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가을 여행기
“자기야 내일이랑 모레 나 쉬는데 어디 바람이나 쐬러 갈까?”
“좋지! 어디로 갈까? “
“어디든! 숙박은 10만 원 밑으로 잡아보자고! “
“좋았어!”
우리 가족의 1년 중 가장 한가한 계절은 가을이다.
아이가 태어난 계절이기도 하고, 가장 바쁜 봄, 여름이 지나고 나면 늘 우리는 가을쯤 숨통이 트인다. 아이가 5살이 되면서 밖에서 1박을 해도 열이나 거나 면역력이 약해 감기가 걸린다거나 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우리 가족은 언제부턴가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아주 잠깐 지나가는 이 가을에 최선을 다해 가을의 풍경을 즐긴다.
올해는 내 직업도 바뀌고, 옆지기의 쉼도 필요했던지라 가장 가까운 경주로 향했다. 늘 숙소를 예약하려 할 때마다 침구가 가장 깨끗한 호텔로 가고 싶지만, 우리 부부는 에어비엔비나 펜션을 더 선호한다. 이번에도 숙박비를 아끼는 대신 맛있는 것과 아이를 위해 좀 더 효율적인 여행을 준비했다.
극 J스러운 우리 부부는 어느 정도 큰 가닥의 계획을 세움으로부터 늘 여행이 시작된다. 예를 들면, 몇 시에 출발해서 몇 시에 그곳에 도착 후 몇 시에 그 식당에서 그 메뉴를 먹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냥 무작정 아무 계획 없이 간 여행에서 노다지를 발견하거나 더 큰 행복이 찾아오는 날이 있기에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우리 이번 목적은 우리 왕자님 깔깔 웃게 해 주자!”
“아주 좋았어!”
우리 집 왕자님은 벌써부터 신이 났는지, 가장 좋아하는 스파이더맨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주고 잠에 들었다. 집에서 1시간 반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고, 아무 계획도 없던지라 장도 보지 않고 무작정 도착 후 떡볶이를 시켜 먹었다. 떡볶이로 간단히 요기 후 운전으로 피곤한 옆지기는 잠깐 눈을 붙였고 아들내미와 나는 숙소 안 트램펄린에서 실컷 놀고 숙소 안에 나타난 거미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는 깔깔대며 웃고 놀았다.
키즈펜션에 풀빌라였기에 15만 원-20만 원은 훌쩍 넘을 줄 알았는데, 아고다 어플로 최저가 방에 10만 원 초반대로 예약한 숙소라 더욱더 러키비키였다.
조금 쉬고 나니 7:30분쯤 되었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무계획 여행에 날씨도 보고 오지 않았던 터라 비 예보도 몰랐지만 우리는 가져온 옷을 모두 껴입고 동궁과 월지 야경을 보러 나갔다. 비가 오면 더욱 운치 있을 거라며 나섰다.
역시 비 오는 날 야경은 운치 그 자체였다.
아들내미도 너무 좋아했다. 물 웅덩이를 첨벙첨벙 밟는 탓에 엄마 아빠 신발도 젖고, 바지도 젖었지만 행복해하는 모습에 두배로 행복했다. 가을밤의 비 냄새도 좋고, 쌀쌀한 바람도 좋고 야경도 좋고 다 좋았다.
돌아오는 길엔 출출해서 옛날 맛이 나는 치킨 한 마리를 사가자고 하고는 때마침 아주 맛있는 치킨집을 발견했다.
치킨의 맛은 환상이었다.
치킨을 기다리며 경주 첨성대 자석도 하나사고 사진도 찍고 경주 시내의 인테리어가 예쁜 가게들도 보고 너무 행복했다. 무계획이 주는 여행은 이런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행복이다. 환하게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의 웃음에 부모인 우리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정확히 12년 전 옆지기와 왔던 구 안압지, 동궁과 월지의 야경도 행복했고, 많이 세련된 경주 시내모습에 우리 세 가족이 있는 모습도 행복했다.
우리는 야경과 치킨을 마지막으로 잠에 들었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비단벌레 전기차를 타고 경주를 투어 하려고 했지만, 이미 모두 예약이 마감된 상태라 루지를 타러 갔다.
떡갈비 정식으로 배를 채운 후 날씨요정이 찾아와 준 하늘 아래 루지를 타러 간 건 행운이었다 :-) 깔깔거리다 못해 좋아서 소리를 빽빽 지르는 아들의 웃음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행복한 추억이 또 만들어져서 다음에 또 오자는 기약과 함께 마지막 코스로 보문단지 산책 후 집으로 향했다.
계획을 잔뜩 하고 가서 완벽히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땐 아쉬움만 남았었는데, 무계획으로 가는 여행에서 만난 행복들은 더욱더 소중했다. 비움의 미학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려나! 2024년 10월. 우리 가족 무계획 가을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