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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물맨 Mar 07. 2024

별이 된 여울이에게.

200126


만 16년 하고도 얼마간의 여정을 마치고,

여울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부엌 귀퉁이 낡은 피아노 밑에서 태어나 거실 매트리스 위에서 마지막 눈을 맞추며 잠들었습니다.

가장 슬픈 순간이지만 어쩌면, 마지막 순간 곁을 지킬 수 있었다는 건 반려인에게 가장 큰 축복이자 위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준비할 수 있는 슬픔 같은 건 없나 봅니다.

벌써 내일이 걱정입니다. 더 이상 방정맞은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무릎 위 온기를 나눌 수도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을 수도 그 작은 숨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여울이는 가족들의 사랑을 먹으며 자라나 늘 받은 것의 수십 배를 돌려주었고, 덕분에 열세 살 꼬마는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서른의 소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되돌려줄 새도 없이,

어느새 나보다 먼저 자라고 늙어 세월 속으로 스러져버렸습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같은 공간에서 다르게 흘러버린 시간이 조금은 야속합니다. 다르게 흘러갈 시간을 알면서 애써 외면하기도 했던 순간들이 후회됩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십 센티 언저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32평의 작은 세상은 어땠을지, 조약돌만 한 네 발로 탐험하던 반경 1km의 작은 우주는 어땠을지.

더 넓은 세상과 더 예쁜 것들을 보여주지 못한 오빠가 혹시 원망스럽지는 않은지.

부디, 안락하고 평안한 여정이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내 동생, 내 친구 여울아.


네 두 눈에 담았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기를 바라.

더 아름다운 그곳에선 목줄 없이 풀벌레와 나비를 쫓으며, 온 세상에 발자국을 찍었으면 좋겠다.

혼날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고, 궁금한 건 이것저것 다 물어뜯어봐도 괜찮아. 이제 현관 앞에서 하릴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돼.

그저 졸리면 나뭇잎 사이 햇볕 받으며 낮잠도 실컷 자고, 목청껏 짖으며 친구들과 노래 부르렴.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네 엄마, 초롱이도 만났겠구나. 이제 그동안 못 다했던 이야기 도란도란 나누며 함께 별나라를 유영할 수 있을 거야. 그곳에서의 여정은 아프지 말고 따뜻하기만을 바랄게.


그리고 먼 훗날, 다시 만나자.

꼭 다시 만나자.


2020.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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