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빗장을 열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by 희랑






하루가 왜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닌데,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하루의 끝에 공허함만 남을 때가 가끔 있다.


그날도 역시 그랬고 이유를 찾아야만 잠에들 수 있을 것 같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인간이라는 매개체의 정의를 알면 달라질까 하는 마음에 인간에 대한 책들을 모조리 사들였다. 꾸준히 읽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대충 훑어보고 필요한 부분은 두세 번씩 읽어도 답은 없었다. 머리로는 이론적인 부분이 이해는 갔지만, 공감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낸 어느 날, J는 내게 글쓰기를 권했다. “이 커뮤니티 들어오면, 작가가 될 수 있대. 너의 이야기를 털어놔 봐. “ 내 이야기라.. 고리타분한 나는 이렇게 살았어요. 근데 극복한 척 살았는데, 지금은 이래요. 이런 얘기 말인가? 그날부터 나는 나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당장 커뮤니티 단톡방에도 들어갔다. 66일의 행동을 매일 하게 되면, 그건 습관이 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66일간 글쓰기 챌린지를 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곧바로 난 2회 참가자가 될 수 있었는데,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하던 나는 눈뜨고는 봐 주기 힘든 낭만에 가득한 글만 끼적였다. (지금 다시 그 글을 보면 너무 부끄럽다.)


그래도 나는 66일간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커뮤니티의 이름은 ‘글로성장연구소’다. 한편으로는 ‘글로 나를 어떻게 성장시켜?’ ‘내가 몇 년간 일기를 써왔는데, 일기도 글인데 성장이 된 거 같지도 않아.’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한탄만 나열해 놓는 글들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33일 정도 썼을까? 중간정산 하듯 나는 그간 써온 나의 33편의 글을 되돌아보았다. 무얼 쓴 거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어떤 생각인지 뒤죽박죽 엉터리 글이었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마음속에선 질문지가 하나 계속 떠올랐는데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었다. 그때부터는 정말 한 편의 글이라도 기-승-전-결을 따져가며 완성도 높은 글을 쓰고 싶어서 오피니언, 에세이, 운문, 소설, 수필 등 다른 사람의 글들을 마구 읽어댔다. 챌린지는 당일 자정 전까지 작성 후 네이버 카페에 올려야 챌린지 인정이 되는 시스템이었고, 나는 그 자정을 지키기 위해 처음엔 촉박하게 글을 쓰다가 나중에 끝물엔 나만의 글 쓰는 시간을 만들었다. 시간을 지키려니 촉박해서는 안 됐다. 그러다 보니 게을리 흘러가던 나의 하루엔 루틴, 그러니까 무언갈 제대로 해내기 위한 책임과 시간분배를 하게 되었다.


육아를 하고 일도 하고 있는 내게, 글은 정말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틈 나는 시간에 글을 썼다면, 글을 쓰기 위해 일을 제시간에 끝냈고, 글을 쓰기 위해 가족들과 아이의 케어를 모두 마친 후 나만의 시간이 생겨났다. 하지만 24시간을 제대로 쓰기엔 버려지는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고, 좀 더 야무진 하루를 보내기 위해 PDS다이어리도 사서 5분 단위로 시간을 야무지게 챙겨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 후 남는 시간과 퇴근 후 하원과 동시에 아이케어를 마친 후 또 남는 시간엔 운동과 명상, 마음 챙김, 스트레칭 등 다양한 나만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시간에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았고, 우울증도 있었고, 대인기피증에 나를 괴롭히는 날들은 하나씩 사라져 갔고 내가 나를 좋아해 줄 수 있는 시간들이 생겨났다. 덕분에 초급반 수영을 등록하고는 자유형-평영-배영-접영(초급)까지는 완주했다. 글 하나로 이런 삶은 살 수 있다니, 내게 다시 글을 쓰기를 권유해 준 J를 업고 뛰어다니고 싶을 정도로 행복이라는 씨앗을 찾은 듯했다.


몇 년 만에 무언가 나 혼자서 처음으로 해냈다는 성취감에 매일 자신만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글로 변화된 건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쓸 수 있는 모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노트, 일기, 성찰에세이, 내면아이 돌아보기-안아주기-다독이기, 성공노트, 필사 등 모든 걸 적었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마음노트다.



쿠팡에서 4분 할로 나눠진 수학노트를 하나 사서, 첫 번째 칸에는 아침마음을 적었다. 일어나서 드는 모든 생각을 적는 것이다. 대신 이 마음노트에서는 절대 나를 비하하거나 내 자신을 채찍질하는 언어를 써서는 안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마음 챙김 노트인데, 나는 나에게 맞춰 알아서 적었다. 아침마음을 적고 나면 두 번째 칸에는 오후마음을 적는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적었다. 오후에 겪는 마음들을 적으면서, 나의 마음을 객관화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 회사 출근하기 싫었는데, 벌써 오후네. 사람관계로 힘들 너의 마음 충분히 이해해. 그래도 출근해서 기특하고, 벌써 오후가 됐잖아? 곧 2시간만 있으면 퇴근인데, 시간이 너무 안 가지? 그래도 두 시간 후면 토끼 같은 우리 아가 볼 수 있으니까. 그 생각하면서 웃는 얼굴 떠올리면서 한번 또 이겨내 보자’ 이런 식으로 적는다.


저녁마음과 자기 전 마음 챙김 글도 이런 식으로 내가 오늘 겪었던 마음들을 돌아보고 이해하고 안아주며 다독이는 글들을 적으니, 어느새 이것도 글이라고 기록이 되었다. 글을 계속 쓰니까 좋은 점이 계속 되돌아볼 수 있는 기록들이 쌓였다. 어제의 나도, 저번주의 나도, 한 달 전의 나는 어땠는지 데이터가 쌓이니. 얼마나 허송세월을 보냈는지, 그 허송세월을 어떻게 이겨내려고 했는지들이 보이니 자기 객관화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가 보였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


명확해진다.







글을 쓰고 나는 과거부터 청산하고 싶었다. 정신과에 가서 의사에게 내 과거를 도려내달라 할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건강한 루틴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여 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마음이 있거나 상황이 그렇다면, 글을 쓰자.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을 적자. 그리고 질문하자. 사랑하는 나에게.


오늘 나는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나에게 집중하자.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는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좋으니, 몸부터 움직이자. 몸의 성취는 아주 작아도 괜찮다. 가볍게 산책을 했거나, 물 한 잔을 더 마셨거나, 스트레칭이라도 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몸을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내 삶에 활력을 더해주는 일이니까. 마음의 성취는 뇌를 쓴 시간이다. 책 한 페이지를 읽었거나, 짧은 글을 썼거나, 생각 정리를 했거나. 무언가를 배우고, 채우고, 정리하는 그 순간이 내 정신을 단단하게 만든다.


가장 소중한 건 영혼의 성취다. 기도, 묵상, 명상, 혹은 그저 조용히 나와 대화한 시간. 세상을 보는 눈을 닫고 나를 돌아보는 잠깐의 그 시간이 내 안의 중심을 다시 잡아준다. 그리고 이런 작은 성취들이 쌓여 나를, 삶을, 미래를 조금씩 바꿔놓는다.




"조금씩 성취한 하루가 결국 인생 전체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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