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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닉 Dec 05. 2020

네 잘못만은 아니야

개인의 탓이 100% 일 수 없다. 책임의 분배가 필요하다.

모든 잘못을 상대방에게 돌리거나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과연 '개인'에게 모든 잘못을 물을 수 있을까? 그리고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에는 어떤 위험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사회심리학 기반으로 풀어나가 보자. 사회심리학은 사람의 생각과 느낌, 행동들이 외부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는지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글에서는 '개인'외의 모든 것을 '상황'이라고 칭할 것이다. 모든 결과는 '개인'과 '상황' 그리고 그 둘의 '상호작용'으로 나온다. '상황'과 '개인'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개인'과 '상황'은 상대적이다. 철수 입장에선 병수가, 병수 입장에선 철수가 '상황'중 하나가 된다.




개인과 상황의 밀접성


자신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온전하고 이성적인 '개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불빛의 정도에 따라서도 행동이 변하는 존재다. 많은 상호작용들이 우리의 이성적 사고의 아랫단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토론토 대학의 연구자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간단한 계산문제를 풀게 하고 점수에 따라 소정의 상금을 줬는데, 실험 결과, 문제를 푸는 방의 조명이 어두울수록 부정행위의 빈도가 높았다.(등이 12개 켜져 있을 때보다 4개 켜져 있을 때에 부정행위가 더 많이 발생했다.) 발각될 위험이 뚜렷이 낮아진 것도 아니고 그저 불빛이 좀 약해졌을 뿐인데도 부정행위가 늘어난 것이다.
 
-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로랑 베그 저, 이세진 역, 부키 2013


어떤 결과든 '개인 - 상호작용 - 상황'의 베베꼬인 실타래 속에서 일어난다. '개인'은 항상 '상황'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표현된다. 친한 친구 앞에서의 나와 회사 사람 앞에서의 나는 다르다. 어디에도 영향받지 않고 있는 나를 볼 수 있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아 왔으며, 현재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개인'과 '상황'을 나누는 것은 마치 섞여 있는 물감에서 물과 색을 분리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어떻게 개인만 탓할 수 있는가? 왜 사람들은 그렇게 '개인'의 잘못으로만 치부하는 오류를 저지를까?




개인의 탓으로 치부하는 이유


우리의 정신적 자원은 늘 충분하지 않다.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의 바닷속에서 모든 걸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 판단하는 '인지적 전략'을 사용하게 되는데. 오늘은 인지적 전략 중에서도 '기본적 귀인 오류'(앞으로 '귀인 오류'로 짧게 표현하겠다)를 중점으로 다룰 것이다. '귀인 오류'란 어떤 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성향과 성격에서 찾는 것을 말한다. '상황'을 분석하는 것보단 그 편이 정신적으로 훨씬 덜 수고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이 성격에서 나온다고 보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이 때문에 상황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 왜일까? 일반적으로 상황의 영향력보다 성격의 영향력을 추측하는 편이 더 간단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은 관찰자에게 '보이지 않을'때가 많다.

 - 사회심리학, 로버트 치알디니, 더글러스 켄릭, 스티븐 뉴버그 저, 김아영 역, 웅진지식하우스 2020



비난 전가자 - 다 네 잘못이야


상사 :  일정이 어제까지 였는데, 왜 이제야 제출을 해! 일 처리가 왜 이렇게 느린 거야? (부하직원의 기질 탓)

부하직원 : 제 잘못도 일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분명 이 일정을 늘려야 한다고 초기에 말씀을 드렸지만 묵살되었습니다. 저희 회사의 일방적인 일정 산출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사 : 그냥 죄송하다고만 하면 되잖아! 왜 자꾸 변명을 해서 일을 크게 만드는 거야?!

부하직원 : 죄송합니다..


여기에는 상사의 편하고자 하는 심리가 담겨있다. '부하직원'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부하직원만 고치면 되는 것이고 자신은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함께 공유하는 상황(회사의 일정 산출 시스템)에까지 문제를 확장하면, 자신의 잘못까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불편한 것이다. 또한 회사의 일정 산출 시스템을 개선하려면 자신 또한 고민하고 윗선과 얘기하고 바꿔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정신적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미 네 잘못이라고 뱉었으니 난 의견을 고수할 거야


여기서 또 하나의 인지적 전략이 발동될 수 있다. 특정 사람 잘못이라고 공적으로 뱉어 버리면, 또 다른 '인지적 전략'인 '일관성의 원칙'이 발동되게 된다.

 '일단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면, 우리는 스스로나 다른 사람에게 기존의 태도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그 압력 때문에 우리는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야만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할 수 있고, 당연히 그 결정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 설득의 심리학, 로버트 치알디 니 저, 황혜숙 역, 21세기북스 2013


그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새로운 정보가 나오더라도, 귀를 닫아버리고 처음 입장을 고수하려고 한다. 자신의 추론 능력을 이용해 왜 그 사람 잘못이 맞는지 정보를 찾는 데 사용한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존심이 쌘 사람은 이러한 성향이 더욱 강하며 주위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게끔 유도한다. 자신의 의견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줄 아는 사람은 외부로 공공연하게 말했어도, 다른 정보가 나오면 사과하고 의견을 철회한다.



비난 흡수자 - 다 내 잘못이야


 : "내가 잘못했어"

여자친구 : "뭘 잘못했는데?"

 : "음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많이 썼었던 화법이다. 나는 정말로 내가 다 잘못했다고 생각할까? 아니다 속으로는 억울할 것이다.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그저 이 상황을 넘겨 논쟁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저기서 다른 상황을 탓했다가는 논리를 구체화시키고 그걸 통해 이해시키기까지 정말로 많은 시간과 정신적 소모가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당장의 싸움은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똑같은 이유로 다시 싸우게 될 것이다.


나 혼자 모든 책임을 짊어지겠어


우리 사회에서는 '모두 제 잘못입니다' 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이 멋지게 여겨진다. 적어도 나는 드라마, 영화 등의 미디어에서 그런 사람들이 멋지게 표현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행동은 오히려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제품 출시에 문제가 생겨 회사 회의에서 '모두 제 잘못입니다.'라고 했다 쳐보자. 다른 동료들은 안 그래도 '정신적 자원'을 아끼려고 하고 있었는데, 아주 고맙게도 당신을 먹잇감으로 던져줬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시키고 싶은 동료라면 정신적 자원을 소모해서라도 합리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불편함을 벗어나고 싶은 동료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찾다가, 당신이 희생양을 자처해주면 아주 맘 편히 책임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은 회사를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본질적 문제를 찾지 못하게 다른 사람들의 눈을 가려버린다. 제품 출시에는 기획, 디자인, 스케줄링, 마케팅 등 굉장히 많은 단계가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상황'을 공유하며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혼자 이 모든 공정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진정으로 다 내 잘못처럼 느껴져


'뇌부자들'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정신과 의사가 한 내담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봤다. 그 내담자는 어릴 때부터 집에 어떤 일이 발생해도 자신에게 "네 잘못이다"라고 하는 집안 환경에서 자라왔다고 한다. 의사님이 아무리 "그렇지 않다"라고 말해봐도 어릴 때부터 학습이 되어있는 터라 상담이 끝날 때도 결국 "제가 생각했을 땐 제 잘못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이 경우는 내가 위에서 말했던 '논쟁을 피하고 싶어서,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속으론 억울하다'는 것과는 다른 경우로 보인다. 정말 속으로까지 자신 탓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분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얘기해주고 싶다. 절때 당신만의 잘못이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모두 짊어지려 하지 말고, 과거에 자신을 이렇게 만든 '상황' (집안 환경, 친구들 등)을 탓해라. 이 잘못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시간적으로 지나간 '상황'이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고칠 수 없는 노릇임으로, 앞으로 이겨나갈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그러나 잘못은 과거에 두고 와라.

굿 윌 헌팅, 1998


비난 전가자와 비난 흡수자가 만나면 불공평한 관계가 형성된다. 모든 잘못이 비난 흡수자의 탓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연인을 예로 들자면 한쪽만 계속 사과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 결과는 너와 나 그리고 외부 요인이 함께 만든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더 심각해지는 '귀인 오류'


우리 선조인 수렵채집인들에겐 이러한 인지적 전략이 어느 정도 유용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부족 몇십여 명 남짓이었고 친족이며 생활을 같이하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다. 또한 공통된 이야기(정보)들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선 굳이 정신적 자원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의 상황을 꿰뚫고 있어 별 노력 없이도 꽤 정확한 판단들을 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어떠한가? 각자가 분리된 생활 속에 있으며, 기껏해야 업무 시간에만 만난다. 또한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여, 지구 반대편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덕에 함께 살면서도 각자 다른 정보의 바닷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상황'의 요소는 점점 많아지고 그에 따라 복잡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상대방은 점점 더 베일에 쌓여간다. 마치 이불 밖으로 살짝 나온 발가락 만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유추해야 하는 것과 같다. 진화된 심리 기제인 '인지적 전략'은 정확성을 잃어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섣부른 판단으로 상처를 주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편안한 '인지적 전략'에 의존하기보다 심도 있게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과학의 발전에 발맞춰 우리의 심리적 기제도 변화해가야 한다.




상황 탓을 해야 하는 이유


나는 이 글에서 "당신은 아무 잘못 없습니다. 그러니 책임을 지지 않아도 돼요"라는 비생산적인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개인만 탓하게 되면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당연히 개인적 잘못과 책임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부분은 인정하고 개선해야 한다. "전부 내 잘못이야"가 아닌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어"가 되어야 한다.


상대방을 탓할 때도, 그 사람이 속해져 있는 '상황'을 봐야 한다. 그러면 왜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저 상황에 놓였다면 나도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는 습관은 굉장히 중요하다.


비난 대상자가 당신과 같은 '상황'속에 있고 당신이 윗사람이라면, 상대방에게 "다 네 잘못이야"라고 하기 전에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보라, 그 사람이 잘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당신이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윗사람은 공유하는 '상황'에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문제의 개인이 없어지면 문제가 해결될까?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문제의 '개인'을 해고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문제의 한 요소만 해결한 것뿐이다. 개인이 상황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느냐에 따라서 정도는 다르겠지만, 공통의 시스템 문제였다면, 새로운 사람이 와서 또 똑같은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다. 상황의 문제가 그 사람을 통해 발현되었을 뿐이다.


변명으로 볼 텐데 어떻게 상황 탓을 하지?


우리 사회는 상황을 탓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다. '변명'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전달하려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지금 나에게 비난이 오고 있는 상황이라면 분명 당신의 잘못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의 문제를 앞세우기보다. 당신이 잘못한 부분을 먼저 인정하고 얘기를 하자. 그다음 상황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자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보자


내가 앞서 말한 '귀인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쉽게 쉽게 판단하려고 하는 '인지적 전략'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유 없는 진화는 없다. 우리의 심리적 기제가 이렇게 진화한 것은 분명 정신적 자원을 아껴주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그리고 고통받고 있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합리적 생각이 필요하다.


현대의 사람들은 안 그래도 부족한 '정신적 자원'과 시간을 SNS를 보는데 많이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정작 정말 '합리적 사고'가 필요한 곳에도 사용하지 못한다. 그 결과로 모든 것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귀인 오류'를 더 많이 범하게 되는데, 쉽게 쉽게 넘어가려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당신을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 초기에 노력을 들여 근본을 찾아 해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우리 그리고 한국


이 글에서 말한 내용들을 봤을 때 한국 사회는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을까? 왜 우리나라는 행복지수가 이토록 낮을까?



사회적 분위기와 그 기준의 모순


지금까지 나는 '잘못'을 기점으로 원인과 결과를 얘기해왔다. 그러나 '잘'한 것도 똑같이 상황과의 상호작용에 결과이다. 그 결과가 '잘못'된 것으로 해석되냐 '잘'한 것으로 해석되냐의 차이일 뿐이다. '잘'한 것도 항상 '상황'의 덕이 있기에 "나 개인의 공으로 잘된 거야!"라고 할 수 없다. (혹여나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점점 그 사람에게서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잘못'에 대한 책임은 분배하지 않는 것을 정직하게 여기고, '잘'한 것에 대한 공은 분배하는 것을 정직하게 여긴다. 너무 모순적이다. 똑같은 원리로 인해 나온 결과를 왜 다르게 취급하는가?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잘못'으로 인해 자존감에 타격을 받는다면, 비슷한 규모의 '잘'한 것을 여러 번은 해야, 그 자존감이 메워질 것이다. '잘못'은 혼자 부담해야 하고 '잘'한 것은 분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못'도 '잘'한 것처럼 분배해야 한다. 



개인에게 부과되는 책임들


위에서 나왔던 상사와 부하직원의 대화를 약간 바꿔보자


상사 :  일정이 어제까지 였는데, 왜 이제야 제출을 해! 일 처리가 왜 이렇게 느린 거야?

부하직원 : 죄송합니다. (속마음: 우리 회사의 일방적인 일정 산출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매일 야근을 하면서 까지 겨우 끝낸 게 오늘이라고!)


이 회사의 직원이 100명이라면 어떨까? 문제는 '회사의 일정 산출 시스템'(상황)에 있는데, 직원들은 말하지 못하고 각자 부담을 진다(여기에는 한국 유교문화의 영향도 있다). 100명이 부담을 n분의 1로 나눠서 지는 것도 아니다. 고스란히 100개로 복제되어 주어진다. 근본을 찾고 해결하는 게 아닌 개인이 때우는 식으로 문제를 덮어나간다. 야근을 할 수밖에 없으며, 작업물의 퀄리티는 떨어진다. 그렇게 돌고 도는 악순환 속에서 점점 지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회사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 이런 생활 속에서 우리의 가슴에는 억울함이 쌓여만 간다. 한국 사람들의 행복도를 낮추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개인'과 '상황'은 실타래처럼 얽혀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잘못이 100% '개인'에게 있을 수 없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배해야 한다. 상황에서 원인을 찾는 것을 '변명'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 그러면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지고, 근본적인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이 해결하지도 못할 문제를 혼자 짊어지는 불 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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