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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씨, 후레쉬 19

by 주씨 후레쉬

오월 초입의 연휴가 슬쩍 쿵 가버리니 나라 잃은 백성의 마음으로 유월의 선거와 현충일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너덜너덜하고 진절머리 나는 회사를 가야 한다.


본디 회사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편도 아니고 딱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이나 월요병 같은 건 없는 편인데. 아무래도 삼육구 주기의 과학적인 직장인 탈출증후군이 단단히 걸린 것이 분명하다. 육 년, 지금 명함에 박힌 회사를 이리 오래 다닐 줄은 몰랐고. 사실 내가 저니맨이 될 줄도 몰랐다. 첫 회사도 육 년. 구 년까지 버텨봐야 최고기록을 경신할 텐데 딱히 자신도 없고, 회사에서 복리후생이라며 가입해 주는 단체상해보험은 정신과 질환 상담이 들어간 옵션으로 변경해야겠다.


한 회사만 정년까지 평생 다닌 아빠는 어떠한 삶을 사신건지 도통 알 수가 없는데. 토요일도 근무를 하는 주 육일근무제는 대체 어찌 버텼고, 이십오 도가 넘는 소주로 회식을 매일 해대는 문화는 어찌 버티신 건지 모르겠다. 시절이 그러하였겠지만 슈퍼맨의 시대였을 테다.


슈퍼맨도 나이를 먹었다. 칠십 대 중반을 향해가는 그의 허리는 불편하고, 무릎은 삐걱인다. 무뚝뚝하니 취미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그 시대의 여느 아버지 모습이지만. 어쩌면 그의 취미는 나와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TV쟁이는 TV를 봐야 하고, 미디어의 노예는 멀티로 이것저것을 동시에 봐야 하는데. 아빠가 딱 그렇다. 남들처럼 골프도 낚시도 등산도 여행도 아닌 이불속에서 유튜브 보기. 닮은 외적인 모습도 취미도 딱히 내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 다만 나는 슈퍼맨이 아닌데 그는 슈퍼맨이었다는 게 차이점 정도.


뭐 그렇다.


삼주 후면 슈퍼맨의 일흔세 번째 탄신일이라 그나마 귀여우나 장가도 못 가는 불효도르 사십 대 막내로서 뭘 해야 될지 적극 고민하며 어영부영 최선을 다해 회사를 다니는 오월을 가져야겠다.


사실 글이 잘 써지는 때나 개인적인 루틴을 아는 편인데 딱히 그 상황이나 루틴을 하지 않고 있고, 매주 이렇게 망글을 일기라고 써 올리는 거도 맞나 싶기도 하지만. 열아홉 주나 했으니 연말까지는 어떻게든 해야 한다. 셀프 다짐이고 약속이니까 착실하고 싶다.


오이영 선생님 보고 잡니다.

이만 총총총총총총총.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안정된 심신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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