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반복, 상처의 되물림

자기합리화, 정당화

by 희랑



인간관계가 어렵던 나는 내 자신이 경계성 인격장애, 소시오패스 이런건 줄 알았다. 무엇이든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완벽주의 성향은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상황을 정당화하거나 실패를 회피하려는 심리가 있었던 것 같고. 거짓말은 습관화가 되었으며, 교활하고 악랄해져야만 집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계부에게는 연년생의 오누이 둘이 있었는데, 나는 그 애들과 다르다는 생각과 그 둘과는 섞일 수 없다는 마음에 외동이었던 나는 혼자 싸워야만 했고, 어리다는 이유로 그게 독이 될지도 모른채 나는 나를 갉아먹는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외동은 많은 특혜를 누리게 된다지만 나같은 재혼가정의 아이들은 별개다. 생전 보지 않았을 눈치를 보게되고, 어느날 갑자기 생겨버린 타인과 섞여 정체성을 잃기 마련이다. 물론, 모두 다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부모님이 사온 치킨 네조각을 사수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착하게만 보이려 애를 쓴다거나 나처럼 뭐든 잘해야만 하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외동은 보통 이기적이다. 외동인 아이는 모든 사람이 게임에서 차례를 지킨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의 모든 행동이 부모로부터 칭찬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한다. 때때로 외동인 아이는 무리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외동아이였던 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힘들어했다. 물질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가진 것을 잘 나누지 못한다. 또 편안하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집에서 또래와 경험을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내성적인 면도 있었고,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있었겠으나, 이는 형제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감과 친밀감을 절대 대신할 수 없다. 다른 사람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재능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걸 누가 알려주었다면 내 상황은 어땠을까. 갑자기 나타난 동생들과 경쟁하지 않았을까. 언니로써 포용하는 마음이 조금은 넓어졌을까.






집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소지는 소멸할 길이 없었다. 잘못 꿰어진 관계들의 얽힘은 밖에서도 반복되었고, 상처의 되물림은 마일리지처럼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자기합리화, 정당화’ 는 당연시 자리잡았다. 멈춰버린 9살 그 때 그 시간은 그때에 머물러 흐르지 않고 나를 계속 옭아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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