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4시. 원래 계획은 5시였는데 전날에 알람시계를 잘못 맞춰 계획보다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늦은 것도 아니고 일찍 일어났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비몽사몽 하며 일어났다.
그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자전거로 국내 종주 코스를 달렸기에 자전거 여행은 여러 번 경험했고 해외로의 자전거 여행도 과거에 한번 간 적이 있어 익숙했지만 당시는 배로 간 것이었고 비행기로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비행기 시간은 13시 30분이었지만 가서 혼란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전날 공항에 미리 가기로 했다.
씻고 출발하기에 앞서 3개월간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로 짜장밥을 먹었다. 이제부터 3개월간은 일본에 가면서 한식 메뉴도 아닌 뭔 자장밥이냐 싶겠지만 의외로 가장 한국적이면서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음식이 한국식 짜장 이기에 여행 전 마지막 메뉴로 충분했다.
준비 만전!
식후 최종적으로 소지품 점검 후 6:30에 부른 콜밴을 타고 출발하여였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다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발장에 카메라를 놓고 온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러나 달리는 도로 한복판이라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냥 3개월간 그냥 휴대폰으로 찍을까 했으나 과거 핸드폰만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했기에 결국 아버지께 연락하여 염치 불고하고 지나가시는 길에 잠깐 터미널에 들려서 카메라를 가져다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니 알았다고 하셨다.
멍청하고 멍청한 이재현. 어젯밤 짐을 그렇게 체크해놓고 서둘러 나오다 카메라를 현관문 앞에 놓고 오다니.
자전거를 싣지 못하나 걱정했었다.
어쨌거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짐을 내리고 잠시 뒤 도착하신 아버지께 카메라까지 무사히 받은 뒤 버스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도착한 공항 리무진의 기사님께 자전거를 실어도 되냐 물어보니 버스 기사님은 내 산더미와 같은 짐을 보시더니
“아니 짐이 이렇게 많으면 택배로 부쳐야죠, 실어는 주는데 캐리어 많으면 짐 다 못 들어갈 수도 있어요. 그때는 택배로 부치세요.”
라며 짜증을 냈다. 평소 이거 비슷한 양의 짐을 지고 다녔고 버스에도 문제없이 실었기에 조금 기분이 불편했다. 하지만 다른 승객들이 짐을 싣기 시작하자 버스 기사님의 말이 이해됐다. 공항리무진의 경우 탑승객들이 보통 고속버스나 시외버스와 달리 대부분이 1인당 1개의 캐리어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버스 화물칸의 여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정각 시간대의 버스와 달리 30분대 버스는 탑승객이 상대적으로 적었기에 자전거를 실을 공간이 충분하여 다른 사람들의 캐리어를 긁지 않고 버스에 모든 짐을 실을 수 있었다.
청주는 맑은데 인천은 비가 오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미리 출발한 덕에 시간은 넉넉하였다. 첫 비행기를 이용한 해외여행이었고 서로 기댈 일행도 없었기에 긴장이 많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찾은 바로는 공항에 도착한 뒤에는 캐리어로 손쉽게 옮길 수 있다 했다. 혹시라도 발견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도 하차장 바로 앞 입구 쪽에 짐을 옮기는 캐리어가 있어 헤매지 않고 캐리어를 바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기대감에 얼굴이 뽀송뽀송
간단히 캐리어 사용법을 익히고 인천공항 내부로 들어갔다. 청주에서 나름 일찍 출발했고 평일이니 매우 붐비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대한민국 제1의 공항답게 10시에도 한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막상 공항에 들어왔지만 어디로 가야 내가 예약한 티켓을 발권받을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도 많고 방향도 모르겠고 공항도 처음이지만 이때는 바로 질문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인포데스크 직원의 안내대로 티웨이항공 데스크로 갔는데 벌써 줄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었다. 줄 옆으로 무게를 달아볼 수 있는 저울이 있었다. 집에서 무게를 계산하며 짐을 쌌는데 체중계로 달아 본거라 그래도 혹시 몰라 한 번 더 무게를 달아보았다.
무게를 달아보니 30.1kg 가방은 10kg 집에서 재봤던 것과 오차는 0.1kg밖에 나지 않았다. 위탁수하물의 최대 무게는 32kg이기에 범위 내였다. 처음 계획을 짤 당시 무게를 대략 25kg 전후로 계산하였기에 이전에 미리 예약한 추가 무게 값은 25kg이었는데 실제 무게는 30kg으로 예약치 보다 5킬로 넘었다. 하지만 추가 비용만 내면 실어주니 문제는 없다.
무게는 괜찮으니 이제 미리 수하물 수속이 가능한지 항공사 직원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불가능하고 탑승 3시간 전부터 가능하다 했다. 일단 지금은 셀프티켓만 미리 뽑으면 되는데 비행기 시간이 13:10이니 10분 뒤 다시 오라 했다. 내가 첫 비행기다 보니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했는데 공항사 직원들은 싫은 내색 한번 안 하고 모두 대답해주고 도움을 주었다. 특히 모히칸 머리를 한 한 체격 좋은 남직원이 정말 친절했었다. 여하튼 티켓팅 하기 전에 10분 정도 시간이 있으니 공항에서 유심 발급이 가능한지 조사해 보았다.
원래 계획은 일본 현지에서 일회용 유심을 이용하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한국에서 하는 가격이랑 비슷하다면 한국에서 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어 통신사를 찾아가 보았다. 먼저 2년 전 이용했던 유심 스토어에 전화하여 당일 발급이 가능하냐. 최소 하루인가 이틀 전에 신청을 한 뒤 공항서 받는 것이기에 불가하다 했다. 혹시나 해서 skt kt LG 등 공항에 입점한 로밍센터에 물어보니 그곳들은 로밍과 포켓와이파이 상품을 당일 구매할 수 있었지만 가격이 쓰기 너무 비쌌다. 한 3~4일 정도 가는 것이라면 이용할 만하겠는데 3개월간 이용하기엔 너무 비쌌다. 그 값으로 차라리 맛있는 것을 한 번 더 사 먹지. 결국 원래 계획대로 일본에 도착하여 현지에서 e-connect의 무제한 유심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짐이 너무 커서 눈치 보였다.
유심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다시 티웨이 데스크로 가서 티켓팅을 하고 위탁 수하물 맡기러 갔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수하물 수속을 마무리하던 중 가방에 들은 금속제 수리 도구들이 생각났다. 혹시나 그것들을 기내에 갖고 갈 수 있냐. 직원에게 물어보니 날붙이는 아니지만 금속이라 불가능하다. 했다. 게다가 자전거 자물쇠 또한 불가능했기에 데스크 옆 공간에서 짐을 풀어 금속제 물품은 전부 위탁 수하물로 넣었다. 그렇게 나온 무게가 32.0kg 근데 여기에 자물쇠를 얹으면 32.5가 나왔다. 안되나 했는데 데스크 측에서 직원들끼리 잠시 이야기하더니 융통성 있게 32kg 무게 값만 받고 비행기에 실어 준다 했다.
무사히 통과하여 나온 최종 산출 금액은 비행기 티켓값 포함 26만 원, 비행기 삯이 6만 원인데 수하물 비용으로만 20만원이 나왔다. ㅋㅋㅋㅋㅋㅋ큐ㅠㅠ
계산한 뒤 짐을 다시 받아 항공 수하물 위탁 데스크에 짐을 부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공항 음식점 물가가 너무 비싸 어슬렁거리던 중 버거킹을 발견했다. 버거킹! 갓거킹! 킹거킹! 이런 패스트푸드 체인이야 말로 놀이공원 공항 스키장 등에서 호갱안당하고 유일하게 일반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다! 그리고 패스트푸드 체인 중에 갓거갓보다 더 나은 데는 없었다.
갓트로치즈와퍼 JMT
그렇게 선택된 오늘의 점심메뉴는 콰트로치즈와퍼 라지 세트. 킹거킹의 갓퍼는 짱짱 크기 때문에 언제나 버거킹에서의 햄최몇은 1개였다. 매장 내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언제 출국 수속을 할지 계획을 세웠다. 이전에 부산에서 일본을 배로 갈 때 출국 수속에 30분밖에 안 걸렸다. 비행기도 비슷하겠지만 이번엔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거니까 안전하게 미리 1시간 일찍 가자. 하고 계획을 세우고 여유롭게 햄버거를 먹다 예정대로 12시 20분에 비행기를 타러 갔다.
수속 전에 일본 가서 쓸 샴푸와 바디워시를 구매하기 위해 잠깐 올리브영에 들러서 스웨거를 구매하고 탑승수속을 시작했다. 금방 통과하리라 예상했는데 시작부터 딱 걸려버렸다. 줄에서 시간 많이 낭비했는데 기내 수하물 검사 중 x-ray에서도 딱 걸려버린 것이었다.
수하물 중 문제 된 물건은 고추장 된장 그리고 방금 산 화장품이었다. 고추장 된장 등은 원래 안 되는 물품이었고 화장품의 경우 용량 초과로 불가했다. 배 탈 때는 다 허용해 줬는데 비행기는 불가하다니....
어찌해야 하나 발만 동동 구르는 나를 보며 직원 분은 단호하게 여기에 버리고 가거나 항공 화물 수속하는 곳으로 가서 다시 짐으로 부치거나 해야 한다 했다. 하지만 시간은 벌써 12시 50분이었다. 그리고 표에는 탑승은 출발 시간 15분 전에 종료된다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는 뜻은 못해도 13시 5분까지는 탑승장에 가야 한다는 것인데 남은 시간은 겨우 15분 남짓이었다.
완전히 X 된 지금이야말로 빠른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잠시 고민하다 빠르게 버리기를 결정. 고추장 된장과 새 화장품 3개. 합 3만원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고추장 된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방금 구매한 내 화장품……. 아직 포장도 안 뜯었고 영수증도 아직 지갑에 들어 있는데 그대로 쓰레기통 직행이라니. 너무 아까웠고, 나의 미숙함이 멍청함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냐 마냐 26만원이 날아가냐 마냐 하는 촉박한 상황이었기에 비행기 탑승구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여권을 찍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 넓은 터미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지하철이 나왔다. 지하철??? 뭔 지하철이냐, 여기는 공항이지 지하철 타는 데가 아니었다. 도대체 뭔가 싶어 지나가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인천공항에는 해당 번호의 탑승장은 따로 있어 거기까지 지하철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재현아 시골 정보를 찾아오면 어떡하니 ㅠㅠㅠㅠ’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공항 다음 전철은 5분 뒤에 와서 비행기 탑승장에 도착하니 13:05이었다. 이제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내 탑승 게이트로 뛰려는 그때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일단 뛰면서 전화를 받으니 티웨이 항공 승무원이었다.
이재현씨 본인이 맞는가, 오늘 타는 것이 맞는가. 묻기에 달리며 헉헉거리며 가는 중이라 하니 직원은 얼른 오라 재촉했다. 오늘 출발일이라고 나름 머리의 각을 열심히 세워놨는데 달리느라 난 땀으로 머리는 망가진 지 오래, 게다가 배낭의 무게로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지불한 비행기 삯 26만원이 눈앞에 아른거려 멈출 수가 없었다.
비행기 삯! 26만원!
수속할 때 내가 써보지 못한 내 화장품 3만원!
티웨이 항공은 128번 게이트. 현재 위치에서 엄청나게 멀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을 허투루 할 수 없었기에 미친 듯이 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그래도 뛰었다. 한참을 달린 거 같은데 아직 126번 게이트였다. 땀이 콧등에 흐르고 머리도 다 헝클어져 엉망이 되었는데 어쩐지 나 홀로 집에 2의 온 가족이 지각하여 정신없이 달리던 장면이 생각났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되지 못해 못하고 빠르게 한 5 발자국 걸었다. 조금 살 것 같구나 하는데 승무원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어디냐 하기에 126 보인다고 하니 얼른 오라고 다시 재촉받았다. 좀 걸으며 숨을 고르고 싶었으나 지갑 속 스웨거 영수증의 힘을 빌려 체력을 쭉 쥐어짠 끝에 겨우 128번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늦으신 어르신들과 아슬아슬하게 탑승에 성공할 수 있었다.
완전히 지쳐버렸어
반쯤 넋이 나간채 숨을 헐떡거리며 내 라인으로 걸어가 위쪽 수납공간에 수하물을 넣고 내 자리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니 그제야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예전 수학여행으로 비행기를 탈 때랑 지금의 느낌이 매우 달랐다. 예전에 학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 갈 적에는 친구들과 단체로 가서 그런지 그냥 무덤덤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가슴에 설렘이 가득했다. 짐을 쌀 때의 고뇌가 어떠했든 탑승까지의 우여곡절이 어떠했든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불안함이 어떻든.
지금은 그저 앞으로 겪을 모험들로 밝게 설레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청주 출발 인천행 정각 버스는 직행, 30분 것은 중간에 인천 송도 쪽을 경유해서 간다. 버스 예약할 때도 정각 시간대의 버스는 대부분의 만석인데 반해 30분대의 버스는 자리가 꽤 여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