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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Paper Frog Mar 23. 2023

베트남에선 이게 일상이야_4

모국어의 부재

모국어가 주는 고통이 있다.

너무 잘 알아 먹겠는 것이다.


베트남에 살고 있지만, 한국계 기업에서 근무중인 나는

하루종일 모국어의 굴레 안에 갇혀있다.


대부분의 실무를 베트남 직원들과 함께 하며,

베트남어로 처리하지만,

일을 하는 주체는 베트남인이고,

결국 내가 보고 해야하는 주체는 한국인이기에,

나는 그 사이의 간극을 메꾸며,

실무를 보면서 만든 백데이터나, 메모들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모국어를 쓴다.

처음 외국어를 배울 때는 말하고 싶은 문장을 떠올릴 때, 이야기를 들을 때


한국어 <=> 외국어의 머리 속 번역 과정을 거쳤다면,

이제는


외국어 <=> 외국어의 단계까지는 온 것 같다.


내가 어떤 언어적인 센스가 뛰어나서,

이런 단계까지 온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은 과도기에 가깝고,

문법적으로 어색한 문장을 내뱉기 일쑤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점은

내가 모국어 이외의 언어로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 나온 이 문장이

내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모국어가 때로 나를 할퀴고, 상처내고, 고문하기도 한다.

모국어를 다루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늘 편안하다는 뜻은 아니다.“



닭들이 뛰노는 한 베트남 로컬 카페

내가 로컬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단순히 맛있는 음료와 음식이 있어서가 아닌,


‘모국어로부터 완벽히 멀어질 수 있는 장소라서’


머리 속에서

외국어 <=> 외국어

생각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으나,


외국어는 외국어다.

나는 아직 그들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는 놓치고 만다.


주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하나의 주변음으로서 나에게 올 뿐이고,

몇 가지 너무 쏙쏙 귀에 박히는 단어 몇 개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게 참 좋다.



instagram : @JIAN_PAPER_FR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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