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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진택 May 02. 2022

윤석열정부 초대내각 인물 소개 - ③

친일과 독재를 두둔하는 박보균 문체부 장관 후보자


윤석열 당선인이 조작 수사와 거짓말, 친일 언론의 언론 조작의 도움으로 당선된 후 하여튼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선거에서 이기는 게 장땡이고, 나라를 잘 다스리려는 사람보다는 국민을 잘 속이는 사람이 잘 당선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며 원래 이런 것이 민주주의기 때문에 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닐 수도 있는데, 단순히 그가 본인 비리를 덮기 위해 대통령 된 것뿐이고 나랏돈 빼돌려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려는 목적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말 우려되는 것은 사실 외부의 위협이다.


일본 관련 글을 쓸 때마다 여러 번 강조했던 바지만,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고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하겠다는 시도는 농담이나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고 그들은 대놓고 꾸준히 한반도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동일본이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상황에서 타국을 침략해서 영토를 빼앗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이고, 그들은 백여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무리한 물리적 전쟁보다는 한반도 내 친일파 양성과 언론플레이에 돈을 아끼지 않으며 우리 안의 친일파가 정권을 잡고 나라를 오롯이 일본에게 갖다 바치기만 기다리는 중이다.



사실 이명박 박근혜 때도 거의 갖다 바칠 뻔했지만 어떻게 운이 좋아서 정권교체도 되고 시간이 지나며 일본의 도발도 이겨내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가 했다. 2022년, 결국 친일과 독재의 망령을 떨쳐내지 못하고 한술 더 떠서 대놓고 유사시 일본의 한반도 개입을 허용하겠다고 발언한 후보가 당선되어버린 상황에서 우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윤석열정부 초대내각이 온통 평소 친일 발언을 서슴지 않던 인간들로만 이루어진 사실에 더욱 경악할 따름이다.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지명된 박보균 후보자는 중앙일보에서 정치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편집인·대기자를 역임했으며 꾸준히 이런저런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칼럼을 써 온 사람이다. 특히 일본의 침략 전쟁을 일본인 이상으로 찬양하고 옹호하던 그의 칼럼을 읽어보면 이런 사람을 장관 후보로 지명한 김건희의 배짱에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김건희 최은순 등이 노인정 내각을 구성한 것은 나이를 핑계로 곧장 자르기가 쉽기 때문일 수 있으며, 지능범답게 바로 본인 측근들로만 내각을 구성하는 욕심을 부리기보다 때를 기다리고 일단 올드보이들을 욕받이로 내세운 후 서서히 언론 조작을 해놓은 뒤 1, 2년 후에 무속인 측근 등을 본격적으로 고위층 임명직에 투입하여 비선 실세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수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윤석열 측이 무서운 것 없이 폭주하는 것은 이미 검찰독재 국가를 선언한 만큼 검찰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9일 국민권익위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현지에서 열리는 BTS 콘서트와 관련 언론사 부담이 원칙이라며 원칙적으로 언론사 기자 등은 일체의 금품을 수수할 수 없는데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가 BTS 콘서트에서 콘서트를 취재하는 기자단 100여 명에게 항공권과 숙소, 식사비 등을 지원한 행위가 법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하이브는 법무팀 자문을 마친 사안으로 이미 권익위에서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은 상황이었다며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고 결국 예정대로 기자단 팸투어를 감행했는데, 이는 명백하게 BTS가 윤석열 취임식에 참석해주면 군 면제를 해주겠다는 당근과 함께 말 안 들으면 표적 수사하겠다는 협박을 감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하이브 측에서는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일정 조정을 할 수 없으니 취임식 참석을 거부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방탄소년단을 협박할 정도면 정말 무서운 게 없는 것이다.




윤석열과 박보균의 전두환 찬양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운동 당시 부산 해운대 당원협의회 방문 자리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는 발언을 했다. 발언의 취지는 비록 전두환이 무식했지만 각처 장관에 실무자나 전문가들을 배치했기 때문에 나라가 잘 돌아갔다는 의미였던 듯하다. 이는 애초 윤석열이 정치 초년생인데 어떻게 대통령 노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었고, 전두환이 군에 있으면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경제는 경제를 잘 아는 경제수석에게 맡겨 경제가 잘 돌아간 것이다. 자신도 정치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전두환처럼 최고 전문가를 뽑아서 임명하고 시스템적으로 관리하겠다 이런 발언을 이어갔는데, 실제로는 전두환은 실무자들보다는 그냥 자기 가까운 측근들만 높은 자리에 앉혔고 그래서 군부 독재 정부의 부패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현재 윤석열정부 내각 지명을 보면 확실히 윤석열이 전두환을 존경한다는 게 거짓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당시 전두환 찬양 발언 사과 요구가 빗발치자 윤석열은 사과를 거부하며 반려견 사진을 올리던 인스타그램에 개에게 사과를 먹이는 사진, 나무에 사과를 매달아 놓은 사진, 돌잡이에서 사과를 잡은 사진 등을 잇달아 올리며 그런데 참 이상하죠? 석열이형은 지금도 과일 중에 사과를 제일 좋아한답니다. 추억의 인도사과, 토리야! 인도사과다! 토리는 아빠 닮아서 인도사과 좋아해요 등의 메시지를 올려 인도주의나 사과 요구는 개나 주라는 의미를 전달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5·18 묘역 비석 닦기 퍼포먼스 이후 영남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시점에 호남 방문을 예고해놓고 부산을 찾아 논란의 전두환 두둔 발언과 호남 분들도 전두환이 잘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는 발언은 매우 의도적이었고, 전라도 빨갱이들을 소탕한 전두환이 참 잘했다는 칭찬으로 경상도 표심을 얻겠다는 의도였다. 개 사과 논란조차 뻔히 욕먹을 것을 알지만 이런 조롱이 영남 지방 노인들이나 일베충들에게 동질감과 친근감, 표심 관리하는 효과가 더 높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며 어쩌면 인스타그램의 천박한 말투조차 일베 집단에게 구애하는 의도가 깔려있었던 고도의 심리전이었을 수 있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했다. 신군부는 1980년 초부터 이른바 K-공작 계획을 실행하여 언론을 통제하고 군부 독재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북괴남침설을 조작하며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선포한 뒤 정치활동 금지령·휴교령·언론 보도 검열 강화 조치를 취했다. 군부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정치인 수천 명을 감금하고 군 병력으로 국회를 봉쇄하자 전국적으로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가 발생했는데, 전두환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계엄군을 투입해서 진압했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이미 베트남 파병 당시 민간인 학살 경험이 있던 군인들이었으며 공수부대는 운동권 대학생뿐만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무고한 시민까지 닥치는 대로 살상하고 폭행했다. 5월 18일 0시부터 계엄군은 전북대 교내로 진입했고 당시 학생회관 3층에서 유인물을 작성 중이던 농학과 2학년 이세종 열사가 금마 7공수부대원들에게 개머리판 등으로 집단 폭행당해 살해당하며 5·18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10일에 걸친 무차별 학살로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공수부대의 투입은 매우 계획적이었으며 이미 80년 3월부터 전국 군부대에 공세적 폭동진압훈련인 충정훈련이 강도 높게 실시됐다. 광주에 온 군인들은 정말로 북한이 배후에 있는 폭동을 진압하는 것으로 알고 비이성적인 학살을 감행했다. 


당시 미국은 사실상 군사 반란을 묵인하고 그저 쿠데타와 학살에 우려를 표하고 주한미군 차원에서 항의를 하는 등의 소극적인 조치만 취했는데, 군부의 통제를 받은 언론이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와 5·18 민주화 운동 진압을 승인했다는 보도를 쏟아내 이 영향으로 80년대 이후 학생 운동권 세력이 반미 경향을 갖게 되었다.


문민정부 출범 후 1994년 5·18 피해자 322명은 전두환·노태우 등 5·18 관련 책임자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1995년 12월 15일 헌법재판소에서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 가능하다는 인용 결정을 내렸고,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 및 다른 피의자들에 대해 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 등의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 중 전두환과 노태우가 재벌 등에게 뇌물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추가되며 1심에서 전두환은 사형 및 추징금 2295억 5000만 원, 노태우는 징역 22년 6월에 추징금 2388억 9600만 원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6월로 감형되었고 추징금도 조금씩 깎아줬다.



2014년 전두환은 회고록을 출판하며 광주 학살을 부인하고 5·18 민주화 항쟁 사건 당시 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여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이유로 재판을 나오지 않고 있는 전두환이 지인들과 골프를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2019년 11월 7일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임한솔 당시 정의당 부대표가 전두환 일행에게 다가가 광주 5·18 학살 책임에 대해 한 말씀해달라 하자 전두환은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 했고, 천억이 넘는 추징금과 고액 세금 언제 납부하실 겁니까 묻자 자네가 좀 납부해주라 하는 등 치매 노인답지 않게 뚜렷하고 정정한 말투로 임 씨를 조롱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당시 전두환 일행은 골프채로 임 씨를 폭행했고 임 씨가 본인은 정의당 부대표고 서대문구의회 의원이다. 공직자니 함부로 때리지 말라 했지만 여전히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며 그를 쫓아냈다. 



박 후보자는 2019년 3월 14일 'DJ 집권 시절이 좋았다' 라는 칼럼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평생 의리를 중시했다. 자식·친척·측근들에 대한 마구잡이식 재산압류는 그의 수난 중 가장 심한 수모와 고통이었을 것이다. 전두환식 리더십의 바탕은 의리다. 거기엔 수호지의 양산박 느낌이 풍긴다 라고 했다. 

이 칼럼이 나온 시점은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 전 씨가 재판 출석 중 조는 모습 등으로 비난을 받던 시점이었는데, 칼럼에서 박 후보자는 전두환의 광주 언행은 그런 감정(혐오) 표출의 소재다. '이거 왜 이래', 재판 중 졸음이 포착됐다. '광주 학살 주범의 뻔뻔함'이라는 경멸이 쏟아졌다며 전 씨에 대한 비판이 혐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진단했고, 2003년 재산명시 관련 재판에서 전두환의 예금이 29만 원뿐이라고 밝혀졌는데, '재산 29만 원'은 혐오의 압축이다. 조롱받기는 수난의 형태다 라는 등 전두환을 두둔하고 29만 원 운운은 부당한 비판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자는 2012년 7월 20일 '역사는 통합의 무기다' 라는 칼럼에서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들 중 여론 평가에서 1위다. 5·16은 쿠데타로 시작했지만 근대화 혁명의 시작이었다. 다수 국민은 박정희의 공과 중 공적을 먼저 바라보려 한다 라고 했다.  

2013년 4월 13일 '4.19 세대와 이승만의 화해'라는 칼럼에서는 이승만은 서사시다. 장엄하고 처절한 삶이다. 대다수 한국인은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4.19 주역들은 이승만을 역사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 이승만 생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을 차단해선 안 된다 라고 했다. 

2013년 5월 10일 '박근혜의 동맹, 박정희의 동맹'에서는 안보 우산 속에 박정희는 산업화에 매진했다. 그 뒤 자주국방으로 달려갔다. 용미자주는 노무현 정부 때 득세한 반미자주와 대조적이다. 외교의 전략과 절제, 고뇌의 질적 깊이가 달랐다.

2015년 7월 23일 '권력의 역사의식'에서는 이승만의 공적은 선명하다. 공이 과를 압도한다. 

2015년 10월 29일 '역사 내전 드라마'에서는 교과서의 박정희 사진은 한 장이다. 교과서는 경제 개발을 집권 과정의 취약성 만회로 묘사했다. 산업화의 시대적 열망은 일그러진다. 이승만에 대해서도 현행 교과서의 왜곡·편향을 실감나게 알려야 한다. 

2017년 11월 16일 '100주년 박정희의 신미양요'에서는 박정희는 그렇게 안보 의지를 단련했다.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의 강대국 다루기는 절제와 배짱의 배합이다. 그는 국력의 한계선을 넘지 않았다. 

2020년 8월 15일 '해방공간의 불꽃 격돌... 승부사 이승만은 하지를 어떻게 눌렀나' 라는 글에서는 문재인 정권에서 이승만의 서사는 고난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하수인'이란 프레임이 작동한다. 그것은 치사한 비방이다. 진실은 반대다. 그는 한반도 정책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의 성취는 저항의 결실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자들에 대한 박 후보자의 평가는 일단 역사적인 사실을 대단히 많이 왜곡하고 있으며, 이승만에 대한 젊은이들의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발언은 문자 그대로 독재자를 미화하는 역사 조작을 하자는 얘기로 들린다. 박 후보자는 꾸준히 이승만과 박정희 등의 업적이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는데, 현행 교과서는 모든 대통령들의 공과 과를 모두 서술하자는 식으로 저술되어 있기 때문에 이게 편파적이라는 주장은 이승만 박정희 등은 공만 기록하도록 역사 교과서를 조작하자는 주장으로 들린다.




대놓고 친일 매국 선언

박보균 후보자는 2014년 한림대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 세미나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일본에 대한 칭찬을 넘어 식민 지배를 긍정 평가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다.


우리는 호들갑에 익숙하다. 남 탓하기와 떼법의 싸구려 사회 풍조가 득세했다.

틈만 나면 예외를 자꾸만 두려고 그러는데 법이 정해지면 지키는 게 세계를 경영했던 나라들의 차이죠. 

일본이 아시아를 지배해봤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의 준법정신이 좋은데, 민족적인 교육도 있지만 세계를 경영해본 습관입니다. 

한국인들이 일본 수산물에 방사능이 있을까봐 안 먹잖아요. 동경에서 돈이 없어서 사시미하고 초밥을 못 먹는데.


그의 발언은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응'을 칭찬하고 있으며, 일본에 대한 칭찬을 넘어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야만의 시대 무자비한 침략 전쟁과 전쟁 범죄를 자행한 일본의 행위를 아시아를 지배해본 경험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며 오히려 일본인의 시각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소장은 박 후보자의 발언에 대하여 제국 중심의 생각이다. 식민지를 겪었고 또 역사를 바로 세워야 될 그런 의무를 가진 국가의 장관 후보의 역사 인식으로는 부적절하다 라고 비판했다.



같은 중앙일보 주필 출신인 문창극은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다. 

조선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된 것은 이씨조선 시대부터 게을렀기 때문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하나님이 받게 한 것이다.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는 것이 조선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다. 

우리 민족성을 보면 우리가 온전히 독립했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됐을 것이다 라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고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를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발언도 했는데, 그는 이밖에도 노무현 조롱, 세월호 발언, 셀프 급여, 군 복무 중 특혜 논란 등이 쏟아지며 후보자 지명 14일만에 사의를 표명하여 당시 세 번째로 낙마한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 후보자가 되었다.



박 후보자는 2014년 6월 12일 '박근혜 인사의 파격'이라는 칼럼에서 파격은 인사 묘미다. 언론계 출신 총리 기용은 처음이라며 문 씨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박근혜를 칭찬하고, 문 씨가 과거 작성했던 친일 칼럼들을 인용하며 그의 시선은 명쾌하다. 애국심과 자유 가치의 수호에서 뚜렷하다. 자유민주적 보수주의자다. 그의 색채는 선명하다. 자기 소신에 온정을 넣었다. 온정적 보수주의자다. 가치 균형론은 그의 화합 방식이다. 문 후보자는 주저하지 않는다 라고 극찬했다.

또한 박 후보자는 문 씨가 자진 사퇴한 뒤 6월 26일 '문창극 드라마'라는 칼럼에서 그에게 드리운 친일의 그림자는 밀려나고 있었다. 문창극의 방어력은 인상적이었다. 초기에 그는 고군분투했다. 그는 쉽게 낙담하지 않았다. 자신의 드라마를 만들어갔다. 낙인찍기는 유효했다. 친일 프레임은 매력적이다. 선정과 편향의 이야기가 진실을 압도한다. 문창극 청문회는 달랐을 것이다. 역사 논쟁의 치열한 무대가 됐을 것이다. 아쉽게도 무대는 차려지지 못했다. 그는 상식을 기독교 언어와 방식으로 언급했다. 전체 내용은 공감대를 이룬다. 고난을 이긴 한국인의 저력을 말했기 때문이다 라고 변호하며 선배 문 씨에 대한 찬양을 이어갔다.


문창극은 자신이 총리 후보로 지명된 뒤 나라가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에 빠져, 이런 상황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에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한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다. 민주주의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법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는 국회가 스스로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자신의 발언 몇 구절을 따내 보도한 것은 진실 보도가 아니며, 자신이 개인의 신앙에 따라 말한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끝내 친일 발언을 사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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