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Prologue
내 자전거 여행의 첫 페달질은 3년 전 한 영화에서 시작되었다.
여행을 결심하기 전. 당시의 나는 연이은 실책과 실패로 좌절한 상태였다. 주변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채 계속된 실패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키웠고 자신의 한계와 무능력에 질린 나는 자기혐오에 빠졌다. 무기력하게 좀비와 다를 바 없이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를 봤다.
그레이의 20가지 그림자 같은 이름..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선택한 영화였기에 무슨 운명적인 만남이니 할 것도, 인생영화가 될 것이니 하는 기대도 없었다. 게다가 영문 제목으로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라니 무슨 불륜영화 같지 않은가.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이 영화가 보여준 광활한 대자연의 파노라마와 따분한 일상 속에서 수동적이었던 주인공이 의도치 않은 모험을 통해 점점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인물로 변화해 나가는 이야기는 당시의 나에게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LIFE 잡지사의 모토인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LIFE(인생)의 목적이다.”
이 말에 크게 감명받은 나는 매일을 무기력하게 소모하는 것이 아닌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고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로 시원하게 내달리는 장면을 보며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한 영화로부터 시작한 작은 결심은 내 삶의 새로운 목표가 되어 무기력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매일 똑같을 오늘은 내일을 향한 기대로 만들었고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계획은 희망이 되었다. 그렇게 착실한 준비의 나날을 지나 시작된 첫 자전거 여행은 동해안 종단으로 시작해 일본으로까지 이어졌다.
여행에서 경험한 국내외의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은 내가 있던 세상은 한없이 좁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고 자전거 여행의 고통은 극복을 통해 나에게 성공의 쾌감과 자신감을 주었으며 페달질로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은 나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꿈만 같던 2달간의 여행이 끝나고 나는 입대를 하게 되었다.
지루한 2년간의 군 복무기간 동안 나를 게으름과 나태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었던 것은 일본 여행 중 어느 해안에서 보았던, 미치도록 아름다웠던 노을의 기억이었다. 힘들 때마다 여행 중 보았던 풍경과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전역 후 그때의 감동을 느끼기 위해 일본 일주 계획을 세우고 여행자금으로 쓰기 위해 작은 월급을 쪼개 모았다. 또한 현지인들과 좀 더 가깝게 어울리고 교감하기 위해서 틈틈이 일본어를 공부하며 여행을 준비하였다.
그렇게 착실히 준비한 2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그토록 꿈꾼 두 번째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이 글은 그 두 번째 자전거 여행을 담은 여행기이다.
사진 출처: 익스트림 무비(포스터), film-grab.com(스틸컷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