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방관해선 안 될 강대국의 탐욕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2020년 11월 있었던 미얀마 총선 결과에 불복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군은 선거 사기에 대응하여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인사들을 구금했다며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최고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에게 권력을 이양한다고 발표했다.
쿠데타 세력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력이 계속되고 국민들은 불복종 저항 운동을 하고 있지만 군부는 비무장 시민을 향해 곧장 발포를 하여 연일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사복경찰과 깡패를 동원해 몽둥이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구 두들겨 패는 야만적인 폭력으로 시위를 진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80년대 상황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시위에 나서는 미얀마 젊은이들은 팔목에 혈액형과 부모의 전화번호를 적고 거리로 나서고 있으며 시위대는 각국 대사관을 찾아 도움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 한국 등은 곧장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국제사회는 대체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하고 선거에서 표출된 미얀마 국민의 의지가 존중되어야 한다며 아웅산 수치 등 구금된 인사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지만 외교적 수사 이상의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국가는 전무하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은 미얀마 쿠데타를 계기로 원조 중단 결정을 했지만 사실 훨씬 일찍부터 로힝야 학살을 이유로 원조 중단한 지 오래됐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
서방 국가들이 일제히 쿠데타를 비판하는 가운데 중국은 미얀마 쿠데타를 규탄하려는 유엔 안보리 성명을 반대하는 등 명백히 군부 쿠데타를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다들 미얀마 군사정부와 비슷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동남아 주변국들은 미얀마 국내 문제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미얀마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서북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으며, 영토의 크기는 동남아 최대 강국인 태국보다도 넓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처럼 풍요로운 기후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세계 최빈국에 속하지만 불교문화가 강하고 승려 인구가 많아 종교적 기부가 많은 까닭에 국민들이 재산 대비 세계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나라라는 특징이 있다.
미얀마 인구의 68%가 미얀마어를 사용하는 버마족으로 이들이 이 나라의 주류 인종이지만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소수민족으로 샨족, 카렌족, 친족, 카친족, 몬족 등 소수민족들이 다들 인종과 언어뿐 아니라 종교도 다 달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사실 방대한 지역이 소수민족 반군의 통제 하에 있으며 1948년 독립 직후부터 현재까지 매우 오랜 기간 장기 내전 상태에 있다.
미얀마의 상황 자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번 사건이 미중 패권 경쟁과 연관성이 있다거나 중국이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견제 외교 정책 자체를 시험해보려는 시도인 것으로까지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 애초 미얀마 군부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자 개혁·개방을 선택했고, 이를 위해 서방에 내세울 얼굴마담으로 수치 여사를 이용해 정치적으로 타협했던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결국 미얀마 군부가 미국이 지지하는 수치 여사를 구금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결단은 중국을 등에 업고 반미 노선을 택하겠다는 선언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수십 년 동안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2020년 1월 17일 시진핑의 미얀마 방문 당시 왕이 외교부장이 미얀마 군부 지도자와 만났다.
미얀마 정부가 군부의 로힝야 학살로 인해 서방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중국과의 만남은 당연히 일대일로에 대한 논의이며 어쩌면 쿠데타 성공 이후 중국의 남중국해 패권 정책에 협조하는 대가로 쿠데타를 묵인받겠다는 협상이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쿠데타의 직접적인 원인은 총선에서 전체 선출 의석의 83.2%를 석권한 민주민족동맹이 국회 4분의 1을 차지하는 군부 의석수를 향후 15년간 점진적으로 줄이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개헌은 당연히 총선 공약이었지만 미얀마에서는 원래 국회 의석의 25%를 사전에 군부에 할당하는데 개헌을 하려면 찬성표 75% 이상을 넘겨야 하기 때문에 군부 스스로 말도 안 되는 법을 고치고 권력을 내놓지 않는 이상 개헌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헌법개정안 투표 자체가 군부의 반대와 일부 민주민족동맹 의원의 이탈로 부결됐는데, 군부 입장에서는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 둬도 허수아비 수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굳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국민적 저항이 당연한 쿠데타를 감행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에 다른 외부적 요인이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만하다.
미국은 미얀마 사태에 문자 그대로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앞으로도 그냥 계속 모르는 척할 것 같은데, 유일한 이유는 미얀마가 미국 입장에서 크게 돈도 안 되고 여기까지 영향력을 확대해봐야 군사정책적 이점도 별로 없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얀마는 1962년 이후 50년 이상 군부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이미 1988년에 민주화 바람이 불자 대학생 시위대 등 무저항의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여 3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총에 맞아 죽었다.
미얀마에서 대통령과 총리는 군부에 명령할 권한이 없고 국회 의석 25%는 군부가 임명하며 반란이나 폭력으로 인한 비상사태 발생 시 국가 안보와 국가 통합을 위해 군총사령관이 권력을 갖는다는 등 이 나라는 박정희 시대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한 체제이다.
미얀마는 19세기 말 영국이 지배하는 인도에 병합됐다가 이후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점령했으며, 일본 패망 후 다시 영국령이 됐다. 당시 미얀마의 독립운동을 이끈 아웅 산 장군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끌어내고 국가 재건 준비 중 반대세력에게 암살당했고,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뒤 계속해서 미얀마 대중은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옛 군부가 신군부로 대체될 뿐, 꾸준히 군부 독재 정부가 유지되고 있다.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의 국부로 숭상받는 아웅 산 장군의 딸로 유학시절 외국인 남편과 만나 가정 주부로 살고 있다가 1988년 항쟁 당시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미얀마에 귀국한 후 군사 통치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했다.
항쟁이 대량학살의 비극으로 마무리되며 수치는 무기한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미얀마 군부는 그를 제거하고 싶었겠지만 그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경우 내부 동요를 우려했을 것이다. 군부는 수치 여사를 매우 오랜 세월 집에 가둬두고 아무것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 수치 본인이 약간 제대로 된 철학을 내놓지 못한다거나 상황 판단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등 뭔가 박근혜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수치가 갇혀 있지 않고 정치를 했다면 오히려 지금 같은 인기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아웅산 수치 본인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 같은 존재로 광범위한 국민적 존경을 받아야 하는가 라는 시각도 있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꾸준히 저항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명 의미는 있는 일이고 그의 존재 자체가 민주화를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온 미얀마인들에게는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왔다. 수치의 남편이 영국에서 암으로 사망할 당시 군부는 수치 여사에게 영국 출국을 제안했으나 수치는 군부가 본인의 미얀마 귀국을 불허할 가능성을 걱정해서 군부의 제안을 거부했다.
국제 사회의 압력을 받은 미얀마 군정이 결국 가택연금을 해제하여 수치 여사는 2012년에 국회의원에 출마하며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고, 대한민국에도 방문해서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5·18 국립묘지 참배도 했다.
수치 본인은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미얀마 법에 의해 대통령이 될 수 없는데, 2016년 아웅산 수치의 소속 정당인 국민민주연맹에서 대통령이 당선되며 사실상 수치가 정부를 장악한 것처럼 됐지만 사실 진짜 권력은 여전히 군부가 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표면적으로는 민주화하고 아웅산 수치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매우 본격적으로 로힝야족 인종 학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인종 증오범죄 학살범이 된 상황에 국제사회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웅산 수치는 꾸준히 대놓고 실질 권력은 여전히 군부가 쥐고 있어서 본인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로힝야 학살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 문제 자체가 단순 루머,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웃어넘기는 등 이해하기 힘든 반응을 보여 단순히 로힝야족 탄압에 침묵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관여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받고 있다.
아웅산 수치의 로힝야족 탄압 방관에 실망한 노벨 재단은 그의 행동에 유감을 표시했으나 노벨상 박탈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2018년 이후 아웅산 수치가 수상했던 많은 상과 명예시민권이 다 박탈되는 중이고 한국에서도 그에게 준 광주인권상을 박탈했다.
K-POP을 통해 한글에 익숙해진 미얀마 젊은이들이 한국어로 꾸준히 도움을 요청하는 영상을 보며 한국인들은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니네 나라 일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우리가 남의 나라 일에 관여하는 것은 내정간섭이고 원래 민주주의 달성하려면 많이 죽어야 된다 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필자는 미얀마 사태를 비롯한 미중 패권경쟁은 결코 남의 일로 생각할 사안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
중국이 미얀마 군부를 움직여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억누르려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목표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동남아 각국에 영향력을 확대해놓고 본격적으로 남중국해가 전부 중국 꺼라고 우기겠다는 것이며 남중국해 군사기지 건설의 목표는 당연히 미국 견제에 있다.
중국은 내몽골 신장위구르 티베트 등 중국과 전혀 다른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닌 나라들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소수민족 탄압 정책을 펼쳐 일제강점기 조선말살정책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 지역들에 중국화를 강요하고 있으며,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거의 모든 나라와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에 대한 집착은 매우 비이성적이며 과거 역사적으로 한 번이라도 중국의 일부였던 지역은 모두 중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중국이 원하는 대로 그 모든 지역이 다 중국 땅이 되면 중국은 만족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단 중국이 원하는 것은 지금 일대일로 사업이라고 명명하며 멋대로 선을 그어 놓은 지역이 전부 중국의 영향력 하에 놓이는 것이며, 그것이 완성되면 다음 단계는 세계 전부가 중국이 정하는 질서를 따르는 일일 것이다.
2017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주석이 역사적으로 남북한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을 했다고 밝혀 논란이 됐던 바 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김치과 한복이 중국 고유 문화라고 우기는 이유는 몰라서 무식해서가 아니고 중국 문화에 열등감이 있어서도 아니다. 이는 생각해보면 매우 두려운 일이지만 중국의 터무니없는 우기기의 최종적인 목표는 북한이 혹시 국가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위태로운 사태를 맞게 됐을 때 북한 땅을 흡수하겠다는 목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어떠한 국제정세의 변화로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거나 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중국이 일방적으로 오늘부터 한반도는 하나의 중국의 일부라며 대만, 홍콩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수작을 벌이는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별로 이상하진 않다.
동북공정이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의 준말로 과거 한 번이라도 중국 영토에 속한 적이 있었던 지역의 나라들은 모두가 알고 보니 원래 나라의 기원 자체가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정부 주도의 역사 왜곡 시도로, 2002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실행되어 2008년 이후까지 진행했다.
중국이 동원한 역사학자들은 딱히 역사적인 사실을 재해석하거나 문자를 달리 해석해서 날조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소설을 쓰듯이 역사를 만들어내어, 오랜 세월 중국인들이 동이족이라고 부르며 무시했던, 말 타고 활 쏘는 위험한 야만인들 사는 지역이라고 두려워해서 중국과 사이에 장성으로 막아놨던 그 동북 방향 건너 땅 역사가 갑자기 실은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만리장성의 길이를 확대 왜곡해서 만리장성이 고대 한국의 고구려, 발해 땅까지 이어져 있었다고 날조하여 실제로 세계 많은 박물관의 중국, 아시아 관련 전시에서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이어져 내려와 있다.
고구려, 백제 등이 강성할 당시 중국 지역 일부를 통치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정면으로 부정하며 고구려와 발해 등이 중국 왕조에 예속된 지방정권 내지는 속국이라는 허위 이론을 지어냈는데, 대체로 부여가 중국 소수민족이었다고 주장하며 고구려의 평양성 천도를 기점으로 이전은 중국 역대 소수민족이 세운 중국사이고 이후는 한국사다. 발해는 말갈의 나라이고 고구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라고 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2004년 이 문제가 정치 문제화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한중 양국의 합의 이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으나 중국 공산당 선전부 등은 은밀히 계속해서 동북공정을 감행했으며, 중국의 로비에 의해 전세계 많은 나라의 교과서에서 세계사 부분에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역사로 기술되거나 청나라 영토에 한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구려와 발해 등은 원래 다민족 연합 국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고구려의 일부가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민족의 일부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은 매우 명백한 역사적인 사실이고 고구려, 발해 멸망 후 일부는 만주족이나 중국의 일부로 변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현재 형성된 한민족, 중국 민족 등의 구분 자체가 여러 다른 민족과 문화가 끊임없이 합쳐졌다 헤어지곤 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천천히 융합되어 형성된 것이다. 사실 중국 문화의 뿌리는 매우 깊지만 중국 민족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것은 우리 한민족에 비해 역사적으로 매우 최근의 일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민족의 뿌리를 찾아내는 연구는 학술적인 의미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어떠한 정치적인 의미를 두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것이, 피부색이 다르다고 열등하거나 우수한 인간 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문화적인 차이도 단지 다름일 뿐이고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며, 사실은 지구촌 시대에 우리나라 우리 민족만 부르짖으며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기준이 어디까지인가를 구분 지으려는 노력 자체가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다시 말해서 필자는 가령 간도와 대마도 등이 과거 조선 땅이었던 적이 있다고 해서 언젠가 이 지역을 우리나라 영토로 수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애초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영토분쟁이라는 것 자체가 없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무조건 현재 실효 지배하고 있는 나라를 인정하는 게 정상적인 일이며, 현재 동북아는 각 나라의 민족 구분이 매우 뚜렷하게 형성되어 이 지역은 어느 나라 땅인지 애매하다 라고 할 만한 지역이 전혀 없다. 조선족은 확실히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니까.
2021년 3월 1일 서길수 전 서경대 교수는 '동북공정 침탈 보고'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중국이 동북공정 이후에도 역사 침탈을 계속했고, 현재는 한국사 전체를 침탈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역사 침탈을 마무리한 중국이 2016년까지 지린성 사회과학원이 발행한 학술지 '동북사지'를 통해 역사왜곡을 계속했다. 이에 의하면 고조선·고구려·부여·발해는 중국사의 일부이며 신라·고려·조선의 역사는 중국의 번속국(반식민지)이다.
세계의 중국어 사용자 80%가 쓰는 포털 바이두의 백과사전에서 고조선은 문화는 물론 혈연의 속성 같은 모든 것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이나 조선의 역사에 속하지 않는 중국 고대의 지방정권이라고 했고, 고구려는 중국 중앙 왕조의 지방행정조직 특성을 가졌으며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가 아니었다.
중국 역사 교과서조차 왜곡을 보이고 있다. 과거 초급중학과 중국 역사에서는 수 양제가 끊임없이 이웃 나라(고구려)를 공격했다 라고 했는데 2016년 중국 역사 교과서에선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조차 드러내지 않은 채 수 양제가 요동을 세 차례 쳤다 라고만 써서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이 중국과 외국의 전쟁이 아니라 마치 중국 내부의 전쟁인 것처럼 서술했는데, 이 같은 중국의 패권주의 역사 침탈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