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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Aug 06. 2023

아카시아 꽃

엄마의 아카시아는 사랑이었다.


엄마의 환한 웃는 얼굴을 많이 본 적이 없다. 엄마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아마 진하고 딥한 인디고 컬러 같다. 심해같이 한 없이 깊고 조용하고 적막한 느낌이랄까. 내게 엄마는 그런 느낌이다.


97년도였을 거다. 까만 소나타를 타고 다니던 엄마는 내게 너무 멋있는 우상이었다. 소나타는 투박하지만 반짝거렸고, 지금의 승차감과는 달랐던 것 같지만, 엄마가 운전하는 차 안은 너무 설렜다. 온전히 엄마와 나만의 공간이라서 그랬나 보다. 조수석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그 느낌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좋다.

속도를 급격히 줄일 때면 엄마는 늘 내 가슴에 손을 얹어 준다. 서른 중반이 된 딸인데도 아직도 그렇게 해준다. 나는 엄마의 그 손이 정말 따뜻하다.


7살 때였나. 음력으로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난 나는 엄마와 수덕사를 가는 길이었을 거다. 음력 사월 초파일. 양력으론 5월이었겠지 아마-

창 밖으로는 송악가루가 떨어지고 봄을 알리는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적한 국도 한쪽에 엄마가 갑자기 차를 세운다.


“엄마! 어디가?”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가드레일 옆 작은 산을 오른다. 산이라기보단 작은 오름이랄까. 양손 가득 포도송이 같은 하얗고 예쁜 아카시아 몇 송이(몇 덩어리)를 들고 와서는 미용티슈를 뽑아 내 무릎에 깔고 아카시아 송이를 살며시 올려주었다.


“주희야, 이거 봐봐 이건 아카시아 꽃인데 이렇게 떼서 뒤쪽을 쪽 빨면 단맛이 날 거야. 한번 먹어봐!”


“엄마는 이거 많이 먹었어?”


“엄마는 많이 먹어봤지~ 어때? 향긋한 맛이지?”


“응! 맛있어!”


뿌듯한 얼굴로 사랑스러운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는 다시 핸들을 잡아 수덕사로 향한다. 엄마는 기분이 좋았는지 휘파람을 분다.


곧 우리는 수덕사에 도착하고, 엄마는 절을 하고 스님과 인사 후 잠깐 얘기를 하더니, 사찰 밥을 먹으러 갔다. 그때 스님이 그랬다.


“앞으로 주희 생일엔 온 동네에 등이 달릴 거야. 오늘 이 밥도 언제든 먹을 수 있어. 언제든 오렴”


아빠의 부재를 일찍이 안 나를 위해 스님이 해 준 생일 선물이었다. 앞으로 너의 생일엔 온 세상에 등불이 밝혀질 거야. 어떤 절에 가도 널 위한 생일 상을 차려주실 거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런 얘기였던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많은 애정의 표현을 해주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이해했다. 하지만, 머리로만 이해했지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참 어렸고, 엄마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줬고, 온 힘을 다해 나를 사랑해주고 있었다.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 알겠더라 아카시아 꽃은 큰 사랑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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