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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 Zugang Jan 16. 2019

주 독일 교황청 대사관에 다녀왔다

베를린에 있는 바티칸 교황청의 대사관 방문기

2019년 1월 9일 베를린



가톨릭 동아리에서 받은 이메일


화요일 저녁 이메일 하나를 받았다. 가톨릭 동아리의 뉴스레터였는데 다음날 Apostolische Nuntiatur에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Apostolische Nuntiatur? 이게 뭐지? 처음 보는 단어라 구글 검색을 해보니 바티칸 교황청 대사관이란다. 교황청에도 대사관이 있단 말이야? 찾아보니 서울에도 교황청 대사관이 있단다.


베를린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어디든 적극적으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겠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마침 수요일 저녁에 약속도 없고 교황청 대사관은 어떤 곳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가고 싶다고 이메일을 쓰고 아빠께 전화했다. 혹시나 교황청 대사관에서 나에게 언제부터 성당에 가게 되었는지 물어볼까 봐. 독일에서는 한국 사람인 내가 성당을 다닌다고 하면 놀란다. 아시아 = 불교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일까? 우리 집이 언제부터 가톨릭을 믿었는지 아빠와 이야기하다 보니, 할머니의 할어버지까지 시간이 거슬러 올라갔다.







수요일, 학교 도서관에서 저녁 6시쯤 교황청 대사관으로 향했다. 지하철 방향 잘못 탈까 봐,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버릴까 봐 지하철 노선도를 손에 꼭 쥐고 Südstern역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길을 구글 지도에 의지하며 걷다 보니 교황청 대사관이 보였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는 학생 두 명뿐이었는데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꽤 모였다. 얼추 30명은 넘어 보였다.





주 독일 교황청 대사관 정원의 크리스마스 트리

저녁 7시 반이 되니 대사관 문이 열렸고 신부님 한 분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정중하게 한 명 한 명 악수하며 인사하는 신부님을 보니 '이곳이 대사관이구나' 실감이 났다. 우리는 손님방에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우리를 맞아주셨던 독일 신부님(몬시뇰)은 대사관에서 일하시는 외교관 신부님이라 했다. 주 독일 교황청 대사관에는 외교관 신부님 4-5(체코, 이탈리아, 독일 등) 분과 수녀님 네 분이 일한다고 한다. 신부님은 유일한 독일 신부님이라고.





대사관에서는 주로 독일어로 말하는데 공식 언어는 이탈리아어라고 한다. 나는 교황님이 라틴어를 하시니 라틴어가 대사관 공식어인 줄 알았는데 역시 죽은 언어보다는 이탈리아어를 쓰는구나!






우리가 머물렀던 손님방

신부님은 독일이 통일되고 대사관이 1993년에 본(Bonn)에서 베를린으로 옮겨온 것부터 대사관 업무, 대사관에서 하지 않는 업무(다른 나라 대사관과 달리 경제, 국방의 업무는 보지 않는다고. 바티칸에는 군대가 없으니까), 교황청 대사관이 없는 나라(예를 들어 북한) 등을 설명해주셨다. 학생들은 신부님이 어떻게 외교관 신부님이 되셨는지 질문했고, 신부님은 바티칸 외교관 교육과정, 그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등 이야기를 해주셨다. 처음 듣는 독일 가톨릭 용어가 많았기 때문에 꽤나 집중을 하고 들어야 했다. 신부님은 Heiliger Stuhl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말씀하셨다. 누군가의 질문으로 독일 가톨릭 교회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교황청 대사관에서 신부님과 학생들이 이런 주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에 놀랐다. 참 독일스러웠다.




1시간 반 정도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대사관 성당을 보러갔다. 성당 가는 길 크리스마스 트리와 구유가 있는 로비를 구경했다. 로비를 둘러보다 보니 복층구조의 2층이 보였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던 미카엘 신부님의 사제관이 생각났다. 미카엘 신부님 사제관도 복층이었다.






대사관에서는 매일 한 번씩 미사가 열린단다. '매일 미사를 드리면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 신부님이 "매일 미사를 드릴 수 있어 참 좋아요."라고 말씀하셨다. 역시 신부님은 신부님이다! 작지만 예쁜 성당에서 짧은 미사를 드렸다. 일반 미사는 아니고, 떼제 Taizé 성가 부르고 그날의 복음을 들은 후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황청 대사관 방문이 끝나고 가톨릭 동아리 담당 막스(Max) 신부님, 학생들과 함께 뒤풀이(Biergarten)에 갔다. 배 주스와 굴라쉬를 시켜놓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막스 신부님이 내게 "독일어를 참 잘하네요" 하셨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신부님도 독일어를 정말 잘하신다고 말씀드렸다. 독일 사람에게 독일어 잘한다고 하자 신부님과 학생들이 웃는다. 신부님의 발음이 아주 정확하고 천천히 말씀하셔서 알아듣기 쉽다고 말한 것이라고 하자, 신부님이 웃으며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님은 독일 사람도 아닌데 내가 이 정도 독일어 하는 거면 꽤 잘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신부님은 독일에서 태어나셨지만 부모님은 이탈리아 분이라 하셨다.


3월에 한국으로 박사과정을 간다는 친구도 만났고, 2019년 중반에 박사논문을 제출해야 해서 스트레스가 많다는 친구와 고민상담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함은 사라지고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다 보니, 오늘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언제부터 성당을 다녔는지 묻지 않았다. 역시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오늘의 깨달음: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 없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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