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인표 Jul 27. 2023

모르는 전화번호가 두렵다


저녁 8시가 넘어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통상 받지 않지만, 느낌이 이상했다.

"여보세요." 한마디 했을 뿐인데 상대는 마치 외운 것처럼 말을 토해낸다. 내가 끊기라도 할까 봐 다급하고 쉼 없다. 누군지 알 것 같다. 오빠의 아주 오랜 친구다. 응급실이라며 가족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와 통화를 했지만,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해 내게 전화한 것이다.


"제가 내려갈게요."

막차를 확인하고 짐을 챙겨 뛰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수십 번 상상한 일이다. 마음의 준비 같은 거였다. 막상 닥치고 보니 참 부질없는 상상으로 나를 괴롭혔을 뿐 실전은 달랐다.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서 오빠의 이름으로 환자를 찾는 순간 "저기 있어요."라고 한다.

오빠의 친구가 나를 먼저 알아봤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병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유리문 옆 간이침대에 누워있다. 너무 늦게 온 것 같아 한없이 미안했다. 성인 남성인 오빠의 몸무게는 43킬로그램도 되지 않았다. 심장이 멎는 듯하다.


"오빠, 왜 그랬어."

첫마디였다.

내 손을 잡으려 들어 올리던 앙상한 손을 잊을 수 없다.


미라를 보는 것 같다.


왔냐고, 입을 뻐끔댄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는 모습에 억장이 무너진다.


오빠의 친구가 묻는다. 언제 연락하고 처음 보는 거냐고.

2~3년 된 것 같다.

사이가 특별히 나빠서도 아니고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살갑게 연락하거나 보는 사이가 아닐 뿐이다. 아빠 제사 때 보기는 하지만 코로나가 돌면서 그 또한 암묵적으로 지나가는 일이 되었다.


친구는 오빠 집에 꼭 가보라며 주소를 알려준다.


간호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하니 환자복으로 갈아입히라고 한다. 이미 오빠의 옷은 오물이 말라붙어 있었고 팔조차 들 수 없어 가위로 잘라내야 했다.


응급실 앞 편의점에서 기저귀도 사 오란다. 오빠가 기저귀를 사용할 만큼 심각한 것인지 물어야 했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무서웠다.

간병인을 쓸 거냐고 묻는다. 내가 하겠다고 했다. 기저귀도 내가 갈고 일반 병실에서 가족이 보호하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 손을 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가 복용하는 약은 있는지,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건 언젠지, 이것저것 묻는다.

모른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오빠의 혈액형뿐이다.

가족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간경변이다.

전해질이 몸에서 빠져나가 모든 근육이 녹듯이 사라졌다. 하루 전에도 운전했다고 하는데 갑자기 앉을 수도 없고 빨대가 없으면 물을 마실 수도 없는 환자가 되었다.


오빠가 엄마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한다.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본가에 내려가면 그때 엄마를 보겠다고 한다.


고민이 됐다. 나는 자식이 없다. 자식 입장에서 연락하지 말라는 당부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


병원에 있다는 아들을 향한 애끓는 어미의 심정은 알지 못한다.


새벽 3시가 넘어 병실을 배정받고 급한 대로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기저귀 사용법을 배웠다. 간호사가 욕창과 낙상을 설명한다.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인지했다.


 - 아, 이건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새벽에도 엄마는 깨어 있었다. 오시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이미 병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챙겨 가방을 싸두었다고 한다. 본가에서 탈 수 있는 가장 빠른 차를 예매해 드렸다.


엄마는 낯선 지역에선 망부석이 되어버린다. 터미널까지 모시러 가야 했고 병원 출입을 위해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한다.


다음날 터미널에서 꼼짝없이 기다리고 있을 엄마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오빠가 정신을 놓아버렸다.


다시 전화했을 때 엄마는 이미 병원 앞이었다. 혼자 택시를 타고 와 코로나로 통제된 병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다.


엄마를 모시고 와야 한다고 다른 환자의 간병인에게 오빠를 부탁하는데 '엄마'라는 말부터 목이 메기 시작한다.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인근 병원도 알려주며 아예 아침밥도 챙겨 먹고 오란다.

우리 엄마가 날 보듯 바라본다.

어미의 심정인가 보다.


부랴부랴 내려간 병원 회전문 앞 수많은 사람 속에서 엄마만 보인다.


수건이랑 물티슈까지 알뜰히 챙겨 온 가방을 들고 언제 나오나 목을 쭉 빼고 섰다. 유독 바스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나를 찾고 있다.


 - 엄마다. -

      



사진출처: Unsplash의 Adrian Swancar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사람 이름으로 산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