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유튜브 알고리즘이 뜬금없다. 정말 하루치 라디오 방송 콘텐츠다.
듣고 자란 나이도 아닌데 어떤 원리로 추천하는 걸까.
'파주군 금촌면 금촌2리'
주소로 소개하는 사연이 사뭇 반갑다. 문자 소개에 익숙해 까맣게 잊고 지냈다.
역시 라디오는 상상하며 듣는 맛이다. 가본 적 없는 동네가 주소만으로도 그림같이 그려진다. 어디에서 글을 쓰고 있을까.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느라 엽서 뒷면도 손으로 읽힐 만큼 우둘투둘하겠지.
모두 잠든 시간, 감성에 취해 멋 부린 글이 DJ 목소리를 더해 간질간질하다.
친구와 경쟁하며 보냈던 사연이 라디오에 소개된 모양이다.
MBC 로고가 박힌 봉투에 카스피 의류 교환 상품권과 가족사진 촬영권이 들어 있다.
카스피는 감히 꿈도 못 꾸던 고가의 브랜드였다.
'공짜로 카스피 옷을 입을 수 있다니.'
유가증권 맛을 알아 버린 순간이다.
부모님이 사진 찍을 준비에 분주하다. 결혼사진 후 20년 만에 찍어보는 스튜디오 촬영이다. 신혼부부처럼 들떴다.
매일 기름때와 연탄재가 묻은 보급용 작업복만 입던 아버지가 옷을 다린다. 칼각을 잡아 다림질하는 모습이 여간한 정성이 아니다.
진회색 정장 바지에 버건디 셔츠, 검은색 니트 조끼. 마지막으로 차콜색 체크무늬 재킷을 걸치면 한 벌이 완성된다. 구성이 빠지지도, 바뀌지도 않게 딱 맞춰 입는다.
씀씀이가 좋았던 외숙모가 사준 캠브리지멤버스 정장이다. 아버지 옷 중 그야말로 최고급이다.
정말 품격 높은 영국 신사 같았다.
걸치는 옷이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하니 새삼 서글프다.
앙다문 아버지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다. 어찌나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인지 입을 때마다 기분 좋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아버지도 좋은 옷을 입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
아껴 입느라 중요한 자리, 좋은 사람 만날 때만 입었다. 그러니 사진마다 단벌 신사가 된다.
- 증명사진으로 영정사진을 하느라 끝내 단벌만 입다 간 사람이 되었다.-
“잘 찍고 와.”
“너는 오빠가 제대하면 다 같이 찍자.”
지금도 가족사진은 없다.
제대 후 오빠의 머리카락이 길어지기도 전에 아버지가 입원했다. 아픈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퇴원하면 찍자고 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모두가 좋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미룬 일인데 재촉하는 시간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사실 어떤 사연을 적어 보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무슨 프로그램, 누구의 목소리로 소개된 사연인지 듣지 못했다.
이리도 무책임하게 받은 선물인데 시도 때도 없는 엄마의 칭찬에 머쓱해진다.
"네가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야."
제일 잘한 일이 고작 글을 쓰고 받은 사진 촬영권이라니,
사는 게 변변치 않아 효도가 어려운 못난 자식이다.
MBC는 정작 모를 테지만 본의 아니게 MBC에 빚을 지고 말았다.
쇼츠가 넘쳐나는 유튜브가 끌어다 놓은 느릿한 라디오 알고리즘에 마음의 빚을 다 꺼내본다.
알고리즘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사진출처: Unsplash의 henry pe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