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선택하지 못하는 것과, 알고 선택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리디페이퍼(ridipaper)는 리디북스(ridibooks)라는 전자책(e-book) 서점에서 만든 '전자책 단말기(e-book reader)'다.
리디페이퍼를 사용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2년 동안 구매한 전자기기 중 가장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독서량은 월등히 향상되었고, 그만큼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점 때문에 주위에 추천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리디페이퍼를 구매한 사람이 6명 정도 된다. 그런데 한 명 한 명에게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 단말기'의 세상을 한 번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모르고 선택하지 못하는 것과, 알고 선택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 이 '전자책 단말기'일 수 있다.
전자책 단말기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와는 완전 다른 디스플레이 기술인 '전자잉크(E-ink)'를 사용한다.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의 수백만 개의 흑색 입자를 이용하여, 마치 그때그때 종이를 인쇄하여 보여주는 느낌을 준다. 눈이 덜 피로하고, 종이책을 보는 시각적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리디북스(전자책)' 뿐만 아닌 '리디페이퍼(전자책 단말기)'까지 묶어서 추천하는 이유다. 아이패드나 핸드폰에서 전자책을 읽으면 내가 행동할 수 있는 선택권이 많아진다. 리디북스 앱에 진입하기도 전에 구미가 당기는 SNS 아이콘에 손이 가게 될 것이다. 내가 책을 보려고 휴대폰을 들었단 사실은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책을 보는 와중에도 카톡, 유튜브, 인스타 등등 각종 앱의 알람들이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아우성친다. 나는 천재들이 심리적으로 끌리게 설계한 이런 유혹들을 당해낼 제간이 없다. 나의 집중에 언제든 끼어들어 방해한다. 알람을 한번 클릭해 버리면 다시 책으로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리디페이퍼는 리디북스 외에 어떠한 앱도 설치할 수 없다. 온전히 책에만 집중할 수 있다. 독서 외에 어떠한 행동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리디페이퍼 최고의 장점이다.
최근 다른 회사에서 출시한 전자책 단말기들은 Google Play Store 가 있어서 모든 앱을 깔 수 있고, 심지어 유튜브까지 봐진다. 난 리디페이퍼가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렇게 가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나에게는 있다. 다른 전자책 단말기들이 Play Store를 사용하는 이유는 범용성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여러 전자책 앱을 설치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리디페이퍼는 오롯이 리디북스 전용기기라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리디북스 앱만 깔아놓으면 된다. 이러한 제약성이 앞으로도 리디페이퍼의 강점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리디페이퍼뿐만 아니라 휴대폰과 컴퓨터에도 '리디북스' 앱을 깔아놨다. 이 3군데 중 어디서든 밑줄, 책갈피, 메모를 하면 전체에 동기화된다. 내 원본 데이터는 리디북스 회사가 관리하는 중앙 서버에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읽었는지도 동기화됨으로 아주 편리하다. 나에게는 리디페이퍼가 메인이지만 가끔 리디페이퍼를 소지하지 않았을 때 핸드폰 앱으로 글을 읽으며, 글을 쓸 때 참고하기 위해 컴퓨터 앱을 사용한다.
독서 체력이 향상된다. 종이책은 빛을 종이에 직접 쐬어야 하기 때문에, 그림자에 신경을 써야 하는 둥 자세에 한계가 있다. 그러니 오래 읽고 싶어도 불편하며 금방 지친다. 그에 반해 리디페이퍼는 화면에 밝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 어떤 자세든 마음대로 취할 수 있다. 자동으로 독서 가능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자기 전에 불 끄고 누워서 책을 읽다가 피곤해지면 불 끄러 가지도 않고 바로 스르르 잠들 수 있는 이 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집에 큰 책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1인 가구가 늘어가고 있는 요즘 시대는 더 그렇다. 작은 책장이 꽉 차게 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고로 팔던지 어디로 보내던지 해야 한다. 나도 서울 집이 넓지 않다. 2년 전엔 책장이 거의 꽉 차 있었는데, 리디북스를 사용하고 나서 2년 동안 100권에 달하는 책을 공간 걱정 없이 마음껏 사서 읽었다. 이게 모두 종이책이었다면 굉장히 곤란했을 것이다. 내 책장에 책은 오히려 줄어들어 다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 있던 책들 중에도 리디북스에 있는 것들은 모두 정리했기 때문이다.
여행에 들고 가고 싶은 책이 한 권 두 권이 넘어가면 짐이 무거워진다. 리디페이퍼 하나를 들고 가면 몇백 몇천 권이 들어가는 책장을 어디든 들고 다니는 것과 같다. 무게도 173g으로 웬만한 책 한 권보다 가볍다.
소유하고 있는 책 내부에서 검색이 된다. 이게 정말 편하다. 종이책에서 어떤 구절을 읽었는데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찾기 힘들 때가 있다. 그때 리디북스는 생각나는 단어만 검색해도 몇 페이지 어디에 있는지 다 나온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득이다. 현재 가장 최신 리디페이퍼는 199,000 원이다. 전자책은 데이터로 관리되고 판매되기 때문에 종이책에 비해 40%~20% 정도 저렴하다. 종이책으로 18,000원인 책을 30% 할인된 전자책으로 37권 정도를 읽으면 속된 말로 뽕을 뽑게 된다. 난 2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읽었고 앞으로도 읽을 것이다. 이미 뽕을 뽑은지는 오래다.
더군다나 새 기기를 살 필요도 없다. 마치 헬스장 정기권을 끊고 안 나가는 것처럼 '리디페이퍼'부터 덜컥 구매한 분들이 많아서인지, 중고 시장에 거의 새것의 기기들이 많이 올라온다. 중고로 사는 것을 추천한다. 10만 원 언저리로 살 수 있다.
그리고 "전 원래 종이책을 대여해서 읽고 있었어요"라는 분은 리디북스에서 제공하는 정기 구독 서비스 '리디셀렉트(ridiselect)'를 사용하면 된다. 당연히 '리디페이퍼'랑 연결이 되고, 월 9,900원으로 책을 무제한으로 대여해서 볼 수 있다. 단, 대여 가능한 책이 많지 않은 것이 단점이다. 내가 '리디셀렉트'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전자책을 구매해서 보는 이유는 대여 기간 때문이다. 전자책에 표시한 밑줄, 책갈피, 메모 등이 너무 아깝다. 한번 읽은 책은 내 뇌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고두고 다시 훑어볼 때가 많다.
종이책에는 손끝에 느껴지는 질감과 코 끝에 느껴지는 종이의 향기 그리고 표지 디자인이 있다. 인간은 '글 내용'으로만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오감으로 책을 느끼며 감성으로도 읽는다. 출판사는 책 내용에 따라서 미세하게 종이 재질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사소한 것은 알게 모르게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리 종이책을 흉내 낸 리디페이퍼라도 종이책에 감성은 절대 따라갈 수 없다.
모든 책들이 전자책으로 나온 것은 아니다. 오래전에 출판된 책들은 리디북스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그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았다. 뭐 장르마다 다르겠지만, 2년 동안 리디북스에서 구매하지 못한 책이 7권 밖에 없다. 그리고 수요가 있는 책이라면 전자책으로 재출간될 가능성이 많다.
리디북스에서 제공하는 도서수는 2018년 9월 177만 권에서 2019년 3월 231만 권으로 6개월 만에 54만 권이 추가되었다. 전자책화 속도가 빠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 2021년 1월 시점에는 리디북스가 훨씬 더 많은 도서를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점은 전자책 시장이 커지며 점차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전자책과 종이책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조화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나는 책이 리디북스에 없으면 그냥 종이책을 산다. 그리고 전자책이 제공하는 포맷에 EPUB (전자서적 표준 포맷)가 없고 PDF만 있어도 종이책으로 산다. PDF는 '밑줄', '책갈피', '메모', '검색'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과 양방향으로 소통해야 하는데, PDF는 일방적이다. 종이책을 사서 밑줄 긋고, 메모하는 게 낫다.
또한 '칼 세이건의 - 코스모스' 같은 책은 리디북스에 있어도 종이책으로도 소장하고 있다. 이런 아름다움이 담긴 책은 리디페이퍼로는 표현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 이사 가면서 집이 더 넓어지니 어느 정도 공간적 사치를 부려봐야겠다. 전자책으로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종이책으로도 사서 한 번 더 읽는 것이다. 전자책은 편리함으로 읽고, 종이책은 감성으로 읽기 때문이다.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한번 더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리디페이퍼를 기존에 독서 습관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일 년에 몇 권 읽지 않는다면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장점 중 '공간 절약', '휴대성', '가격'은 해당되지 않을 것입니다. "리디페이퍼를 사서 독서습관을 들여야지~" 보다는 책의 원형인 종이책으로 먼저 독서 습관을 어느 정도 들이고 구매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당근 마켓에 올리게 되실 수 있습니다.
리디페이퍼 자세히 알아보기 - https://paper.ridibook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