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건물을 매도하느라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설계 도서도 없을 만큼 오래된 건물은 주먹구구식 관리를 해온 탓에 문제가 많았고 세월만큼 복잡했다. 월세도 어찌나 엉망진창으로 받아 왔는지 수백만 원쯤 되는 돈은 임차인에게 떼이고 말았다. 양도세가 또 수억은 된다는데 신경 쓸게 한둘이 아니었다.
"엄마가 계약한 거 아니야?"
"큰이모부 믿고 맡겼으니까 큰이모부가 해결해야지. 나는 모르는 일이야."
"그걸 왜 큰이모부가 해결해?"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서류는 그렇지 않아. 모른다고 될 일이 아니야. 명의, 인감 모두 엄마 이름인데 믿고 맡긴 게 무슨 의미가 있어?"
큰이모부는 상황이 이렇게 돼 미안하긴 하지만 자기가 해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와중에 아픈 아들이 좋아하는 감자밥을 해주겠다고 밭에서 감자 한 바구니를 주워 오셨다. 감자가 뭐라고 바구니만큼이나 땀을 흘리고 온 엄마를 대신해 감자를 깎다가 부아가 치밀어 감자 칼을 던져 버렸다. 30년도 더 된 칼이 세 개나 되는데 어느 것 하나 잘 드는 게 없었다. 힘이 어찌나 들어가고 더딘지 숟가락만도 못했다.
"엄마, 버릴 건 좀 버려. 다이소에 가면 스테인리스로 돼서 손톱도 잘릴 만큼 잘 드는 감자 칼을 2천 원이면 살 수 있어."
"됐어, 이만해도 써."
"수백이나 되는 월세를 받아냈어야지 2천 원을 아껴 뭐 하냐? 건물주였으면 뭐 하냐? 2천 원을 아끼느라 구질구질하게 사는데."
오가는 대화 속에 날이 서고 만다.
오빠 병시중에 몸도 지쳤지만, 집구석조차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다.
"오빠는 아프니까 네가 대신해 줘."
-‘아프니까’가 아니라 평생 귀한 아들이라고 품어 키워놓고 일만 생기면 나보고 해결하라고 하잖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는 못 배워서 그래. 너처럼 말을 상냥하게 하지도 못하고 논리적으로 말도 잘 못해. 어제도 봐, 서울말로 싹싹하게 말하니까 그놈이 얌전해졌잖아."
"못 배운 거라 상냥하게 말하는 것은 달라. 나라고 그러고 싶어 굽실대고 헤헤거리며 비위 맞추는 줄 알아? 문제가 터졌으니까 해결하려고 조아리는 거잖아. 못 하는 게 어디 있어? 살려면 배워서라도 해야지."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벌어 먹고사느라 비벼대던 상냥함이다. 시골 사람 눈엔 서울말이라 나긋나긋하게 들릴지 몰라도 눈치 보고 비위를 맞추느라 억지로 장착한 친절함이고 먹고 사느라 꾸역꾸역 만들어낸 태도다.
문제만 부디 잘 해결되길, 약해진 오빠가 건강하게 거동만 하길, 늙어버린 엄마가 걱정 없이 모쪼록 행복하길.
나도 지친다고, 좀 살자고 사정하고 읍소하고 기도하듯 했다.
-잔금만 확인하고 서류만 정리되면 된다. 괜한 소리로 상처 주고 후회하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언제 와?"
언제 오냐는 소리가 뭐라고 화가 났다.
뭘 또, 왜 또.
"이번엔 안 내려가. 집에서 쉬려고. 양도세는 얼마나 냈어?"
"얼마나 냈게? 내려오면 알려주려고 했는데?"
"얼마나 냈게? 엄마, 재밌어? 이게 재밌어? 내가 건물 때문에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데 재밌어? 말할 거면 묻지 말고 말을 해. 장난할 만한 주제도 아닌데 재밌어? 수백수천 나갈 돈을 틀어막느라 스트레스를 말도 못 하게 받았는데 구질구질하게 천 원 이천 원 아끼느라 거지같이 살면서 재밌어?"
"넌 왜 말을 그렇게 하냐?"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데? 뭘 얼마나 더 꾹꾹 참아가며 말해야 하는데?"
말하는 중간에 엄마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천 원 이천 원 아낀다고 어떻게 살았는지 뻔히 아니까 수백수천 틀어막느라 애썼던 건데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라, 서로 모르는 채 살자.
아들 아들 하더니 아픈 아들 끼고 둘이 행복하면 나는 됐다.
그렇게 10개월째다.
10개월이란 시간 속에 아버지의 제사도 건너뛰었고 엄마의 생신도 모르는 체했다.
아침 러닝을 하고 내려오는데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리신다.
"아휴 아가씨, 나 팔을 좀 잡아주소. 난간이 없는 계단은 혼자 못 내려가는데."
인적이 없는 이른 오전이라 오도 가도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애가 탔던 모양이다.
"팔을 대어드리기만 하면 되나요?"
"그렇지, 내가 잡으면 되니까."
"제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되레 불편하실 수 있어요.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 주세요."
"딱 좋아요. 기대면 돼."
"달리기를 해서 땀이 많이 났어요. 냄새가 좀 날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괜찮아. 운동해야지. 아니 젊은 사람이 말을 어찌 이리도 이쁘게 하나.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친절하고 고맙네."
누가 그랬던가.
가족을 손님 대하듯 하면 된다고.
직장 생활하듯 대하면 쌈질할 일은 없을 텐데.
사진출처: Unsplash의 LexSc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