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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STYPE Nov 05. 2017

폰트계독 #5

당신이 읽는 동안 - 헤라르트 윙어르

2017.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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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타입 디자이너가 읽음이라는 화두로 독자에게 전하는 질문들. 우리가 읽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타입 디자인과 편집 디자인. 이에 대한 눈과 뇌의 반응. 심리학과 언어학 그리고 신경학. 저자는 이 책이 읽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조사한 결과물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은 글꼴에 대한 전문 지식과 그것을 활용하는 다양한 실용적 사용법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읽기 어렵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는 개념을 떠나서 수많은 인용과 발췌로 인해 읽는 내내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책의 뒤편 주와 참고문헌을 살펴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책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은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책을 꺼내어 몇 페이지 넘겨보니 이런 글이 있었다. “독자들이 새로운 활자의 완벽한 침묵과 뛰어난 자제력을 알아보지 못해야 좋은 활자라 할 수 있으며, 기이하거나 농담 같은 타이포그래피는 무미건조하거나 단조로운 것보다도 독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개인적인 타이포그래피는 결함이 있는 타이포그래피이며 바보들이나 그런 것을 요구한다.” 며 모리슨과 치홀트를 인용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기분은 그렇다. 본문용 활자란 그런 것이다. 읽기 좋은 글자. 글자는 사라지고 글만 남게 되는 글자의 완벽한 침묵. 그리고 타입 디자이너의 뛰어난 자제력.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글자. 장문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의식할 수 없는 익숙한 형태의 글자가 읽는 동안 피로도 덜하고 편할 것이다. 좋은 활자의 조건으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생각해보니 나는 활자가 아닌 글자를 그린다. 그렇다면 나는타입 디자이너가 아니라 레터 디자이너일까. 필명으로 사용하는 ZESS TYPE을 ZESS LETTER로 바꾸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괜히 뜨끔하여 제 발 저린 격이다. 저자는 그러한 편협한 시각을 벗겨낸다.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피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는 항상 공존하고 서로 섞이기도 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독자가 눈치라도 채면 큰일 날 듯 조심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더디긴 하지만 그래도 활자와 타이포그래피는 계속해서 변해왔다. 독자와 학자를 앞서가는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는 성공적인 것도 있지만 실패한 사례가 더욱 많은 것 같다. 파울 레너의 푸투라를 성공적인 사례로 이야기하며 그 이유를 기존 활자와 유사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사용해온 윤명조, 윤고딕의 경우도 그렇다. 100, 300, 500, 700, 조금씩 변화하지만 그 변화를 독자들이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최정호 글꼴의 미감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래야만 독자, 대중의 무의식적인 인정을 받고 성공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기에.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우울해진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이미 글꼴은 많지 않나요? 새로운 글꼴을 디자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뭐가 새로운 거죠?”라는 독자, 대중의 물음에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특히 한국에서는 하나가 더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인데? 한글을 돈 주고 쓰라니? 저작권이라니?” 이러한 반응을 보면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배달의민족은 5종의 실험적인 무료폰트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네이버는 지금까지 13종 35개의 나눔글꼴을 배포했고 앞으로 2020년까지 30종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한글날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무료폰트가 배포된다. 대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세종대왕님께서 무료폰트를 하사하신다.” 타입 디자이너는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그 활로를 찾을 수 있을까.



이야기가 딴 길로 흘렀지만 한편으로는 부럽다. 40년 넘게 글꼴을 디자인해온 세계적인 타입 디자이너. 40년. 벌어먹고사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행위의 불분명한 부분에 대해 고민한다. 알파벳 이야기라 그런 것은 아니고 사고의 차원이 와 닿지 않는 느낌이다.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나로서는 저자의 말이나 저명한 누군가의 인용구가 내게 닿지 않는다. 그저 머리로 받아들이는 정보 그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새 너무 일 없이 바빠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당장 11월 안에 마무리 지어야 할 서체 작업이라던지. 검수라던지. 리워드 준비라던지. 생각이 많아서 글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다시 읽을 때는 어쩌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우울한 이유가 있다. 레터링을 기반으로 조형적 특징을 글자에 담아내는 내 글자는 이 책과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본문용 활자에 대한 좋은 공부는 되었다. 실험적인 한글 조형. 가독성이든 판독성이든 그리 좋지 않은 글자나 익숙함과 거리가 먼 형태. 나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 “뭐가 새로운 거죠?”라는 물음을 가지고 새로움과 다양성을 추구해보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용제 선생님의 배양전을 보고 나서 내 글자와 내가 추구하는 길이 맞는가를 고민했었다. 가도 괜찮은 길인지. 가도 좋은 길인지. 가면 안 되는 길인지. 아니면 산으로 가는 길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활자는 역시 본문인가! 요즘 들어 보고 배우는 것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모르겠다. 일단은 경험치나 쌓을 겸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글자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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