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후 4시

밥물

by 빌려온 고양이


늘 반복하는 일인데 밥물 잴 때마다 목숨 재는 기분이 든다. 지은 지 삼십 년 된 아파트의 녹슨 수도관을 타고 내 앞에 도착한 물의 이력과 그 물로 씻은 백미, 그 밥이 피가 되는 경로를 상상하게 된다.


김애란 _ 가리는 손 중에서


_

단수가 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졌다.

물이 나올 때까지 서울에 올라와 있으라고 했다.


"어제부터 2L짜리 생수 6개씩 나눠주기 시작했어."

"일주일도 못 먹는 물 말고 씻을 물도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신식 관리실이 있는 아파트는 물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우리 연립은 물이 끊기지 않았다고 했다.


비싼 관리비를 내며 깨끗한 아파트에 살아 뭐 하냐고, 사십 년도 더 된 낡은 연립 거주자의 정신 승리 같은 말이다.

엄마의 고지식한 말을 이리저리 톺아보고 수십 가지 대답을 나열하다가 그냥 문대버리고 만다.


"물은 집까지 갖다줘?"

"가지러 가야 해."


나이 든 사람이 무거운 물을 수레로 끌고 오는 것도 일이다. 살겠다고 땀을 흘리며 물을 받아왔을 텐데, 흘린 땀은 또 씻지도 못할 것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해 국적이 다른 사람처럼 비난을 퍼붓곤 했다. 이번에도 정치적 비난과 욕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려던 말을 애써 씹어 삼켰다. 이러나저러나 지역민이 저러고 산다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서울로 올라와 있으라는 말을 다시 건넸다.

강아지를 어디 맡길 수도 없고부터 시작해, 구구절절 아파트와 연립 같은 엄마 나름의 논리가 또 쏟아졌다.


"알겠어. 편할 대로 해."


밥물이 되고, 피가 되는 물이 수도관을 타고 들어오기까지 이렇게 애가 탈 줄이야.


답답한 마음에 우산을 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거세게 쏟아지는 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버석하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Alireza Irajinia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