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배타적 태도
배타적 성향 -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거부하는 성격’
지난 과거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켜켜이 쌓인 나의 청춘은 밝지 못했다. 소위 겉멋만 든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벗어나지 못한채 심통으로 똘똘뭉친 나라는 인간은 가시밭길 위에서 망나니 행세를 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내 자신도 지키지 못한채 날을 곤두세워 주변사람들 혹은 다가오는 모든이들에게 생채기를 내야만 견딜 수 있었다.
폭력은 상대를 떠나 부메랑처럼 날아와 내면의 자아를 광폭하게 덮친다.
꼭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게 해야만 폭력은 아니듯 나의 눈빛, 말, 행동은 불특정다수를 떠나게 만들었고, 그 폭력은 다시 내게로 다가와 나를 들쑤셨다. 나는 내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지만 무엇이든 계속해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 내 뜻대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지, 아무렴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 이러한 생각조차 상념 속에 잘 아니 뜨며, 그러므로 그에 대한 의구심, '왜 내 뜻대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지?'와 같은 반감과 대상 없는 복수심 따위의 것 또한 좀체 낳지 아니하는 이것. 인식 없으나, 그럼에도 너무도 단단하게 마음속에 기능하는 이 깊깊은 체념은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것인가. 너무도 단단하게 마음속에 기능하는 이 깊깊은 체념은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것인가.
내 마음대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지, 언제쯤에선가 마음 안에 뿌리내리곤 시간의 풍랑 아래 슬며시 지우이는 명제.
이제 20살 대학생이 되서야 학교라는 곳에 적응하여, 하교 후에는 어떤 즐거운 소동을 일으켜볼거나 만을 열렬히 골몰하는 시절이 있었다. 또래라는 것은 이런거구나. 친구라는 것은 이렇게 사귀는거구나를 알게 된 시절. 어차피 고민한들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금세 집중을 잃고 본질을 외면한 체 나는 괜찮은 척을 하기 시작했고, 주변의 또래들과 시끌벅적한 수다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 모습들의 뒤에는 이 '당연한 어른의 것'을 가져다 대어볼 수는 없었다.
애초에 나는 스스로 온 마음으로 느껴볼 만큼이나 겸허한 가슴을 안고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였을까. 세상이 즐거운 예감으로 차 있던 시절. 없었다.
대학교 그 시절엔, 초교시절부터 고교시절까지의 동정과 연민으로 똘똘뭉쳐 지내던 나는 없었다. 세상을 다 가진 괜찮은 척의 기술을 연마한 자 뿐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으로 새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괜찮은 척의 가면은 벗겨지기 마련이었고, 나는 나의 상처를 또 소중한 연에게 휘둘렀다.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나를 구원한 H가 있었다. 신도 내가 가여웠을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준 찬스였을까. 지독하다. 나란 인간.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거니.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S와 그 친구들은 서서히 나와 멀어졌고, H와는 가까이 지냈다. H 마저 잃을뻔한 두번의 사건이 있었을때도 그녀는 나를 믿어주었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딜레마에 대해, H가 뻗어준 그 동아줄 같은 손은 최선이자 필연이 아니었으랴.
또 한번의 혼자가 되는 길을 막아준 그녀 H를 만나고는 괜찮은 척을 덜 하기 시작했다. 가슴 안에 적당한 욕망이 점지된 채로 세상과 만났고, 복되게도 그에 상응하는 적당히 유복한 집안 사정을 물림 받은 자, 그런 자는 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에게 내 이야기는 너무 지독하다.
나의 부모는 알까. 그 어린 아이가 온몸으로 겪어낸 좌절들이 몸에 스미어 체화되곤 그에 뒤따르는 괴롭고 답답한 생각일랑 인식 상 지워내거나 잊힌 결과에 지나지 않는 나날들을 보냈으리라고. 기억해보라. 우리 마음속에 있던 소망들이 그리 쉬이 꺾어내거나 타협 볼만한 것들이었는지. 나의 조악한 의식과 조막만 한 의지를 가지고서 어디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것이었던지. 세상에 가져보고픈 것은 얼마든지 있었고, 겪어보고픈 것은 그보다도 많았다. 눈을 뜨면 거기 반짝이며 있었다.
괜찮은 척의 기술은 나약하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체념하고 ‘척’이라도 해보는 것. 그게 다가 아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