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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l 28. 2023

무조건 살려서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


병원은 이상한 곳이다.

24시간 바삐 움직이는데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환자라는 호칭이 붙는 순간 아프지도 않은데 기운이 없다.


엄마는 20여 년 만에 남편에 이어 아들을 간호하고 있다. 의연했다. 아들 앞에서 울지 않았다. 대신 아들 몸을 닦으며 허공에 넋두리한다.


“착한 아들인데 누가 이리 만들었나. 힘들면 그만두고 내려오지.”


참 착한 사람이다. 남한테 나쁜 소리 할 성격도 못 된다. 그런 오빠가 아프다.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입원한 오빠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똑 닮았다. 황달이 오거나 복수가 찬 건 아니지만 온몸의 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혀 근육조차 없어진 사람처럼 말을 하기도 어렵다.


병시중 말고도 오빠의 터전은 생각보다 정리할 게 많았다. 코로나로 통제된 환경에서 엄마의 식사조차 챙기는 게 버거웠다. 그깟 밥 따위는 아무거로 때우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고 싶었다.


엄마가 낮에 병원을 지키는 동안 오빠의 직장부터 정리했다.


무엇보다 오빠 친구의 말대로 집에도 가봐야 한다.


오빠는 몇 번을 망설이다 집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집에서 나올 때 불을 켜놓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불이 꺼져있으면 집주인이 열고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

.


뉴스에서나 봤던 모습이다.

뜯지도 않은 택배가 현관부터 길을 막아선다. 음식물은 이미 말라붙어 벌레조차 없다. 온갖 쓰레기가 발을 디딜 수 없게 집안 가득 메우고 있다. 오랜 시간 오물이 방치된 화장실은 공중화장실보다 더러웠다. 침대 위엔 켜켜이 쌓인 누더기 같은 이불이 쓰레기와 한데 엉켜있다. 굴처럼 몸만 빠져나온 흔적이 있는 걸 보면 사용 중인 모양이다.


오빠는 꽤 괜찮은 연봉을 받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직업군의 사람이다. 그런데 아주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한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오빠와 엄마의 도움으로 아주 깨끗한 집에서 물색없이 잘살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형제가 뉴스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공간에서 이렇게 망가지고 있었다. 혼자만 살겠다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한 것 같아 물조차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다. 아니,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다.


살려야 한다.

무조건 살려서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급한 대로 모텔을 빌렸다. 씻고 잘 곳이 필요했다. 집을 빨리 청소해야 모텔비라도 아낄 수 있으니, 마음이 더 급했다.

그렇게 집을 정리하는데 하루 8시간씩 5일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하루는 간호사가 뭐 대단한 혼을 내듯 불러 세운다.

환자가 낙상했으니, 병실을 비우지 말라는 것이다. 엄마 보호자와 시간을 조정하라고 한다. 두 번이나 낙상하는 동안 엄마는 잠이 들어 몰랐다고 했다. 넘어질 때 머리를 부딪혀 새벽에 CT 촬영을 했단다.


자기 새끼를 다치게 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알면서도 어떻게 깨지 못할 만큼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는지 울컥 화가 났다.  


자식은 엄마 나이를 자꾸 까먹는다. 내가 나이 드는 만큼 엄마도 늙는다는 것을 잊고 산다. 강인했던 그녀가 우리에게 기대야 할 나이에 아들 병간호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화가 났을까.


낮에도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 느껴진다. 길게 봐야 한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몇 번을 다짐해도 무너지고 있었다.


낮에 청소하고 밤에 병실도 지켜야 한다. 10분, 30분 앉아서 자는 잠이 전부다.


그날도 아침 담당 의사의 회진 내용만 확인하고 급히 병실을 나서는데 엄마가 쫓아와 내 팔을 잡는다.

"이런 날 이렇게 말해서 미안한데…"


무슨 말을 할지 무작정 겁이 난다. 또 무슨 일을 감당해야 할지 두렵다.


"딸, 생일 축하해. 미역국 못 끓여줘서 미안하다."


내 생일이다. 어머니로서 혼신을 다해 자녀를 출산한 날이다. 지금 상황이 미안하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말을 하면 엄마 앞에서 울어 버릴 것 같아 입조차 뗄 수 없다.


엄마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아주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병원을 나와 울면서 걸었다.

오빠가 입원한 후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어본다.



꾸역꾸역 버티던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진출처:  Unsplash의 Martha Dominguez de Gouve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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