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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Feb 09. 2022

글에서 술냄새 나요

“이제 진정한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것 같네”, “무슨 뜻이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술을 마시는 거 말이야”


오후 2시, 와인 한 잔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했다. 내 몸에는 알코올 분해 능력이라는 것이 없어서 술이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내 피부는 불타는 고구마색이 된다. 그저 그런 버터와 햄을 쓴 잠봉뵈르에, 지나치게 설탕에 절인 올리브와 코울슬로 그리고 사과쨈으로 손님의 혀를 달래는 카페. 나는 취해서 지금 당장 집으로 순간이동하고싶은 심정이다. 집까지 걸어갈 힘이 없다. 특히나 통굽 부츠를 신고서는. 아직 녹지 않은 눈과 통굽 부츠 그리고 알코올의 조합은 좋지 않을 것이다. 골절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자리 잡은 창가 자리 바로 옆에는 싸구려 스피커가 있다.  방에 있는 스피커가 그리워진다. 스피커 볼륨은 지나치게 커서 그리고  카페의 플레이리스트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눈치없이 발랄해) 처음엔 독서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지만, 설탕범벅의 사이드메뉴와 알코올을 들이키면서 읽는 책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언제나 옳다. 나의 뮤즈 엘레노어  밀렘도.


하나는 당히 배부르고 두개 먹기엔 많은 잠봉뵈르를 보며 생각한다. 하나를 6천원에 팔면 좋을텐데,  두개를 12천원에 팔지. 한번에 두개 팔아먹는게 훨씬 많이 남으니까. 카페 주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뭐든 그렇다. 화장품도 끝까지 쓰는 법이 없는데 용량이나 줄이고 가격을 낮춰주면  좋아? 라고 생각하곤 했던 나였다. 지금은 화장을 하지도 않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로부터 음식을 남기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나는 어른이 된(과연 어른일까? 아직 애 아닐까?) 지금도 음식을 잘 남기지 못한다. 눈 앞에 있는 음식을 다 먹어야 한다는 강박. 그렇게 나는 배가 찢어지도록 잠봉뵈르 두개를 다 먹는다. 그렇게 음식을 먹어치우고 불뚝 나온 배를 보면서, 이 배를 살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이것들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강박. 잠봉뵈르 하나를 먹으면서도 참 다양한 강박에도 시달린다.


 카페 플레이리스트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쓰면서 조금은 알코올에서 깨어난  같기도 하다. 이제 집에 가서 나의 아늑한 침대에 누워  스피커로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싶다. 부디 집에  성히 도착할  있기를 빌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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