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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닉 May 01. 2023

애써서 사색하기

정신없는 시대에 저항하기

침대에 누워 깊은 생각에 잠기려 노력해 봅니다. 그때 정적을 깨는 핸드폰 알림이 울립니다. 단순히 광고성 알림이었죠. 하지만 차마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하고 끌리듯 SNS에 들어갑니다. 그때부터 사색에 빠지기로 한 저의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한참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놨을 때, 허탈감이 몰려왔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였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작은 플라스틱 화면에 시선을 두고 있었죠. 그중 하나였던 저는 아차 싶어 핸드폰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제 시선은 이미 지하철 광고판에 빼앗겨 있었습니다. 아아, 이번에도 사색은 물 건너갔습니다. 항상 이런 식입니다. 제게 이런 감정을 들게 만드는 것은 SNS, OTT, TV와 같은 '주의력 산업'입니다. 이들은 주의를 끌어 광고나 구독료를 통해 돈을 법니다.


버지니아 대학에서 2014년에 발표한 연구를 보면 사람들이 점점 사색을 어려워하는 것이 보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2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들어가 6~15분 동안 있도록 했는데, 57%의 참가자가 생각에 빠지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작 6~15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긴 시간을 요구했다면 더 많은 참가자가 어려움을 호소했을 겁니다. 또한 9년 전 결과입니다. 지금 동일한 연구를 진행한다면 더 암담한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 사이 주의력을 포획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2016년 구글 AI 알파고가 바둑 세계 챔피언 이세돌을 이겼습니다. 그 후 알파고는 유튜브 콘텐츠 추천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세계 챔피언을 이긴 AI가 화면 뒤에서 우리의 주의력을 끌고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이 어떻게 거기에 당해내겠습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주의력을 지키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을 아시나요? 공동 목초지를 두고 농부들이 서로 더 많은 소를 방목하려 합니다. 자신의 몫을 덜 챙기면 그만큼 다른 농부가 이득을 본다는 불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경쟁 끝에 결국 목초지는 황폐해지고 맙니다.


저는 '주의력 사업'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하루의 주의력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거나 경쟁 기업이 가져가 버리는 이 '주의력'은 기업에게는 놓치면 손해인 '돈'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니 이 좁은 곳에서 조금의 주의력이라도 더 가져가겠다고 덩치 큰 기업들이 경쟁합니다. 알림을 보내고, 콘텐츠를 추천하고, 심리 기술까지 이용하는 등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말입니다. 이 경쟁 속에서 정작 주인인 우리의 손에는 삶을 숙고하는 데 쓸 '주의력'마저 남아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익숙해진 우리는 설령 '주의력'이 남아있더라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렇게 처치 곤란이 되어버린 주의력을 도리어 고마워하면서 기업의 손에 넘겨주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내면은 점점 황폐해져만 갑니다. 사색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사색은 자기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주체성을 잃게 되고, 이리저리 휩쓸려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원치도 않는 가치에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니 주의력 산업이 활개치는 이 환경 속에서, 우리는 갖은 애를 써서라도 사색해야 합니다. 제가 '애를 쓴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산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력 산업'은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콘텐츠도 많으며 좋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저도 거기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철저히 거부하기보다는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와 공존할 수밖에 없으니 주의력 산업의 장단점이 함께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애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애를 쓰는 중입니다. 생각하다가도 틈이 생기면 어느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아차 싶어서 핸드폰을 내려놓지만, 그렇게 생각의 흐름은 끊기게 되고, 저는 피해를 봅니다. 이 글은 어쩌면 첫 번째 독자인 저에게 쓰는 글입니다. 글을 쓰며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숙고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몇 년 전부터 관련 책을 읽었고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문제는 몇 번 깨달았다고 끝나는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사색하기 위해 애를 쓸 것입니다. 제 주의력이 화면이 아닌 내면을 향하게 하도록, 삶의 운전대를 제 손에 쥐기 위해서 말입니다.




문예잡지 <월간에세이> 2023년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기고라는 값진 경험을 하게 해주신 김신영 편집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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