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서
밥만 먹지 않기로 했다.
계획했다기보다 집에 쌀이 없어 비자발적으로 식단을 변경해야만 한다.
재취업이 늦어지면서 은행 잔고가 빤해졌다. 밀가루로 만들 수 있는 요리, 국수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도 찾아봐야겠다.
어렸을 때 엄마가 솥으로 카스텔라를 만들어 주셨다. 그 시절 빨간색 뚜껑의 카스텔라 기계는 없는 집이 없었다. 엄마는 웬일인지 방문판매로 그 비싼 카스텔라 기계를 덜컥 장만했다. 덕분에 대단한 재료도 아닌 계란과 밀가루, 설탕만으로 정말 부드럽고 탱탱한 카스텔라를 양껏 만들어 먹었다.
엄마의 카스텔라는 늘 신문지 맛이 났다. 솥 바닥에 신문을 깔고 반죽을 부었기 때문이다.
- 그녀에게 신문지는 만능이다. 싱크대 양념통 아래에도 깔고 옷장 서랍에도 깔고. -
덕분에 매번 물을 묻혀 눌어붙은 신문지를 떼는 지지부진한 일을 해야 했다. 그마저도 덜 떼어진 신문지 조각을 씹기라도 하면 잉크 냄새가 밴 눅눅하고 질겅거리는 카스텔라를 먹게 된다.
카스텔라를 하는 날은 온종일 유리 뚜껑에 매달려 갈색으로 변하는 카스텔라를 지키고 섰다.
냄새는 진즉 <다 됐다.>라고 하는데 시간이 더디다.
그렇게 밥 대신 카스텔라를 해 먹은 날이다. 계란과 우유가 귀해 레시피처럼 만들지는 못해도 밥솥 카스텔라를 만들어 별미와 같은 한 끼를 해결한다.
사실 카스텔라를 먹고 싶었던 건 어떤 작가 때문이다. 퇴사 후 자신의 백수 생활을 에세이 형식으로 책을 낸 사람이다.
처음에 그는 모든 직장인의 꿈인 평일 아침 늦잠 자는 행복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평소 엄두가 나지 않지만 한번 손대면 무아지경에 빠지는 무언가에 시간을 쏟는다. 그중 하나가 티라미수를 만들어 먹는 거였다. 그는 온라인으로 신청받아 가족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주기도 했다.
글을 참 잘 쓰고 만화도 잘 그리는 사람이다. 글이 어쩌면 이렇게 술술 읽힐까. 별 내용도 아닌데 빠져든다.
그가 발간한 책이 벌써 수십 권이다.
그중 일부는 OTT에서 드라마로 제작됐다.
- 이게 되네?-
같은 백수인 줄만 알았는데 성공한 그를 보니 묘한 배신감이 든다. 딱히 아는 사람도 아닌데 혼자만 살겠다고 나를 배신한 것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불안한 나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감사히 여기며 산다.
그러니 누군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새로운 일을 하는 동안 제자리에서 카스텔라만 해 먹는 사람이 된 것이리라.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글을 써야겠다.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썼던 나 다운 글이다.
동시에 품고만 있어 사회성이 없는 글이다.
쓰다 보면 독립시킬 줄 알았는데 품고만 있으니, 독립의 기회도 없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티라미수 작가의 OTT 작품은 곧 시즌2가 공개된다.
그는 모르지만, 선배의 행보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나중에 당신 덕에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노라 감사하다고 말하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티라미수 해 먹듯 카스텔라만 쉼 없이 해 먹다 글을 썼습니다."
사진출처: https://imgsed.com/@cooking_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