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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대표의 긴급 기자회견

여전히 국민 프로듀서를 개돼지로 여기는 듯한 CJ의 사과

by 황진택


최근 프로듀스 시리즈에서는 조작에 의해 바뀐 데뷔 멤버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멤버가 특정되지 않았으며, 필자도 특정 멤버를 조작의 수혜자나 피해자로 지적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본문에 프로듀스 시리즈에 출연한 연습생들 사진을 몇 장 실었습니다만, 이 사진들은 본문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2019년 12월 30일 CJ ENM 허민회 대표이사가 프로듀스 X 101 투표 조작 사태와 관련한 사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프로듀스 X 종영 후 5개월간 침묵으로 일관하던 CJ였다. 이날 대표이사의 긴급 기자회견은 뭔가 대단한 발표가 있을 듯한 기대를 줬으나 막상 기자회견을 보고 나니 대체 기자회견을 왜 한 것일까 매우 의아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허 대표는 하여튼 일련의 사태로 실망한 모든 분들께 사죄를 드린다는 입장을 밝히며 준비한 사과문을 읽은 후 곧장 기자회견장을 나갔다.



이후 실무자라고 나온 듯한 신윤용 커뮤니케이션담당 상무와 하용수 경영지원실장 등을 상대로 한 질의 응답 시간이 있었으나 이들은 대부분의 질문에 수사 중인 상황이라 답변하기 곤란하다.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못해 죄송하다 라는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으며, 조작 사건 피해자에 대한 조치 및 향후 계획에 대하여 아무런 의미 있는 답변이 없었다.


일단 재판 중인 PD 3인 이외에 고위 관계자 개입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으며,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대답의 뉘앙스를 보면 쇼 미 더 머니 등은 잠정 중단할 것이며 빌리프랩 관련 오디션도 당장 계획대로 할 것 같진 않지만 하여튼 잠잠해진다 싶으면 다 하긴 할 것이라는 것 같다.


Mnet이 제작 및 유통에 손을 떼야 한다는 지적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할 기회를 놓는 것 자체가 K-POP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허 대표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이즈원과 엑스원을 해체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CJ는 순위 조작 프로그램을 통해 엠넷에 돌아온 이익과 함께 향후 발생하는 이익을 모두 내어놓겠다며, 그러면 약 3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기금을 외부의 독립된 기관에 맡겨 음악산업 생태계 활성화와 K-POP의 지속 성장을 위해 쓰이도록 하겠다 라는 계획을 밝혔다.


300억 원의 돈으로 외부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방침은 마치 이명박 대통령의 전재산 환원으로 설립했다는 청계재단을 연상시키는데, 말은 좋지만 애당초 조작까지 해가면서 연습생들을 열정페이로 착취한 것이 다 돈 때문이라는 것이 명확한데 CJ 수뇌부의 물갈이 없이 논란의 그룹 활동을 계속하며 수입은 사회 환원하겠다는 방침에 의심부터 하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다.


조작 사건의 피해자는 100원의 문자투표를 돌려준다고 해서 회복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팬들과 순위 조작에 의해 직접적으로 데뷔 기회를 빼앗긴 연습생들이다.


순위 조작으로 데뷔해놓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활동하면 아쉽게 떨어진 멤버들은 뭐가 되는가.


지금 시점에서 굳이 조작으로 들어온 멤버가 누구인지 가리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지만 파이널에서 11인 안에 들었는데도 조작으로 떨어진 멤버가 누구인지 특정하는 것은 그 멤버의 이력서에서 빼앗긴 한 줄을 돌려주는 의미에서라도 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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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상무와 하 실장 등은 피해자가 추후 아이즈원 또는 엑스원 멤버로 활동하길 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기존 소속사와 멤버들과 추후에 협의해서 판단하겠다 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들은 아이즈원과 엑스원 활동이 잠정 중단된 상황은 매우 안타깝다. 팬들도 근황을 궁금해하는 것으로 안다. 활동을 조속히 재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라며 조작 그룹들의 활동 강행을 기정사실화했다.


정말 황당한 것은 프듀는 개인 PD가 데이터를 갖고 있다.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해 피해자와 수혜자를 구분하지 못했다 라며 연습생 보호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피해자와 수혜자가 가려지더라도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힌 점이다.


최근 검찰의 기소결정문에 의해 밝혀진 내용을 보면 시즌 1 1차 투표에서 60위 밖의 연습생을 60위 안으로 순위 조작했고, 시즌 2에서도 60위 밖 연습생을 60위 안으로 넣었고 최종 생방송 당시 11위 밖 연습생 1명을 순위 조작하여 워너원으로 데뷔시켰으며, 시즌 3, 시즌 4는 데뷔조 모든 멤버의 순위를 임의로 정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고 한다.


시즌 1의 경우 데뷔조 조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시즌 1 I.O.I의 1명 조작은 조작의 주체가 안준영이 아니라 한동철이라는 이유로 안 PD 기소문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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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2에서는 한 명씩밖에 조작 안 했으니까 대부분 멤버들은 죄가 없다 할 게 아니다.


프로듀스의 불공정성은 매우 노골적이었다. 분량과 방송 내용의 차이가 대단히 불공정해서 충분히 인기를 끌 만한 능력이 있는데 부각되지 못했던 연습생들이 많았다는 점, 높은 순위에 있었으나 사실은 높은 인기를 누릴만한 연습생이 아니었는데 제작진이 워낙 많이 밀어줬기 때문에 데뷔에 성공한 멤버들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제작진의 농간에 의해 순위가 올라간 정도 자체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PD픽들을 위로 올리려고 노력했으나 정 안 된 멤버들은 순위 조작으로 데뷔시켰다는 것인데, 최종 조작한 1명만 퇴출되면 괜찮다고 할 것인가? 사실 아슬아슬하게 조작을 벗어나 데뷔에 성공한 PD픽 멤버들도 죄질이 크게 다르다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시즌 1부터 꾸준히 이 프로그램의 PD픽 멤버들은 사전에 경연곡을 미리 알고 연습했다는 정황 때문에 멤버들은 죄가 없다고 할 수 없고 당연히 모두가 조작의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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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2에서는 방송 내용 등을 통해 조금씩 조작을 하다가 파이널에서 순위 조작은 1명씩만 했는데, 데뷔 후의 여론이나 팬들의 반응을 보니 좀 더 과감하게 조작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시즌 3부터는 아예 통째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파이널 이전 상위권이었던 멤버들이 상당수 데뷔에 성공한 정황을 보면 시즌 3, 시즌 4에서도 실제로 파이널 조작에 의해 순위가 뒤바뀐 연습생의 숫자 자체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순위 조작에 의해 떨어뜨린 멤버들도 개인이나 회사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조작 이전의 순위로 팀을 재편성해서 재데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이날 기자회견은 CJ가 프로듀스 X의 조작 의혹이 처음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꾸준히 유지해온 입장인 순위 조작 여부와 상관없이 끝까지 지금 데뷔한 11인으로 활동 강행을 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힌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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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는 프로듀스 X 101이 종영한 후 반년 간 아무런 구체적인 입장 표명 없이 계속 침묵을 유지하다가 왜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어째서 막상 기자회견에서 향후 계획이나 후속 조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을까?

대체 구체적인 피해 구제 대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왜 긴급 기자회견을 소집한 것일까?

혹시 뭔가 계획이 있긴 있었는데 대표이사는 가 버리고 실무자들이 함부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라서 얼버무린 것일까?


이날 CJ는 일련의 투표 조작 사태를 개인의 일탈로 규정짓고, 아이즈원과 엑스원의 활동은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추가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공정성과 신뢰성이 확보된 뒤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선, 정말로 CJ가 너무 무능해서 PD의 일탈에 의해 투표 조작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일 가능성은 개인적으로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CJ 입장에서도 투표 조작 논란이 발생한 것이 너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머리 잃은 파리처럼 방황하느라고 사과 기자회견이 많이 늦었던 것이고, 원래 상황 파악도 못할 정도로 멍청하기 때문에 결국 "미안하다. 대책 없다." 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의미 없는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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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을 갑자기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특정 기획사에서 갑자기 불온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CJ가 공룡기업이고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인 건 맞는데, 막상 억울하게 피해를 본 기획사 입장에서는 수틀리면 법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다. 믹스나인 데뷔 무산 후 해피페이스에서 YG를 고소했던 전례도 있다.


방송 내용을 보면 프로듀스 X에서는 꾸준히 중고 신인들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불쏘시개 용도로만 사용하고 데뷔조가 될 수 있을 만큼 많이 밀어주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워낙 연습생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낮다 보니 중고 신인들이 너무 꾸준히 높은 순위를 기록해서 결국 데뷔조까지도 몇 명 올라오게 된 것처럼 보였다.


애당초 모든 기획사가 공범이었다면 아 걸렸구나 하고 다 같이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지 추가로 법적 다툼을 할 이유가 별로 없는데, 여전히 알고 보니 모든 게 다 조작이었다. 안 밀어줬는데 올라온 것처럼 보이는 멤버들, 예상과 다르게 순위가 많이 오르고 내린 멤버들의 존재 자체가 다 조작이고 최종 데뷔조 멤버 구성을 그냥 다양하게 구성한 것뿐이다 라는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지만, 만약 김우석 조승연 한승우 등 중고 신인들이 기획사와 공모한 모종의 플랜으로 밀어준 것까지는 아닌데 정말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온 게 사실이라면 티오피미디어나 플레이엠엔터테인먼트에서는 지금 상황에서 당당하게 CJ를 고소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결국 엑스원을 해체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다시 한번 밝힌 것이 기자회견의 핵심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최근 아이즈원과 엑스원의 활동이 중단된 후 불만이 나오는 것을 덮기 위해 기자회견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은 파이널에 멤버를 올렸으나 데뷔에 실패한 회사들이 고소를 해야 하는데, 다들 사정이 매우 열악하거나 CJ의 자회사라서 애매한 상황이다.



여러 정황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데뷔에 성공한 멤버들 모두의 기획사가 다 공범일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현재 검경이 내놓은 수사 결과를 보면 엑스원의 경우 3개 기획사 정도만 공범인 것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 애당초 조작 자체가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행해졌고, 기획사의 청탁도 증거를 마구 남기며 행해졌을 리가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 압수수색도 안 당한 기획사들은 설령 조작에 참여했더라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될 것이 자명하다.


CJ에서는 엑스원이 해체된 후 재판에서 공범이 아닌 것으로 정리된 기획사 측에서 엑스원이 5년간 정상적으로 활동했을 경우 예상되는 수입을 달라며 고소를 할 경우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질 것이고, 결국 염치 불구하고 무조건 활동 강행을 하겠다고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CJ가 믿는 구석은 아무래도 정의 구현을 위해 피해자를 특정하고 조작 그룹을 해체하길 원하는 팬들보다는 멤버들에게 동정적이고 무조건 감싸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계속 활동해주길 바라는 팬들이 꽤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CJ가 원하는 것은 앞으로 좀 잠잠해지면 엑스원을 다시 행사나 돌리고 지하 아이돌로 활동시키겠다는 것이며, 여론의 도움을 얻으려고 애초 활동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즈원의 팬들에게도 호소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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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애매해서 의아했던 이날 기자회견 자체가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경찰이 이번 사건에 꽤 강경하게 달라붙었고 재벌 관련 사건으로는 유례가 없어 보일 정도로 성의 있는 수사를 하긴 한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내부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검찰은 분명 CJ에게 향후 사건이 어떻게 정리될 것인지 어느 정도 설명은 해줬을 것이다.


CJ에서는 하여튼 죄송하다. 뭐든 책임을 지겠다 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일찌감치 했어야만 했지만, 두루뭉술한 사과를 했다가 나중에 순위 조작이 PD의 개인 일탈이 아니고 CJ에서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밝혀지면 상당히 곤란하니까 형식적인 사과도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다가 단순히 상황을 보니 수사가 CJ 수뇌부까지 향하지는 않은 것이 확실해서 그냥 갑자기 의미 없는 기자회견을 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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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의 결정을 뒤집을 만한 힘을 가진 이해당사자가 없기 때문에, 팬들이 뭐라든 여론이 어떻든 이날 발표한 대로 빠른 시일 내에 아이즈원과 엑스원이 활동 강행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식이 통하는 나라였다면 이 정도 스캔들을 일으킨 회사는 당연히 완전히 퇴출되었을 것이고, 죄 없는 연습생들도 덩달아 퇴출되어 버렸을 것이다.


CJ가 과연 책임 있게 약속을 지킬 것인지 자체가 믿어지지 않지만 어쨌든 CJ는 프로듀스로 얻은 이익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했는데, CJ는 이익을 포기할 게 아니라 CJ의 조작 오디션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연습생들과 팬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


CJ가 믿는 구석은 결국 대중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거라는 점 아닌가?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엑스원의 활동에는 조작돌이라는 오명이 계속 따라다닐 것이라는 사실이다.


프로듀스 X 101의 조작 의혹은 파이널 직후부터 제기되었고 엑스원 멤버들은 사실상 조작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데뷔를 준비했다. 이후 이들이 데뷔 싱글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사실 프로듀스 X 101 방송 내내 허술한 모습만 보여왔던 일부 멤버들의 과거를 생각하면 정말 많은 발전을 보여주긴 했다. 멤버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점 잘 알지만 과연 이대로 활동 강행이 옳은 길인지, 필자는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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