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틀간의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은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더웠다! 평소 땀을 잘 흘리지 않는 나인데 티셔츠 안으로 땀방울이 또르르, 뚝뚝 떨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땀 흘리면서 듣는 밴드 음악은 너무나 황홀했다. 엘르가든의 미쳐버린 라이브나 검정치마의 할리우드를 이 계절에 듣는 호사라니.. 큰 기대없이 출발한 인천행 이벤트는 큰 감동이 되었다. 올여름의 일상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7월에 8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인턴사원을 거쳐 정식 직원으로 함께한 이 회사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은 선후배와 동기들이 있어 힘들게 버티는 하루가 아닌, 웃음으로 하루를 채워갈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참 복도 많았구나. 사직서를 제출하자 (예상은 했지만, 더 많은) 동료들이 퇴사 소문을 들고 내게 물어왔다. 청첩장을 돌릴 때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왜 지난 퇴사자들은 얘기해주지 않았나.. 개인사(출산 이슈)가 생긴건지, (혹시나..)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사업을 할 생각인지. 이 안정적인 회사에서 더 '안정적인 회사'를 찾아 이직하기란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전제로 한 것들이 단골 질문이었다. 이직하고자 하는 회사가 대기업이 아닌 것은 주변인들의 걱정을 사게 했다. 부모님은 큰 딸의 직장 명함에서 멋들어진 대기업 타이틀이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얼마나 행운인지. 남편은 예전부터 내게 퇴사와 이직을 적극적으로 권유해왔다. 무얼 하든 응원해주는 그가 있어 두려움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내가 더 잘할게..)
이어 내심 가장 걱정이 되었던 부모님도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줬다. 어쩌면 내 기질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재밌어하는 일을 하면 더 신나게 잘 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꼭 청춘 소설에서 볼 법한 엄마의 말. 얼마나 행운인지.
퇴사하자마자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발리를 다녀왔다. 길지 않은 일정이라 주로 '우붓'에서 작정하고 쉬기로 했다. 트래킹 투어나 일출 투어도 없었지만 끝없는 산과 나무를 바라보며 마셨던 커피를 둔 채 서울로 돌아왔을 땐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 나날들이 남아 있었다. 손으로 적은 일기장과 여러 메모장엔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문장만 수두룩했는데, 그만큼 내게 퇴사와 이직은 인생의 큰 변화인 것이 확실했다. 인간의 삶이란 예상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소속과 조직이 사라진 틈을 타 아주 오랜만에 걱정 없는 여름을 보냈다. 가장 가까운 매미 소리를 들으러 계곡과 바다, 숲을 향해 여름을 쫒았다. 홀로 묵호에 가서 강원도의 기운을 담아오고, 부산에선 일주일 넘게 엄마밥을 먹으며 여고생의 기분을 가지기도 했다. 홀가분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루하루를 채웠다. 음악도 틀지 않은 방 한 가운데에 대자로 누워 가만히 천장만 바라보는 시간마저도 좋았다. '아무런 일이 없는' 나날들. 이 모든 것이 내가 지난겨울과 봄에 힘들게 낸 용기에 대한 보상 같았다. 꿈같은 여름들을 보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가을의 문턱을 넘는 '입추'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