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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l 24. 2023

다른 사람 이름으로 산다는 건


아버지는 당시 52세 나이로 돌아가셨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49살이다.

숫자를 적고 보니 두 분 다 너무 젊다.


아버지의 부재가 슬픔이  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10년이 훌쩍 지나 서다.


가장의 무게를 알만한 나이다. 혼자 짊어졌을 삶이 얼마나 버거웠을지 깨닫고 나니 가슴이 아린다. 사람을 참 좋아했던 분인데 정작 한 번이라도 잘 놀다 가셨는지 궁금한 점이 많다.


20대 땐 아버지에게 소원도 많이 빌었다.

- 엄마 좀 챙겨주세요, 취직 좀 시켜주세요.-

하늘에서 아등바등 사는 처자식을 지켜보며 불쌍하지 않냐고 원망도 해봤다.


지금은 뭘 더 바라지 않는다.

죄송하다는 말이 앞선다.

아버지도 이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을 거다. 처음 자식을 낳으며 꿈꾸던 미래가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텐데. - 이러고 산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없다.


이제 그때 엄마의 나이와 비슷해진다.

살아보니 먼저 간 아빠보다 덩그러니 남아 있는 엄마가 더 가엾고 애달프다.

미망인, 과부라는 단어가 주는 낙인이 그녀를 얼마나 옥죄였을까. 혼자가 되어버린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게 말도 못 하게 무서웠을 테다.

몇십 년 함께 살던 사람이 곁에 없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심정이리라.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억척스럽고 악착같았다.

젊은 나이에 하고 싶었던 일이 많았을 텐데 새벽부터 밤까지 돈만 벌었다.

말 그대로 나가떨어지듯 자다 일어나 일을 했다.

여자로 살아도 참 좋았을 나이에 어머니로 아등바등 살았다.


하루는 뜬금없이 물었다.

"엄마, 남편 제사를 지내는 마음은 어때?"

어떻겠냐고 역으로 물어보신다. - 풉 - 웃고 만다.


몇 년째 혼자 제사상을 차리신다. 이제는 친척들도 오질 않는다. 몇 가지 제사음식을 올려 술을 따라놓고 매번 흔들리게 찍은 사진을 보내주신다. 자기 딴엔 흔들리지 않게 찍는다고 찍는다. 내 눈엔 겨우 사과, 배 정도가 색깔로 구분될 뿐인데.


사진을 보면 전화를 드린다. 이제 그만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운을 뗀다.

너희 아빤데 부인이 이마저도 안 하면 되겠냐고 하신다. 제사 때 술 한잔은 자기 손으로 따라 드리고 싶단다.


영화 코코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중략)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분을 기억하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고.




나의 작가명은 아버지의 이름이다.


모 배우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활동한다. 존경하는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못다 한 삶이 글과 함께 연장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작가명으로 정했다. 글을 쓰면 아버지가 즐거운 삶을 계속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좋은 글, 좋은 삶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쓰고 싶다.


아버지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 드리고 싶다.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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