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흔적 - 이용제, 박지훈 지음
2018. 0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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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흔적 : 근대 한글 활자의 역사.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읽기 편하며 가독성이 좋은 활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를 찾을 것이 아니라 옛 것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그 방법을 나는 피해왔다. 그 방향으로는 선대 디자이너들을 뛰어넘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나는 한글꼴의 다양화라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자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조금 더 쉬운 길을. 비교할 대상이 적은 길을. 비교되기 싫어서.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한글꼴의 시대적 변화의 양상이나 그 흐름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장엄하고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최지혁, 박경서까지 갈 것도 없이 현대에 속하는 최정호, 김진평 조차 나에게는 역사 속의 위인이라 볼 수 있다.
원도를 그리고 씨자를 조각하여 하나하나 조판하고 인쇄해야하는 번거로움은 모른다.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일러스트레이터를 통해 글자를 조형하고 바로 프린터로 출력한다. 작업의 깊이나 무게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굳이 근대 한글꼴의 역사를 알지 못하더라도 글자는 쉽게 그릴 수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 만큼이나 당연하고도 간단한 일이다. 아마 앞으로는 더 쉬워지지 않을까.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책을 보면 수십명도 아니고 수백년도 아니다. 다만 활자의 형태와 활자를 그린 사람 뿐만 아닌. 그 역사적 흐름이나 계보를 명료하게 정리할 만큼 머리와 눈이 따라주지 않는다. 배움이 모자라 아직 무지하니 별 수 없지만 그러한 벽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한글의 형태를 그리겠다며 여기저기 수많은 요소들을 차용하며 혼종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이 책에 담긴 근대사의 일부 만큼은 배웠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자칫 잘못된 길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장 복원할 가치가 있는 옛글자가 수없이 많다. 형태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것은 변함없으나 그 방법을 달리하여 보다 가치있는 활자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