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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4시

신부님, 게이 그리고

by 빌려온 고양이



"너 바나나 우유 먹을 때 빨대 어느 쪽으로 꽂아?"

"뾰족한 쪽."

"너 이제 바나나 우유 먹을 때마다 내 생각난다. 넌 술도 빨대로 먹으니까 술 먹을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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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업 듣죠?"

"네. 신부님도 한잔하실래요?"

"주세요."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소주를 마시려던 차였다.


우리 교정에는 종교 관련 전공이 없어 신부님을 자주 마주칠 일이 없다. 하지만 당시 드라마의 영향으로 신부님에 대한 환상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그거 알아? 대학로 교정에 가면 온 사방이 안드레아래. 가질 수 없는데 죄다 잘생긴 신부님들."


"괜찮은 남자는 신부님이나 게이 아니면 유부남이라더니."

"그러니까. 더러운 세상"



"빨대 말고 잔에 따라 마셔요. 속 버려요."

잔을 비우신 신부님 뒤로 드라마 속 안드레아처럼 벚꽃이 흩날렸다.

아, 하느님의 뒷모습이 저런 모습이겠지.


"잔에 따라 마시라고 걱정해 주는 남자는 처음이야."



그때 더 크게 깨달아야 했다.


남자 친구는 온 사방 자기 생각이 나도록 지뢰를 심어놓고 떠나버리고,


결국 나를 걱정해 주는 남자는 내 남자가 될 수 없는 신부님뿐이라는 걸.





사진 출처: 바나나맛우유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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