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닉 Aug 23. 2021

회사의 집단두뇌

사회적 자본, 모방의 힘 그리고 밝은 점 찾기

집단 차원의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지식이 누적되고, 집단은 더 똑똑해지는가? 이러한 궁금증을 '인류학'을 토대로 회사에 접목시켜 보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데 불을 지펴준 책은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조지프 헨릭 저'이다.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사의 진화에 대해 쓴 책이지만, 여기서 배운 것들을 우리 인생 전반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집단두뇌

'조지프 헨릭'이 말하는 집단두뇌란 우리 인간이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은 개개인의 지식에 있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하는 두뇌 즉 집단 두뇌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비행기, 컴퓨터 등의 다양한 기술은 천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가로질러 연결된 지식들이 쌓이고 재조합되는 과정에서 나온다. 혁신은 지능보다 사회성에 의존한다는 것이 그의 주된 의견이다.

매우 큰 선행 인류 개체군 둘을 천재들과 바보들로 가정하고 생각해보자. 천재들은 어떤 발명품을 10회의 생애 만에 한 번 고안한다. 바보들은 훨씬 더 멍청해서, 같은 발명품을 1000회의 생애 만에 한 번 밖에 고안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는 천재들이 바보들보다 100배 더 영리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천재들은 그다지 사회적이지 못해서 본받을 수 있는 친구가 1명밖에 없다. 바보들은 친구가 10명이어서, 10배 더 사회적인 셈이다. 이제, 두 개체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알아내는 방법과 친구에게서 배우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어떤 발명품을 얻으려 노력한다. 친구에게서 배우는 방법은 어렵다고, 다시 말해 만약 친구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학습자는 그것을 겨우 절반의 빈도로 배운다고 가정하자. 모든 사람이 개별적 학습도 마쳤고 친구에게서 배우려고 노력도 했다면, 혁신이 천재들 사이에서 더 흔하리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바보들 사이에서 더 흔하리라 생각하는가?   

 자, 천재들 사이에서는 5명 가운데 1명이 조금 못 되는 사람이 발명에 이를 것이다. 그 천재들 가운데 절반은 온전히 자기 힘으로 그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반면에 바보들은 99.9퍼센트가 혁신에 이르겠지만, 0.1퍼센트만이 그것을 자기 힘으로 알아냈을 것이다. 천재들은 바보들보다 100배 더 영리했던 반면 바보들은 겨우 10배 더 사회적이었음을 명심하자. 결론은, 당신이 멋진 기술을 갖고 싶다면 영리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사회적인 사람이 되는 게 낫다는 것이다.

-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조지프 헨릭 저, 주명진, 이병권 역, 뿌리와이파리 2019

이것들은 단연 인류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생활에서도 드러난다. 회사가 사회적 연계성 즉 '사회적 자본'(이전 글 '동료와의 신뢰가 중요한 이유'참고)을 얼마나 가지고 있냐에 따라 좋은 것들이 빠르게 퍼진다. 그렇지 않고 각각의 부서와 사람이 고립되어 있는 회사는 발전이 느리다. 한쪽에서 시행착오로 얻어진 발견은 확산되어 집단두뇌에 누적되어야 한다. 다른 구성원 간에 동일한 발견이 별도로 일어난다면, 굳이 양쪽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자원적 손실이 발생한다. 회사 차원의 큰 손해이다.


밝은 점 찾고 퍼트리기

밝은 점(bright spot)은 댄 히스, 칩 히스의 저서 '스위치'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좋은 성공 사례가 어디선가 발현되면 그 밝은 점을 포착하고 퍼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집단 차원에서 보면 흡사 육종과도 같다. 우리는 여러 야생식물 품종을 개량하여 사람이 먹기 좋은 쪽으로 진화시켰다. 여러 개체 중에 특정 확률로 좋은 돌연변이가 생기면 그 형질을 다음 세대에 최대한으로 퍼트린다. 만약 그 돌연변이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개체와 차이 없이 관리한다면, 달고 과즙이 풍부한 방향으로의 진화는 굉장히 더뎌질 것이다.


'밝은 점'을 찾고 퍼트리는 행위는 생물 단위의 육종이 아닌, 문화 단위(meme)의 육종이다. 특히 리더는 조직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면 그것을 캐치하고 퍼트리는 역할을 잘해야 한다. 그런 발견들이 집단두뇌에 누적되고, 곳곳에서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하지 않게 한다. 지식의 축적 과정이 효율적이게 되며,  집단두뇌는 더욱 똑똑해진다.


연결은 중요하다 고립은 위험하다

사회적 자본은 구성원 사이의 도로다. 아무리 좋은 물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도로 중간중간이 파여있고, 다리가 끊겨 있다면 운송은 아주 더디거나 도달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더 무서운 것은 사회적 자본이 없으면 단순히 진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퇴보할 수도 있다.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집단 두뇌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류사로 봐도, 항상 진보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142만 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처음 사용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불과 17세기에 불의 사용법을 모르는 부족이 있었다면 믿어지는가? 유럽인이 처음 만난 태즈메이니아인은 당시 불을 피우지 못했다. 또한 석기시대보다도 더 단순한 도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태즈메이니아인들이 처음부터 불을 사용하는 등의 기술들을 몰랐던 건 아니다. 원래는 태즈메이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연결해주던 배스 해협(기존에는 육지였다)이 있어서 문화적 교류가 계속 있었다. 그런데 1만 년 전부터 해수면이 높아져 바닷물이 들어차면서 오스트레일리아와 문화적 교류가 단절되고 말았다. 완전히 고립된 것이다, 태즈메이니아인의 집단두뇌는 점점 더 축소되어 갔다. 기존에 있던 기술들도 연장자들이 죽고 세월이 흐르며 점점 잃어갔다.


현대 사회에서 고립은 인류사처럼 꼭 물리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불신으로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해수면이 차오르기도 한다. 각각은 분리된 섬이 되어 서로를 모방할 기회가 사라진다. 이것은 개인의 단위로도 일어나며 회사 안의 부서 단위로도 일어난다. 외부와 단절된 부서는 결국 뒤처질 것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기술들도 그 안의 연장자(경력자)의 퇴사와 함께 점점 잃어갈 것이다.


집단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자본은 마치 지식의 거름망 같다. 이것이 촘촘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좋은 것들을 들이부어도, 틈새 사이로 빠져나가 집단두뇌에 누적되지 못한다. 소수가 가지고 있다가 퇴사해 버리거나, 모방되지 못한 채로 잊히기도 한다. 심지어 기존에 누적되어 있던 것 까지 소리 없이 조금씩 틈새로 빠져나갈 것이다. 인력도 뽑고, 학습도 지원하고, 외부 강연도 그렇게 지원했건만, 들뜬 마음에 항아리를 들여다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흡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발견(밝은 점) 이상으로 모방이 중요하고, 그 이상으로 사회적 자본이 중요하다. 왜냐면 각각이 그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뛰어난 집단두뇌는 뛰어난 구성원을 만든다.

기원전 12000년에는 농업 기술도 없었고, 모두가 수렵채집인 이었다. 만약 나와 기원전 12000년경 태아의 유전자를 교체해 시대를 바꿔서 태어난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나와 다를 것 없이 학교를 다니고 글을 익히고, 과학을 배우고 스마트폰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할 것이다. 반면 문명이 시작되기 전에 태어난 나는 스마트폰 같은 것은 상상도 못 할 것이며, 숫자를 세는 법조차 모르고 돌도끼를 사용해 사냥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14000년 전과 지금의 뇌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저 누적된 문화에 편승하여 마치 우리가 지나온 인류보다 똑똑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똑똑해진 것이 아니고, 문화가 똑똑해진 것이다.


뛰어난 집단두뇌는 구성원을 더 뛰어나게 만들 수 있다. 입사자는 회사에 들어온 후 기존에 누적된 문화와 기술들을 뇌에 다운로드한다. 즉, 집단두뇌를 똑똑하게 만드는데 힘쓰고 훌륭한 모방자를 채용하면 된다. 여기서 훌륭한 모방자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들어 수용할 줄 알고, 끊임없이 학습하는 사람이다. 그럼 그들은 회사 밖의 지식까지 모방하며 집단두뇌 속으로 유입해올 것이다. 이것저것 모방하다 보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조합이 발생할 것이고, 그것들이 '밝은 점'이 될 것이다. 그럼 그것을 캐치하고 퍼트린다. 집단두뇌는 더 똑똑해져 갈 것이다. 이렇게 선순환은 이루어진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과는 다르게 진화의 고속도로에 올라탈 수 있었던 이유는 모방의 힘과 사회성에 있었다. 인류에게 주어진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자.


작가의 이전글 동료와의 신뢰가 중요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