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현 Apr 05. 2019

일본 끝에서, 끝으로
(4800km 자전거 종주기)

DAY+1 여행의 시작(2)

그린이: @artdadalee


힘차게 날아 오른 뒤 순항하던 비행기는 삿포로 근처에서 기류 불안정으로 막 흔들리기도 했다. 창가 자리였기에 밖을 보니 탁 트인 하늘이 보였지만 그 옆의 비행기 날개도 바람에 의해 막 흔들리고 있었다. 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기체도 흔들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느낌 들어 은연중에 영화 노잉의 비행기 추락신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일없다는 듯이 승문원 분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흔들리는 기체에서 음료를 서빙하고 기장님은 평온한 목소리로 기상상황 때문에 좀 흔들릴 거라는 기내 방송을 하셨다. 

(* 기장 분들 월급 인상 연봉 인상 인정 찬성이라고 생각함. 베스트 드라이버! 

     -이글을 쓸 당시 한진 회장의 파일럿 비하 발언 이슈가 있었음-)     


드넓은 북해도의 평야가 설렌다.


한참을 날아갔을까. 북해도에 가까워지는 듯 구름의 바다였던 풍경은 어느새 넓디넓은 평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내일부터 앞으로 쭉 달릴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하여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설렘을 가득 안은 비행기는 불안정 기류를 뚫고 무사히 일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짐을 찾기 앞서 입국 수속을 시작하였다. 이전에 배 타고 왔을 적에는

Q. 여행 목적에 대해 - A. 자전거 캠핑, 

Q. 묵을 곳은? - A. 캠핑. 

정도의 간단한 질답으로 그냥 문제없이 통과한 데다 힘내라는 응원까지 받았는데 비행기 입국 수속은 좀 더 까다로운지, 아니면 나의 이번 여행 계획이 3 개월짜리 노비자 기간을 꽉 채우는 장기여행이라 그런지 몰라도 직원은 입국허가 대신 잠깐 옆으로 빠져 달라 했다.    

  


출발 전에 왕복표도 미리 예매했고 숙박도 캠핑이기에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상하다. 직원의 말론 들으니 호텔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했다.  

     


아까 입국 심사할 때 일본어로 이야기했는데 뭐 잘못 말했나 싶었다. 일본어가 아직 익숙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오해를 만들 바엔 차라리 영어가 더 정확한 전달이 가능했으므로 영어로          

“자전거 여행자라 캠핑을 할 예정이고 하루 달릴 수 있는 거리는 그날그날 다르기 때문에 확실히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예약할 수가 없다.”

고 설명했는데 문제는 직원들이 영어를 못했다.  


‘아니 무슨……. 공항인데 영어를 못해……. ’  

   

잠깐 기다리라더니 다른 직원을 불러왔고 결국 나는 다시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설명을 하는 중 점점 직원들이 나와서 하나둘 나를 둘러쌌기에 매우 긴장했다.     



불려 온 직원에게도 똑같이 설명하니 그 직원은 

“당신의 계획과 이야기는 이해하지만 일본 입국 시 첫날은 어디서 묵을지 확실히 해야 한다.”

하기에 곰곰이 생각하다. 2일 차에 묵을 예정이었던 삿포로 인근의 라이더 하우스에서 오늘 묵을 예정이다.라고 둘러대니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공항 직원분이 입국 승인을 해주며 

“업무상 절차이기에 어쩔 수 없다. 당신이 범죄자가 아닌 것도, 일본에 온 것이 여행임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일본 입국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규칙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다소 딱딱하게 구는 것은 절차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고 했다. 물론 나도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다지 화가 난 것도 아니었기에 웃는 얼굴로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모든 게 일본어 낯설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 입국 후 위탁한 자전거를 받고 캐리어에 짐을 실은 뒤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정보 얻고 공항 내 로손과 와이파이 샵에 갔다. 로손에서 판매하는 BIC sim이 있긴 했는데 와이파이샵과 로손 둘 다 내가 사려 했던 econnect 는 없었다. BIC 심은 삿포로에서도 맞추는 것이 가능했기에 일단 현재 쓰는 심은 일시정지 해 놓고 와이파이에만 의존하여 삿포로까지 이동, 삿포로의 BIC Camera에서 유심을 맞추기로 결정하였다.     



삿포로를 향해 출발하기에 앞서 자전거를 조립해야 했기에 공항 내 인포센터에 물어보니 아무데서 하면 안 되고 공항에 따로 사이클 스테이션이 있다고 했다. 공항에 따로 사이클 스테이션이라고 하는 공간이 존재하다기에 신기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이름만 사이클 스테이션이었지 그냥 자전거 주차장이었다. 그냥 옆에 공기주입기가 있다는 것뿐.     



박스에서 자전거와 바퀴와 공구를 꺼낸 뒤 본격적인 자전거 조립을 시작하였다. 예전에 자전거 핸들 잘못 분리했다가 재조립에 실패하여 샵에 가서 조립한 적이 있었기에 중간에 잘못 조립하면 어쩌지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몇 번 연습을 해 놓은 덕에 헷갈리지 않고 무사히 조립을 끝마칠..... 줄 알았는데 공구를 아무리 뒤져봐도 박스 안에 페달 렌치가 없었다.


     

공구를 빌릴 곳도 없었지만 임시방편으로나 손으로 나사를 조일 수 있고  나중에 샵에서 조이든 다이소에서 공구를 사던 후에 해결하면 되었기에 일단 지금은 손으로만 최대한 조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꽉 조여 놓았다.      

대충 조립한 뒤 구동계 중 휜 곳이 있나 어디 프레임에 흠집 난 곳이 있나 크랙 발생한 곳 있나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박스에 없던 구멍이 뚫려 조금 걱정되었지만 다행히도 자전거는 아무 문제없이 잘 조립되었고 나도 어디 다친 곳 없이 잘 도착하였다. 굳이 문제라 한다면 렌치를 분실했다는 것과 갖고 온 로프가 1개뿐이라 가방을 고정할 수 없다는 것 정도, 뭐 이건 나중에 다이소에서 보급하면 될 일이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조립 완료!


대충 정리하고 이제 출발하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였다. 원래 계획은 오늘 내로 삿포로에 진입하는 것이었는데 이미 6시인 데다 날씨도 잔뜩 구름이 낀 상태였다. 애매한 시간이라 바로 출발할지 아니면 안전하게 공항에서 하루 노숙한 뒤 내일 출발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먼저 안전하게 공항에서 노숙하는 것이 가능한지 직원에게 공항이 24시간 이용 가능 시설인지 물어봤다. 직원 말로는      

“공항을 24시간 개방하는 게 아니라 위에 호텔 쪽 로비 데스크 인가만 24시 개방이기에 공항에서 노숙하려면 호텔 쪽의 벤치나 의자에서 해야 한다.”     

고 하였다. 시간은 6시. 해가 지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어둑어둑해졌고 하늘에도 구름이 잔뜩 껴 있는 데다 일기예보도 내일 날씨는 ‘비’이었다.     

이대로 공항에서 노숙하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허나 내일 비가 쏟아질 경우까지 생각하면 미치노에키로 이동하는 편이 더 나았다. 미치노에키는 공항보다 식량을 보급하기도, 전자기기를 충전하기도, 휴식하기에도 훨씬 더 나았기에 차라리 오늘 조금 고생하더라도 미치노에키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거리도 5km밖에 되지 않았기에 오후 6시가 넘어 어두워질 시각이었지만 과감히 이동하기로 결정하였다.      



5킬로 정도면 천천히 가도 30분 거리므로 마음을 다잡고 안장에 앉으니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마구 쏟아지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부슬비 정도였다. 애초에 비 맞으면서 달리는 것도 각오했고 5km쯤이야 금방이기에 힘차게 시작한 일본 여행의 첫 페달질은 비와 함께였다.      

아직 유심칩 개통이 안 되어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출발하기 전에 미리 찍어 놓은 오프라인 지도에 포인트를 참고하며 달렸다. 도로에서 빠져 들어간 갓길에는 가로등이 하나 없어 매우 어두웠지만 일단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었다. 좀 더 나은 루트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자전거 통행이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였기에 그간의 경험과 미약한 실리콘 라이트에 의존해 최대한 조심하여 과속 않고 안전운행 모드로 길을 더듬어 가며 달렸다.     

미약한 불빛에 기대어 밤길을 달리던 중 내리막에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속도를 붙이다 안전을 위해 슬슬 브레이크를 잡아주려는 순간 갑자기 길이 포장도로에서 수풀로 바뀌었다. 마치 누가 준비해놓은 함정처럼, 크레바스에 빠지듯 수풀은 갑자기 튀어나왔다. 매우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핸들을 조작하여 다시 인도로 돌아오려 했다. 하지만 그때 앞에 갑자기 검은 물체가 나타났다. 급히 핸들을 틀었지만 피하지 못하였고 나는 그대로 ‘그것’에 박아버렸다.     

갑작스러운 충돌로 인해 자전거에서 튕겨나가 수풀 위로 엎어졌다. 다행히도 가방을 메고 있던 지라 충격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웃긴 것은 공중에 붕 떴던 그 찰나의 순간 내의 몸보다 망가졌을지도 모를 자전거를 앞서 걱정했다는 점이다.      


수풀 위로 넘어져 처음에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조금 있으니 갑자기 왼팔과 갈비에 통증이 밀려왔다. 예전에 여행하다 손목을 접질리고 한동안 고생을 하였는데 여행 시작부터 부상이면 어쩌나 싶었다.      

국내에서의 사고라면 어디 병원을 가든 보험처리가 되겠지만 일본에서 국민보험 처리될 리가 없으니 돈 문제로 더더욱 걱정이었다. 자가 진단을 위해 팔을 위아래로 저어도 보고 허리로 좌우로 돌려보며 체크를 하는데 아까보다 고통이 조금 완화되어 갈비 쪽도 시큰거릴 뿐 더 이상의 다른 부위의 통증은 없었다.     


그간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바로 아픔 곧 완화 문제없음 

*바로 안 아픔 곧 악화 큰 문제

라는 나의 부상 판단 지침에 따라 몸에 큰 이상은 없다 판단한 뒤 내 자전거를 확인하러 뛰어갔다. 자전거로 돌아가 보니 내가 부딪힌 미확인 물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나무였다. 다행히 그리 큰 나무는 아니었기에 충격으로 캠핑장비가 로프에서 빠져나왔을 뿐 배낭의 우쿨렐레도 자전거도 모두 멀쩡했다.      

정신을 차리고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갑자기 수풀이 나온 부분은 급한 좌회전 구간이었고, 내가 엎어진 곳 바로 앞쪽엔 배수를 위한 작은 도랑이 있었다.  만약 나무에 박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쭉 갔으면 앞바퀴가 도랑에 처박혀 자전거 휠이 망가졌을 테고 나는 그대로 아스팔트 도로 위로 내동댕이 처박혔을 것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은가. 만약 나무에 부딪히지 않았다면 큰 부상 + 자전거 파손이었을 텐데 이 정도로 끝난 것이  오히려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사고 후 자전거


나는 속으로 한국으로부터 여기에 오기까지 시종일관 운빨이 참으로 X망인데 시작부터 이런 걸 보니 도대체 나중에 운이 얼마나 좋으려 이러는가. 싶으면서도 팔자 좋게도 벌써 여행기에 쓸 에피소드가 생겼네! 신난다! 하는 것이었다.     

나의 어이없는 긍정적 사고에 혼자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공항에서 그냥 노숙할걸. 하고 잠시 후회도 했다.     



여하튼 사람도 자전거도 멀쩡하니 다행이었다. 짐을 다시 단단히 리어렉에 매고 마음을 추스른 뒤 다시 출발하려 오르막 기어를 넣는데 약간의 이상이 있었다. 아까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고장 났는지 레버를 밀면 뭐에 걸린 것처럼 고정되어 마치 볼트액션 마냥 다시 뒤로 당겨줘야 했다. 불편하긴 해도 일단 기어는 제대로 들어가니 내일 자전거 샵에서 정비받기로 하고 지금은 서둘러 미치노에키로 서둘러 가기로 했다.


이타샤를 보니 일본이 맞구나!


이후 아까 사고는 신고식이었는지 아까의 사건 이후로는 별 탈 없이 밤길을 달려 무사히 미치노에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는 좀 쉬나 싶었는데 문제는 도착하고 나서 보니 오늘 노숙하려던 장소는 개방형 미치노에키가 아니었다. 어차피 미치노에키는 보통 6시면 모두 장사가 끝나고 그 이후에는 눈치 안 보고 텐트를 치고 자도 괜찮기에 개방 여부는 큰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24시간 영업하는 로손 편의점이 딸려 있었다는 것이었다.     



보통 같으면 그냥 텐트 치고 잤을 텐데 24시 편의점이 딸린 미치노에키는 처음이라 얼굴에 철판 깔고 그냥 노숙해도 되는가 싶었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문명인으로써의 매너를 지키기 위해 로손 직원에게 여기 텐트 쳐도 되냐 물어보기로 했다. 


헌데 내 기대감을 무참히도 박살 내어 근무 중이던 남직원은 단호히 여기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은 안 된다 하였다.    

 

공항에서 이곳만 보고 왔고 넘어지면서도 여기서 편히 쉴 것만을 생각하며 왔는데 안 된다니! 

당황하였지만 차분히 일본어로 

“나는 현재 자전거로 여행 중이다. 학생이라 돈이 없어 캠핑을 하며 여행 중인데 어디 호텔을 갈 수도 없고 밖에 비가 와서 어디 갈 수도 없다. 어떻게 안 되겠냐”

하니까 남직원이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여기는 힘들고 미치노에키 앞 근처 공원에…….”

라고 말끝을 흐리기에 

“밖에 비 때문에...ㅠㅠ ”

하며 울상을 지으며 다시 비 때문에 난처한 상황임을 강조하니 잠시 고민하던 남직원은 상관으로 보이는 다른 여직원을 부르고는 둘이서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 둘의 대화를 멀뚱히 듣다가

“나는 매우 일찍 일어난다. 오전 6시 전에 정리하고 늦더라도 가게 오픈 이전에 모두 정리하여 출발한다. 어떻게 안 되겠냐” 

하고 호소를 하니 여직원은 잠시 여기에 기다려 달라 하고는 밖에 이리저리 다니더니 다시 돌아왔다. 여직원은 나에게 

“네가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질 터이니 텐트를 치고 자도 좋다. 허나 편의점 입구 바로 앞은 안 되고 조금 떨어진 처마 밑이라면 텐트를 치고 자도 된다.”

며 허락을 해 주었다. 

물론 그녀는 

“다만, 아침 일찍 깨끗이 정리하고 떠나야 한다.”

는 단서조항도 달았다.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을 당시 직원이 공원 쪽과 미치노에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것을 보아 내가 텐트 칠만한 곳을 봐준 듯하다.)      


다행이야


만약 예전처럼 일본어를 할 줄 몰라 어벙하게 그대로 있었다면 거절당한 채  어디 가서 비 맞고 벌벌 떨며 노숙했을 텐데 일본어를 공부한 덕에 내 상황도, 계획을 상세히 설명하여 텐트 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첫날부터 공부한 것을 잘 써먹고 나니 뿌듯했다. 2년 전 여행할 당시는 완전한 벙어리요 눈뜬장님이었으니 말이다.      


지난 2년간의 습득한 일본어와 친절한 직원 덕에 처마 밑에 텐트를 무사히 쳐 비 걱정 않고 일본의 첫날을 보낼 수 있었다.      


고마우니 가게에 물건이나 좀 팔아주자 싶어 저녁 메뉴는 편의점에서 해결하였다. 메뉴는 컵라면, 로손의 골드마스터 맥주와 컵 야끼소바 그리고 100엔짜리 빵을 먹었다.      


저 야키소바의 엄청난 양을 보라!

 

골드마스터는 500ml 맥주로 저가임에도 한국의 밍밍한 맥주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외국 맥주 메이저 라인에 비해선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싼 맛에 먹는다 하는 정도?     

컵 야끼소바의 경우 면 200g 대용량 사이즈의 야끼소바였다. 몸이 조금 젖어 국물 있는 따듯한 것이 먹고 싶었지만 뚜껑의 북해도 한정 상품이라는 말에 낚여 구매 결정하였다. 맛은 예전에 동남아 마트에서 먹었던 미고랭 같은 맛과 비슷해서 거부감은 없었지만 정말 대단한 점은 면 200g이었다. 



숫자로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 양이지만 물을 붓고 3분이 지난 뒤 뚜껑을 열었을 때의 범람하는 면의 기개와 한입 먹으면 먹어서 빈 공간만큼 면이 불어 채워지는 모습은 마치 호쿠사이가 그린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같았다. 게다가 200g의 위엄을 간과하고 맥주까지 함께 마시고 있었기에 탄산으로 벌써부터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허나 25년 뚱보 인생, 고작 컵라면 따위에게 완식(完食)의 위기를 느껴 완식에 실패한다는 것은 내 먹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물을 빼고 가스를 빼어 혼란에 빠진 위장을 진정시키고 먼저 줄지 않는 야끼소바 본대부터 침착하게 궤멸시켰다. 이후 후방을 노리는 느글거림을 우회한 맥주로 느글거림의 측면을 공격하여 와해시켜 완승으로 이끌었다. 적(?)의 본대를 무참히 짓밟아준 뒤 남은 것은 이제 후방에 저항의지가 없는 작고 연약한 모닝롤빵 뿐이었다. 오늘 적의 수급은 충분히 베었기에 일단 병력을 물리고 남은 패잔병들은 내일 천천히 공략해 줄까 했는데 이 녀석들은 알고 보니 아주 속이 검은 녀석들이었다. 나를 속인 이 녀석들은 플레인 모닝롤빵으로 위장한 초코 크림이 들어있는 미니 크림빵이었다.   


   

구매할 때 겨우 100엔짜리 저가 빵이라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식감이 마치 전문 빵집 제품 마냥 부드러웠고 안의 초코도 끈적 달달하여 후식으로써 손색없었다. 요 오 오망한 것 감히 나아아를 능멸하다니 너무나도 괘씸하여 5개 중 2개를 먹어 흠씬 혼내주었다.      



만족스럽게 후식까지 먹은 뒤 정리하고 침낭에 누워 내일 플랜을 생각했다. 일단 내일 날씨가 비였기에 우중 라이딩을 할지 아니면 늦더라도 비가 그친 뒤 안전히 출발할까 그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잠이 들었다. 


 

++ 후에 집에서 사진 정리하면서 알게 된 건데 로손의 골드마스터를 만든 회사는 하이트 진로였다(!) 할 수 있으면서 안 한 것이라 더 괘씸하네.     


++처음에는 이번 여행에는 조금 가볍게 가기 위해 캠핑 장비를 포기하고 싶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3달간 캠핑(=노숙)을 하려 하겠는가 하지만 군인 월급에서 나온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었기에 숙박비를 아끼고 식비에 예산을 더 편성하기 위해 첫 여행과 마찬가지로 캠핑(=노숙)을 하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 끝에서, 끝으로 (4800km 자전거 종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