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가 영어인 줄 알았잖아."
"왜, 그럼 글레이즈드 도넛 주문할 때 한 다스 주세요-하지?"
"... 알아 더즌."
바르셀로나에서 여행 선물을 사려고 기념품 가게에 들러 당당하게 말했다.
연필 한 다스 주세요-
점원과 나 사이 투명한 눈빛이 허공에 부딪혔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두 사람이 서로의 단어를 더듬느라 분주했다.
못 알아듣는 걸 보니 영어가 아니구나.
- 당황하지 마. 단어를 모르면 상황을 설명하면 돼. -
캐나다에 있을 때 선생님, 그러니까 나의 마크가 응원해 주던 말이다.
그런 날이었다. 마크의 응원이 따라붙던 날.
성당에서 촛불을 켜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도하고 싶은데 다- 같이 모여 기도하는 시간이 언젠지 알 수 있을까요?
"미사?"
미사라니, 하마터면 두 유 노우 삼성이라고 말할뻔했다.
미사를 아시나요?
"미사가 한국어가 아니더라니까? 그들도 미사라고 하더라니까."
"... 무식... 스페인까지 가서 아주 대단한 거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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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책 속 비숑 프리제처럼 꼬리라도 흔들고 싶을 만큼 신나게 읽다가,
개빡친다, 개수작, 개지랄에서 '개'가 강아지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문장에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욕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스럽지만,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표현할 때 붙이는 말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정도가 심한', '헛된, 쓸데없는'이란 뜻의 접사라니.
다스가 영어가 아니라는 말만큼, 미사가 한국어가 아니란 말만큼이나 깊은 깨달음이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조금 더 당당하게 써도 되겠는데?
어처구니없는 상대의 태도에 며칠 마음이 불편했다. 나를 탓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감정을 다잡고 나서야 곱고 예쁜 것, 매끈한 구슬 같았던 내 속이 다쳤을까 걱정이 되어, 까실까실한 바구니 안에서 구해내듯 꺼내 들어 정성을 다했다. 예뻐져라, 빛이 나라- 한동안 보드라운 천으로 윤이 나게 닦고 또 닦았다.
그러다 '개-'를 접하고 보니, 개같은 경험을 했음을 문득 깨닫는다. 상처받을 일도 아니고, 그냥 개같은 경험.
"그렇네,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 있지?"
새로운 걸 배워 바로 써먹을 줄 아는 나의 능력에 탄복하며 쓱- 던져놓고 칭찬을 기다리는데,
"그건… 접두사가 아니고 진짜 개(犬) 비하잖아."
"아- 그래? 개 어렵네."
신조어를 처음 배운 어르신이 되어버린다.
사진 출처: 크리스피크림도넛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더즌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