 리가처를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글자의 아름다움을 위해 장식적인 연결부.조형을달리할수도있을것이다.영문폰트에서는수백가지의대체글자가담긴폰트도있는만큼.한글폰트에서단하나의대체글자도없다는것은 아쉬운 일이다.

           

다음으로는 한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머리글자 Initial Caps.대개책에서장이나절이시작될때볼수있는머리글자로평범해보일수있는 지면에 색과 장식을 넣어주며 중세시대에 가장 많이 사용된 만큼고전적인느낌을준다.지금도널리쓰이긴하지만그스타일이많이달라졌다. 중세시대의 머리글자를 보면 굉장히 화려하다. 이는 인쇄술로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책을 보니 머리글자 부분을 비워두고 소유자가 직접화가에게 의뢰하여 머리글자를 그렸다고 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문자도가 떠올랐다. 문자도는 민화의 한 종류로 하나의 글자와 그 글자의의미에 관한 고사를 바탕으로 관련된 상징물을 그려 넣은 그림이다. 유교의 주요 덕목으로 꼽히는 효제충신 예의염치 孝悌忠信禮儀廉恥 과 관련된고사나 설화의 내용을 각 글자의 의미와 연결하여 도안화한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가 가장 대표적이다. 문자도는 단순히 장식적인 글자그림이아니라 교훈적. 길상적 의미를 담은 글자를 통하여 바라는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로 제작되었다.


문자도는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회화성이 더욱 강조되는 면모를 보이는데글자의 의미보다는 도안적인 장식성과 형상 표현에 치중하여 때로는 문자의 형태가 거의 무시되는 상태로까지 변형되기도 하였다. 이중 혁필화가머리글자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는데. 혁필화는 가죽을 붓같이 만들어서이름과쓰고싶은글귀를쓰되화려한물감으로꽃이나새,나무등을글자에 어울리게 그려서 만드는데 글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일종의도안화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서양의 머리글자 기능과 유사한 쓰임을가진문자도는찾을수없었다.한지면에큰글자와작은글자가같이쓰이는경우는있지만큰글자가장식적이진않다.서화의경우굳이글자를 장식적으로 쓰는 것보다 그림이 충분히 장식적이기에 글자의 형태에큰 변화는 없었다. 주로 문자도. 서화. 부적 등 다양한 자료를 찾아봤지만문자도에시와함께쓰이는경우가있었다는기록만있을뿐이미지자료는찾을수없었다.


당시 서양의 책과 동양의 책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우선 글자의 크기부터차이를 보인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책에는 장식적인 요소가 없다. 그림이들어가는 화첩의 경우를 제외하고. 같은 형태 같은 사이즈의 글자로만구성된 책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현재 자료를 찾아보더라도 머리글자의용도와 형태를 가진 한글 표현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장식적인 한글꼴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알파벳에서머리글자의형태는고전적인느낌을주기위해현재사용되고있다.한글로 알파벳의 머리글자를 차용하여 장식적인 글자를 그린다 한들 같은기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고전적인 느낌보다는 중세시대서양의 느낌을 표현하는 정도가 아닐까. 물론 머리글자가 장식적인 형태만보이는것은아니다.특히잡지를보면지면을아름답게꾸미기위해서첫 글자의 조형을 다듬고 크기를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험적인타이포그래피 작업에서도 그러한 활용을 찾아볼 수 있고. 머리글자의개념과 용도를 떠나 단순히 첫 글자의 조형을 달리하는 것만 생각한다면한글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알파벳에서는 이러한글자 조형을 Inicial Caps 가 아닌 Swash 라고 하는데. 획이 시작되는 획을장식적으로 길게 빼는 형태를 말한다.


이런저런 자료를 살펴보다 보면. 알파벳에 비해 한글은 쓰임이 다양하지않다고 할까. 표현의 폭이나 조형. 구성에 대한 체계도 정해진 틀에서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만 써야 하는 걸까. 더 다양하게. 더 화려하게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고딕체와 명조체가 과연 완벽한 형태일까. 형태를떠나서 가로 쓰기에서 글줄을 짜임새 있게 제작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체계도 명확하지 않다. 각 구조의 명칭도 학자마다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내 생각이지만 이 부분은 한글을 조형하는 사람이 지극히 적기 때문에그렇다고 생각한다.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조형하는 사람이 더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폰트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원하는 글자의형태를직접조형하고다듬을수있는사람이더많아져야한다.그래픽디자이너. 편집 디자이너. 다양한 영역의 디자이너들이. 한국에서 한글을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폰트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조형을 시도하고. 글자조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으면 좋겠다. 그리하면 폰트 회사들도 조금더높은퀄리티를생각하지않을까.단기간에뚝딱뚝딱만드는것이아니라.정말가치있는훌륭한한글폰트를제작하지않을까.그리하여한글그자체가 아닌 한글 폰트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을가져본다.

작가의 이전글 폰트계독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