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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l 20. 2023

고되고 정겹고 사나운 곳

시장


연예인이 시장에서 값을 깎는 모습이 불편하다.


시장 노점상은 온종일 앉아 겨우 몇천 원, 몇만 원을 손에 쥐는 사람들이다. 그거 하나 시장에 내다 팔겠다고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을 터다.

그런데 거기서 몇 푼 깎는 꼴이 볼썽사납다.


정확히 그 꼴이 보기 싫어지게 된 계기는 모 가수가 "깎아 주지 마시고 제값 받으세요." 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다.


그러게.

연예인은 몇백만 원의 출연료를 받고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래 놓고선 자기보다 한참 못 버는 할머니에게 돈을 깎아달란다.


시장 노점상 일이 얼마나 고된 줄 알기나 할까.


그 가수는 자신이 직접 고사리를 꺾어 삶고 말려보았단다. 다듬고 보니 한 움큼밖에 안 되는걸 그리 고생했다고 푸념하며 고사리 한 가닥이 너무 귀하다고 말한다.


그래. 그렇게 해도 몇만 원 안 되는 돈인데 노점상은 그 돈을 벌려고 새벽같이 시장에 나온다.


시대가 바뀌어 노점상에 대한 인식이 예전 같지 않아도 내가 기억하는 시장은,

고되고 정겹고 사나운 곳이다.


그 시절 상인들은 거칠고 고단했다.




엄마가 시장에서 방앗간을 하셨다.

처음 마련한 가게다.


밑천은 IMF로 명예퇴직을 한 아빠의 퇴직금이다.


노점은 아니었지만,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건 참 고단했다. 천 원, 이천 원에 팔아야 하는 것이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힘들지 않은 일이 없다.


엄마의 팔에는 깨를 볶느라 뜨거운 기계에 덴 자국이 가득하다. 볶은 깨는 천 원어치, 삼천 원어치 덜어 판다. 또 기름을 짜 소주병에 담아 삼천 원, 오천 원에 팔았다. 엄마는 병값도 아끼느라 방앗간 문을 여닫는 새벽 4시와 저녁 8시엔 소주병을 주으러 다니셨다.


친척들은 여름, 미숫가루는 당연히 엄마가 보내주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도시에서 중국산 제품 사 먹지 말라며 들기름과 참기름까지 챙겨 때때마다 택배로 보내셨다.


미숫가루를 한번 만들려면 엄마가 땀을 얼마나 흘려야 하는지 그들은 모른다.


김장철이 되면 고춧가루를 가느라 허리를 쉴 새 없이 접었다 펴야 한다. 고무대야를 들어 올려 기계에 넣고 빼는 일을 반복한다. 김치 종류에 따라 일부는 곱게, 일부는 굵게 갈아 달라 요구도 다양하다. 할머니들은 기계 앞까지 쫓아와 조금이라도 기계에 남아있을 고춧가루를 알뜰히 챙긴다. 그러면 우린 나무 막대기로 기계 입구를 퉁퉁 쳐가며 가루를 털어 보인다.

그렇게 해도 천 원, 이천 원짜리 공임을 받는 노동이다.


여름에는 온몸이 땀띠 투성이다.

돈이 될 만한 겨울이 오면 찬물에, 추위에 손이 갈라지면서 터진다.

계절을 반복하며 떡 상자를 묶었던 엄마의 손가락이 울퉁불퉁하다. 지문이 없는 손가락은 다 펴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고되게 일하는 곳이다.


그러니 수백만 원, 수천만 원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들이 유명세를 이용해 무엇이든 아무렇지 않게 서비스로 달라고 하니 화가 날 노릇이다. 전통시장은 오백 원이라도 깎는 재미가 있다며 마치 시장의 정으로 여기는 모습이 예뻐 보일 리 없다.




아빠는 명예퇴직을 한 돈으로 방앗간을 개업하고 4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소주병을 주으러 다니며 천 원 이천 원 공임을 받아 악착같이 돈을 번 엄마는,


남편 목숨값으로 벌어 먹고사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곳은,

고되고 정겹지만 없는 형편이라 서로에게 참 사나웠던 곳이다.





사진출처: Unsplash의 Soyoung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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