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는 것들
출산까지... 아니지, 출산을 하고 난 후에도 나의 불안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의 몸은 예민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아기가 만들어진 후 생기는 여러 일들을 누군가가 설명해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낙태와 관련된 영상은 보여주기만 했을 뿐 임신 후 어떻게 여자 몸이 변화된다는 그러한 점들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임신 초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임신 후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몸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배도 계속해서 아프다고 하니 보이는 것은 없는데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같았다. 엄마도 이렇게 힘들게 나를 낳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엄마가 한편 대단했지만, 표현할 길은 없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임신 초기는 졸리고 배에 통증이 계속해서 있으며 입덧으로 고생했고, 먹덧, 토덧 등등의 단어들이 많지만 나는 이 세상 모든 냄새가 역겨운 입덧, 토덧을 겪었다. 또 가장 힘든 것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였고, 지나가는 사람의 체취만 맡아도 토를 했으니 말이다.
임산부 배지를 달고 출근을 하는 길에도 지하철에 임산부석엔 멀쩡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앉아 눈을 떡하니 감고 졸고 있거나, 임산부인 나를 밀치며 지하철을 타고 내렸다. 내가 임신하던 시기는 또 코로나 시기로 타인의 기침소리에도 예민해지던 시기였던지라 나는 막달까지 출퇴근을 신랑 차로 했다.
남편성격에 임신기간 중 나에게 해줬던 지극정성은 공주대접 저리 가라였지만, 나는 그것조차 불만이 많았다. 살던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던 시기와 임신기간은 맞물려 최악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으니 나의 불만, 불안은 점점 증폭해져 갔고, 대인관계도 사회생활도 하기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임신을 하겠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나름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2020년 9월 5일 나는 응급제왕으로 아이를 출산했다.
출산 이후 입덧은 소리소문 없이 하루 만에 사라졌고, 자연분만보다 제왕수술 후에 훗배앓이가 더 심했다고 하던데 나는 정말 날아갈 듯 속이 다 시원했다. 바로 뛸 수 있을 정도로 힘든 임신기간을 청산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갓 태어난 내 아이를 안아본 건 5일 후였다. 신생아실에서 먹이는 분유는 인스턴트 일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에 나오지도 않는 모유를 젖병에 담아 매시간 갖다 주었고, 잘 먹고 있는지 계속 확인했다. 이런 게 모성애라는 건가 싶었다. 아이를 낳았지만, 모자동실도 되지 않던 시기라 애간장이 탔다.
조리원으로 가는 날 드디어 아이를 안았다.
작디작은 꼬물이가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조리원으로 가는 차 안 혹여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조심조심 이동하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조리원은 다행히도 모유를 강조하는 조리원장의 신념(?)으로 인해 30분마다 수유콜이 왔던 것 같다. 첫 아이라 그런지 그런 수유콜을 다 받아내니 조리가 되고 있는 건지 잠은 잘 자는지도 모르게 열심히 수유하러 갔다.
그렇게 5일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우울감의 휩싸였던 나는 옆방에서 통곡을 하며 울고 있는 산모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그 울음소리에 나도 괜히 울컥했다. 우울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난 그 조리원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도 매일밤을 혼자 있으면 울었던 것 같다.
주, 야간 교대근무를 하던 신랑은 매일같이 내 옆을 지켰고 남편이 야간을 가는 날에는 눈물로 지새우는 날들을 보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아이를 데리고 처음 우리 집으로 온 날.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던 우리 집 작은방 천정엔 외벽 균열로 인해 스며든 빗물이 곰팡이로 변하여 벽지 교체를 해야 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나는 그날 이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운 엄마가 되어갔다. 사실 그 벽지는 다시 새로 벽지를 시공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내가 부족해서 내가 완벽하지 못해서 그런 집에서 살게 하는 것 같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그 집은 아니 그 동네는 영세민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는데, 타지 생활이다 보니 그런 동네 정보도 없이 돈에 맞추어 오게 된 집이라 이 또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임신기간도 힘들었지만, 출산 후 18개월까지 그 집에서 사는 내내 나는 너무 매일매일이 행복하지만 더 큰 불안감과 불행감이 나를 맴돌았다. 안전불감증이 아닌 안전불안증이 생겨 이상한 위험한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상당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이 집을 팔기로 마음먹었고 우리 셋의 보금자리를 발품 팔아 찾기 시작했다.
늘, 엄마에게 허락받고 인정받지 못했던 나는 이사라는 것이 큰 일일수도 별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엄마의 허락 없이 내가 처음 해낸 일이었다. 집을 내놓고 하루빨리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만 내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역시나 엄마는 흔쾌히 수락하지 않았다. 엄마는 애초부터 나를 믿지 않는 사람이니 이번은 무시하고 내 의견을 내가 정하기로 마음먹고 그 집에서 딱 2년 살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18개월이 된 아이와 우리 셋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로이 시작했다.
새로운 곳에 간 다한 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이유식에 그렇게 많은 힘을 쏟아붓고 유아식으로 넘어가는 시점, 어느 날 내가 해준 음식을 먹지 않고 반찬 하나하나 방바닥에 던지는 아이를 보며 아이에게 처음으로 손찌검을 했다. 그날 밤 자고 있는 아이를 보고, 퇴근 한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사실을 알리며 나는 펑펑 울었다. 내가 겪게 한 일을 또 겪게 했다며 내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작은 일도 큰 일로 만드는 내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듯했다. 어릴 적 기억만 도려내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고심해 봐도 내 기억을 도려내어 기억이 나지 않게 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동네를 걷던 어느 날.
내 눈앞에 한 글자가 들어왔다. '정신의학과'
저기라면 내 기억을 도려낼 무언가가 있을 거 같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을 들어서기 전 많은 고민을 했다.
정신과?..
내역이 남으면 어떡하지? 내가 살기 위한 방법은 이거밖에 없는 거 같은데..
이 일로 또 훗날에 누군가에게 꼬투리 잡히면 어쩌지?...
그래도 나는 지금 살아야 하는데........
많은 고민 후에 나는....... 살고 싶은 마음에 들어갔다.
나의 진료차례가 되었고,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앞에는 휴지가 있었다.
"어떤 것이 가장 힘드세요?"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였다.
"모르겠어요.."
"잠은 잘 주무세요?"
"아니요.."
.................
..................
..........
시간을 주시는 걸까 어떤 얘기든 해보라는 의사 선생님 표정에 말문을 열었다.
"제 과거를 도려내고 싶어요.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마 그때부터 잘못된 거 같아요."
이 얘기를 시작으로 나는 1시간 40분 동안 울면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진료실을 나왔고, 처방전이 내 손에 들려있었다.
'약을 먹을 정도로 안 좋구나 나...'
열심히 약을 잘 챙겨 먹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하고
긍정회로를 돌린 후 약을 처방하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2주 정도 먹었을까..
문득 어떤 약인지 궁금해졌다.
수면제와 안정제였다.
정신과 진료는 1주 또는 2주마다 가면 되었고, 약은 꾸준히 하루에 2번 혹은 1번 정도만 먹으면 되는 루틴이었다. 두 번째 갔을 땐 제가 아이를 때렸다고 말했다. 밥을 안 먹는 아이에게 제가 손찌검을 했다며 펑펑 울고 나왔다. 수면제를 처방해 주셨던데 저는 잠이 문제가 아니라 제 과거가 문제인 거 같다고 얘기했고, 의사 선생님은 그냥 내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그 다음번에 갔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아 불안하고 모두 나를 지켜보고 잘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거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네 번째 진료였을까 그날은 엄마와의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 말했다. 여태 내 얘기를 잘 들어주시던 의사 선생님이 드디어 말문을 여셨다.
"어머니와의 인연을 끊으세요. 연락을 안 할 수 있다면 최대한 하지 마시고, 어머니와 단절하세요. 그래도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황스러웠다... 부모와의 연을 끊으라니?
"사람이기에 부모를 봉양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동물들도 부모를 죽을 때까지 봉양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사람이기에 그래요. 부모라고 해서 다 좋은 부모는 될 수 없는 거예요. 어머니가 ㅇㅇ씨에게 나 죽는다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건 (BPD..라고 적는 의사) 경계성 인격장애를 의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검사를 해봐야 더 정확하겠지만, 어머니가 ㅇㅇ씨에게 보였던 장면들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ㅇㅇ씨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와서 그런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 건강한 엄마가 되려면 ㅇㅇ씨 엄마와 인연을 끊어보세요. 수면제는 잘 드시고 계시죠? 내성 있는 수면제를 처방해 드린 건 아니라 계속 드셔도 됩니다. 그리고 잠을 많이 주무세요.."
이후 의사 선생님은 긴 이야기를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엄마와의 연을 끊어라, BPD 이 글자만 맴돌았다. 병원을 나와 몇 날 며칠을 또 의사의 얘기들로 내 머릿속은 괴로웠다. 엄마가 애증의 존재인 건 인정하지만, 엄마와 연을 끊으라니...? 내가 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엄마랑 단절을 하라니. 나는 그때 기억만 도려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의사라는 이유로 말을 막 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 이후로 나는 몇 차례 더 병원을 갔지만, 극단적인 방법만 제시하는 의사의 말에 내가 또 옳다는 판단을 했다. 수면제도 끊고 나는 인간심리, 부모 RT 이런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부터 엄마라는 책임감은 무엇인지, 인간 행동의 이해 이런 논문을 책으로 편찬한 도서들을 사들여 읽기 시작했다. 좀 더 이론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내가 이 지경이 된 이유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