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위로 나타난 내면아이
글을 쓰니 괜찮아지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면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면 아이(Inner Child)’라는 상담학 용어로도 정의된 개념이다. 누구에게나 내면아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각자 개인마다 다르게 자란 성장 배경에는 아이가 성인으로 자란 후에도 내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었던 시절에 받은 상처나 아픔들을 지우지 못하고 상처를 감추려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그랬듯이.
너무 오랜시간 그 자리에 있었을 나의 내면아이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안녕? 아니지. 안녕하지 못했나? 미안해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너라는 아이가 존재하는지 몰랐어." 3살 때 나에게도 말을 걸었다. "괜찮아 놀라지 않아도 돼. 나는 가장 안전한 너만의 어른이란다. 이리와 안아줄게."
9살의 나에게도 물었다. "지금 너가 겪는 일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내가 어른이 되어 너를 안아줄 때까지 오랜시간이 흘렀다. 괜찮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금 네가 겪는 일들은 괜찮아질거야. 오랜 시간을 견디며 아파할날들이 많아질텐데. 그래도 괜찮아 이제 네 곁엔 내가 있어줄거거든.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안해. 훨씬 더 나은 멋진 모습을 기대했을텐데, 여전히 부딪히고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사람이라 미안해. 너의 아픔을 외면 하고 숨기기에만 급급했던것도 미안해."
열 여덟살의 나에게도 말했다. "괜찮아 눈물을 참지 않아도 돼. 넌 아직 어려. 곧 스무살이 된다면 엄마의 슬하에서 벗어난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너무 힘들면 울어. 참지마 네가 할 수 있는게 눈물밖에 없다고 해도 괜찮아."
어린 시절의 아픔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로 커버린 나는 예민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 되었다. 온유하고 안온하고 잔잔한 성품을 갖고 싶었지만, 간혹 날카로운 모습을 보일 때면 나 자신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아무도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 돌이켜보면 감정 기복이 다소 심했던 것 같다.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내게 옛날부터 속으로 되뇌던 말이 있다. '울지마, 울어서 해결될 건 없어.' 울어서 해결된 없을지언정 울지라도 않으면 속에 상처가 쌓인다는 걸 그땐 몰랐다. 앞으로 내가 잘 커서 하고자 하는 일은 꼭 이루어내어 이딴 과거 따위는 없었던 사람처럼 보란듯이 잘 살거야. 이 정도의 상처들도 잘 견뎌냈는데, 못 할게 뭐람. 앞으로는 좋아질거야. 라는 자기최면에 쌓여 지냈다. 내가 나를 속이게 되니 뭐랄까 허공에 떠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내가 나를 속일 수 있게 되니 남을 속이는건 식은죽 먹기였다.
쳇바퀴 돌 듯, 나는 계속 머무르지도 나아가지도 못했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 전까진.
글이 재밌고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확인했다고 해도, 나의 이야기를 나의 내면을 마주하기란 쉬운일은 아니었다. 두렵고,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며, 혹여나 잘 지내고 있던 내면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할 이 녀석과의 대면을 시도했다.
기억을 마주 하는 일
눈을 감고 생각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왜곡된 기억 말고, 망상에 빠져 자기연민에 빠져 나를 불쌍히 여기는 글 말고 단순이 생각나는 모든 장면들을 적었다. 엄마에게는 그동안 물어보지 못했던 엄마의 이혼 얘기를 물어봤고, 사실확인을 했다. 내가 할머니에게 건네들은 할머니의 생각이 담긴 이야기들 말고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겪었던 장면들을 차곡차곡 순서대로 맞춰나갔다. 중간에 퍼즐이 빠져있는 부분은 비워두기로 하고 엉켜있는 실타래도 풀어주고 없던 조각을 만들어내지도 않으며, 아주 담담하고 덤덤하게 적었다.
글을 적다보면, 다시 그때의 시절로 돌아가 눈물이 차오른다. 그럼 그냥 흘렸다. 회피하던 일들을 깊숙하게 들어가 그 일을 제대로 대면하고 나와야 해결이 되었다. 나를 버렸다고 믿은 친부는 사실 책임감보단 자기가 우선이었던 사람이고, 자식보단 본인의 욕심이 먼저였던 사람이다. 내 밑으로 몇명의 동생이 있는지 호적도 떼어보고, 엄마는 어떤 이혼의 과정들을 겪었는지 나는 왜 엄마의 폭력이 있는 상황에 놓여져야 했었는지, 왜 나는 엄마에게 머리에 피가 나면서까지 맞았었는지 그만큼 내가 잘못한건 무엇인지들을 모두 마주했다. 내가 태어난 일이 잘못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내가 그 일들을 대면하겠다 하니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모두에게 들은 사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거면 됐다.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의 환경에 따라 내가 느낀 감정이 맞고 틀리고 따질 수는 없다. 단, 기억을 마주하면서 한가지 달라진 점은 생각의 꼬리를 달지 않게 되었다. 그냥 그렇다고 하자! 이런 외면이 아닌 감정 짚고가기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 말 해주기 이렇게 달라지니,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아졌다.
내가 달라지니 엄마가 내게 대하는 것이 달라졌고, 남들이 나를 여기는 태도도 달라졌다. 내가 달라지니, 내 자신이 편해졌다. 상처 받을 것 같은 상황에서는 늘 도망쳤다면, 마주하여 해결하는 능력도 조금 생긴듯하다. 남들의 입에서 나온 쓰레기 같은 말들을 주워담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