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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Apr 24. 2024

남자 사람이 무섭다.

나는 여전히 당신이 두렵다.

아빠가 없이 자라서 그런가 나는 말 그대로 남자사람이 무섭고 두렵고 불편하다. 그들의 음성 데시벨은 날카롭고 새되기까지 하다.


내 인생에서 첫 남자 사람은 과외 선생님이었다. 전학을 많이 다닌 나에게 학업이 뒤쳐질까 싶어서였는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탁으로 삼촌 후배에게 과외를 받게 된 첫날이었다. 남녀 칠 세 부동석을 배우며 고리타분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과외선생님이 극도로 무서웠다. 감지 않은 듯한 머리, 다듬지 않은 눈썹, 까무잡잡한 얼굴을 더 답답하게 만든 뿔테안경, 며칠은 안 씻은 것 같은 초록색양말, 가죽이 다 해진 군화 같은 워커를 보고 나는 과외받기 싫다며 울어버렸다. (외모를 비하하는 게 아닌 이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섭고, 두려움으로 다가왔었다.)


둘째 날은 이모와 같이 같은 공간에서 과외를 받기로 했다. 이모는 방문 건너로 사촌동생을 살피고 있고, 나는 첫날보다 조금 안심된 마음으로 교과서를 펼쳤다. 과외 선생님의 목소리는 낮고 굵직한 목소리였지만 나에게 그 데시벨은 날카롭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5cm 정도 되는 스프링 노트를 펼쳐 얼굴을 숨긴다. 스프링 사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선생님과 나 사이 벽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용돈 벌려고 왔을 과외선생님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무서운걸.


교과서를 펼치고 진도를 나가려고 했지만, 나의 극 거부반응에 선생님은 다른 제안을 했다. 어떤 걸 배우고 싶은지 말해보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다음 시간까지 한번 잘 생각해 보라는 말에 나는 무섭지만 용기를 내보았다. ‘필기체 배우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가끔 보던 외국영화 중 펜촉으로 필기체를 쓰면서 편지를 쓰는 장면이 인상 깊었었나 보다.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지만 멋있어 보였고 그게 갑자기 배워보고 싶었다. 선생님은 필기책 도서 한 권을 들고 오셨다. 'Aa' 'Bb‘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들을 적어가면서 쾌감을 느꼈다. 아 이렇게 재밌는 수업이라니!


노트 스프링 사이로 빼꼼 바라보던 나는 서서히 선생님과 친해졌고, 방문 건너 있어 주던 이모도 더 이상 함께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선생님은 필기체를 알려주기도 하고 교과목 공부도 알려주었다. 그러다 지루 할 때쯤엔 학종이로 거북이 접는 법도 알려줬다. 군대에 있을 때 좋아하는 여자친구한테 거북이 1,000마리를 접어준 적이 있다고 했다. 짝사랑이 이루어졌냐고 물었더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도 나는 눈물의 거북이 접는 법이 생생하다. 오래전 일인데 아직도 거북이를 접을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장황한 과거 이야기였는데, 이렇듯 나는 남자사람이 무섭다. 남녀공학을 다닐 때에도 대학교에서 만난 남자 동기들도. 사회에서 만나는 남자 동료들도. 내게는 모두 무서운 존재들이다. 업무적인 대화를 요청할 때도 크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겉으론 안 그래 보이지만 내면에선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요동친다. 난 이게 아빠의 부재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태어나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알게 되고 아빠와 엄마의 역할들을 자연스레 배우는 게 당연지사지만 나에겐 그 경험이 없었다. 그 빈자리는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큰 걸림돌이다. 부재 속에서 결핍된 내게 조금은 더 명확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까. 아직도 어떤 게 원인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5살 된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나도 키우는 중이다. 내 아이가 그때의 내 나이가 되어 성장할 때 나도 그땐 알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의 나는 들춰내기만 하면 아프고 상처다 덧나던 과거를  그냥 있는 그대로 두며 내가 나를 다시 키우는 중이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취지대로 갇혀있는 나를 꺼내주려 글을 쓰고, 아프게 걸어온 나의 시간들이 결국에는 나를 가장 따뜻하게 안아줄 가정이자 집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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