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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닉 Nov 13. 2020

프리라이팅을 소개합니다

생각에 유용한 도구 프리라이팅(free writing)

나는 생각할 때 프리라이팅(free writing)을 사용한다. 이것을 처음 알게 된 건 '하버드 글쓰기 강의 (바버라 베이그)' 책에서였다. 그 후로 '힘 있는 글쓰기 (피터 엘보)'에서도 만났는데 프리라이팅이 나오는 책을 찾아보면 모두 '글쓰기 방법론'이었다. 이러한 책은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찾지 않기 마련인데 이 도구를 모르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내가 느끼기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뿐만 아닌 누구에게나 유용한 생각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진입 장벽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어디든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 방법론' 영역에서 배운 이 도구를 끄집어내 공유하자 한다.




프리라이팅이 뭐고 어떻게 하나? 


프리라이팅은 '자유로운 쓰기'다. 일단 펜을 잡거나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10분으로 타이머를 맞춘다. 그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모든 생각의 흐름을 적는다. 맞춤법 문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맞춤법이 틀려도 뒤로 돌아가서 고치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 생각을 방해할 뿐이다. 그냥 쓰는 것에만 집중한다. 생각이 막혀도 다음 생각이 날때까지 같은 말을 반복해서 쓰면 된다. 갑자기 점심메뉴가 떠올라도 그대로 쓴다.


내가 지금껏 글쓰기에 부담을 느꼈던 이유가 무엇인가? 글쓰기라 하면 정리되고 맞춤법도 틀려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또 '선생님', '부모님',  '친구들' 등의 평가자가 있었다.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 교육받고 자라왔다. 한 번 쓰려고 마음먹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부담감이 평소 생각에 글쓰기를 활용하지 못하게 했다.


프리라이팅을 '책임 없는 글'이라고 부르고 싶다. 정말 그 글에는 아무 책임도 없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질책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너무 자유롭다. 누굴 욕하고 싶다면 그렇게 적어라 그냥 표현하면 된다. 


위의 방식에 적응된다면 점점 타이머를 맞추지 않게 되고 온전히 필요에 따라 프리라이팅을 이용하게 된다.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아무 주제 없는 '프리라이팅'이 있고, 어느 정도 목적성을 가진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이 있다. 하나 다른 점은 주제를 잡고 프리라이팅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 사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있을 때 '이 사람에 대한 감정을 풀어 적어봐야겠어!' 라면 그 생각에 초첨을 잡고 써나가는 것이다. 생각이 주제에서 벗어나면 그 과정 또한 모두 풀어쓰면서 방향을 잡아가면 된다. '어? 내가 이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잖아 생각이 다른 쪽으로 가고 있어 다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나는 여기에 사용하고 있다


회의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프리라이팅을 해본다. 안건에 대해서 프리라이팅을 하다 보면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리고 회의 직전에 하면 뇌 작업 기억 (working memory)에 미리 생각들이 올라가게 되고 회의 들어가서 얼버무리는 일이 적어진다. 


중요한 대화 전

누구와 중요한 대화를 하기 전 나의 의견을 조리 있게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미리 프리라이팅으로 정리해본다. 사실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을 나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런데 미리 프리라이팅을 하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말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또 그 사람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투로도 미리 풀어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책, 영화를 보고

책이나 영화를 보고 거기에 대해 프리라이팅 한다. 책에 특정 구절에 대해서만 10분 넘게도 쓸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그냥 지나치는 것보다. 훨씬 더 기억에 남고, 자신의 지식이 된다.


시스템 설계할 때

나는 개발자이기 때문에 시스템 설계를 할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럴 때도 각 설계의 장단점이나 내가 드는 아이디어들을 프리라이팅을 풀어쓰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 또한 회사에서는 온전히 하나의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중간에 새로운 요청이 들어올 수도 있고, 다른 내용의 회의에 다녀와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아까 내가 써놓은 프리라이팅이 있다면 그걸 읽으며 생각의 전환(context switching)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글쓰기 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글을 쓰기 전에 아이디어를 모으는 과정에서 사용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프리라이팅을 거쳐 쓴 글이다. 


이처럼 나는 '글쓰기' 목적으로 '프리라이팅'을 알게 되었지만, '글쓰기'는 내가 프리라이팅을 사용하는 많은 곳 중 하나일 뿐이다. 


감정에 대해 

회사를 다녀왔는데 그날 기분이 싱숭생숭할 때 컴퓨터 앞에 앉아 내 감정을 프리라이팅 한다. 그렇게 써놓고 보면 한결 마음이 정리되고 후련해진다. 제 3자의 입장에서 감정이 봐지기 때문에, 내 속에 있을 때랑 다르게 느껴진다. 감정은 속에 그냥 묵혀두면 병이 된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이니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일단 삶이 쉬워지고 가벼워진다. 또한 삶의 에너지를 선택적으로 집중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생산성이 커진다. 
- 가짜 감정, 김용태 저, 덴스토리 211p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생각'이 있는 곳 어디서나 '프리라이팅'이 사용될 수 있다. 



첫 만남


처음 프리라이팅을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썼던 그대로를 가져왔다. 그 당시 처음 해본 나의 느낌이 어땠는지 여과 없이 보인다.

더 강하게 말과 글은 무기다. 난 더 열심히 해야한다. 어떤 것을 열심히 해야 할까 지금 같은 free writing 이 될 수도 있고 독서와 생각이다. (중략) 이렇게 막쓰니까 좋다. 진짜 모든 생각이 정리가 되는 것같다. 어떻게 이렇게 그냥 흘러가는 얘기를 쓰는 게 좋을까? (중략) 우와 내가 10분에는 이 정도의 글을 적는구나 너무 신기하다. ㅎㅎ (중략) 습관이ㄴ 것일까? 아님 고쳐질 수 있을까? 히힣 타자 치는 소리가 너무 좋다 이게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왁스는 잘 바르지도 않는다 요즘 꾸미는데 소홀 할 것 같다. 

(내용을 보면 진짜 아무 맥락이 없다. 문법도 맞지 않고 오타도 많다) 


그냥 기분이 너무 좋았다. 뭔가 엄청난 발견을 한 느낌이었고 회사에 가서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신나게 알려주었다. 그 얘기를 들었던 몇 명은 지금도 '프리라이팅'을 사용하고 있다.


당시의 내가 온전히 표현된 글을 보고 있자니 너무 재미있었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들이 꽤 완벽한 상태로 복원된다. 만약 군살 없이 요약되고 다듬어진 글이었다면? 시간이 지나고 보면 골격만 있는 건물과 같다. 그전에 벽은 어떤 색깔이었는지 바닥재는 무엇을 사용했는지 떠올리기 쉽지 않다. 보는 시점의 재료들로 다시 채워 넣어야 할 터이다. 그렇지만 프리라이팅은 지나고 보면 비교적 잘 보존된 건물과 같다. 그 당시의 바닥재와 인테리어, 벽 색깔들이 그대로 있다.



쌓아가는 생각


나는 생각이 헛돈 경험이 많았다. 생각하다가 '어? 이전에 어떤 생각에서 여기로 왔지'라는 느낌이 들고 이전 걸 다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이런 식이다. 효율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프리라이팅을하면 쌓아가는 점진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생각이 흘러 지나가는 게 아니라 정말 내 눈앞에 쌓인다. 생각이 쌓이면 그 위를 딛고 올라가 다음 단계의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전 글부터 누누이 강조했지만 점진적 힘은 정말 강하다. 


잠깐의 생각이 장기기억으로 가지 못한다면 그냥 잠깐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에 불과하다. 분명 뭔가 번뜩였지만 나중에 다시 기억할 수 없었던 경험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아깝게 스쳐 보낸 생각들이 많을까? 전기가 유지되는 이 몇 초 동안 손이 키보드 위에 올라가 있거나 펜을 들고 있다면 우리는 글로 담아낼 수 있다.

우리가 정보를 작업 기억으로 처리할 수 없다면 이 정보는 이를 유지시키고 있는 뉴런이 전기 전하를 유지하는 동안에만 지속되는데, 이는 기껏해야 몇 초에 불과하다. 그 후 이 정보는 머릿속에서 거의 또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저, 최지향 역, 청림출판 2020, 324p

나는 프리라이팅을 생각을 녹화하는 도구로 비유하곤 한다. 프리라이팅이 시작되는 순간 모든 생각이 기록되니 말이다.




프리라이팅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봤으면 좋겠다. 


지금 컴퓨터 메모장을 켜거나 아무 종이를 준비한다. 타이머를 10분으로 설정한다. 어떤 내용이 되어도 상관없으니 부담 없이 생각을 쭉 써본다.


아마 10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다. 나는 처음에 정해진 시간을 넘어 거의 무아지경에 빠졌었다. 말로만 듣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프리라이팅을 접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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