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에게 고백한 뒤, 아주 분명하게 거절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것이야말로 3년간의 짝사랑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늘 보고 싶었고 대화하고 싶었지만 내게 눈길도, 기대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짝사랑의 감정에 끌려다니다 6월의 어느 날, 더는 이런 헛헛하고 허망한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겠다 결심했다. 그쯤 헬스를 아주 잠깐 하고 있었는데 몸에 소량의 근육이 생기면서 마음에도 힘이 생겼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는 도쿄의 한 대학교에서 디자인경영을 가르치는 한국인이었다. 그 사람을 만나려면 일본에 가야 했다. 나라는 인간은 비행기를 혼자 타거나, 혼자 여행 가거나, 고백한다는 건 엄두도 못 내는 겁쟁이였다. 3개의 미션을 한꺼번에 해내야 했지만 망설여지지 않았다. 비행기가 하늘에서 추락할 것처럼 흔들려도, 도쿄 시내에서 길을 잃어도, 그에게 거절당한다고 하여도. 지금보다는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내 고백 여행은 2018년 7월 7일, 토요일 아침에 출발하는 1박 2일 일정이었다. 꼭 필요한 것만 챙겨 배낭 하나만 단출히 메었다. 새벽 4시 30분 공항행 리무진 안은 고요했고 운전기사님들의 무전 치는 소리만이 왔다 갔다 했다. 저 무미건조한 기계음에 어지러운 몸을 기대고 뻑뻑한 눈을 감았다. 며칠 전부터 잠을 잘 자지 못하였는데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담담해지기 위해 최대한 멍해지기로 했다.
오전 10시에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도쿄 시내로 가는 길에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가끔 보내는 안부 인사에는 답이 없었지만, 도쿄에 와 있다고 하니 이번엔 답변이 왔다. 한 시간 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했다. 시부야의 한 백화점 앞에서 17시에 보기로 약속을 잡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숙소 옆 Tully’s coffee에서 뜨거운 오늘의 커피를 마시며 부족한 잠을 카페인으로 채웠다.
한 시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눈 뜨기도 어려운 날이었다. 바람을 피해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숨을 크게 잘 쉬도록 도와줄 것만 같았다. 예상한 대로 정확히 17시가 되자 지하철 출입구 계단을 올라오는 그가 보였다. 그는 1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일 중독자이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었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자기 할 일이 많아 1분도 아까운 사람인데, 1시간이나 원치 않는 시간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 피곤했을 것이다. 나는 저절로 주눅이 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주말 저녁 시부야의 거리와 식당들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자리 찾기가 쉽지 않아 몇 분을 헤매다가, 한 골목에서 적당히 북적대는 식당을 찾았다. 이것저것 퓨전요리를 파는 식당이었다.
그 사람은 올리브기름과 간장 베이스의 일본식 파스타를, 나는 쇠고기덮밥을 시켰다. 음식을 먹다 보니 분위기가 좀 풀어지길래, 때가 되었다 싶었다. 나는 순차적이고 차분하게 내가 기억하는 순간,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말하였다. 고맙게도 그 사람은 내 말을 경청했고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정중히 밝혔다. 그리고는, “나는 같은 마음이 아니에요”라고 말해주었다.
그 사람과 헤어진 뒤 맥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 근처 술집에서 에비슈 생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안주로 시킨 생양배추가 무지 달았다. 양배추가 달아서인지, 취한 기분 때문인지, 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끝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가벼워졌다.
숙소에 돌아와 취한 기운에 잠이 들었지만, 새벽 4시에 잠이 깨 버렸다. 신기하게도 신주쿠의 새벽 4시는 우리나라 아침 6시쯤과 같은 밝기와 분위기였다. 이미 해가 다 떠서 밖이 밝았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도, 더불어 한국에서의 6시인 것처럼 주섬주섬 하루를 시작했다. 17시 비행기니깐 14시 고속열차를 타고 공항에 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럼 그동안 뭐 할까. 울적한 건 아니었지만 뭔가를 하지 않고 멍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쳐져 버릴 것 같았다.
가방을 모두 꾸려 숙소 카운터에 보관하고. 일단 무조건 걸어보자 생각했다. 모닝커피 한잔을 하고 신주쿠에서 시부야 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도는 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도 시부야까지 잘 도착한 것 같다. 어제 그를 만나기로 했던 백화점이 보이길래 반가운 마음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제 그를 만나기 전 그에게 줄 무언가를 사기 위해 지하 1층 식품코너를 몇 바퀴 돌다가 고른 병아리 모양 쿠키. 그것을 맛보고 싶어 같은 것을 구입했다. 계란과 버터 맛이 많이 나는 쿠키였다. 그는.... 어제 내가 선물로 준 병아리 모양 쿠키를 먹었을까, 버렸을까. 그는 쿠키 같은 간식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맛없어하는 사람일까.
다시 밖으로 나와 발길 가는 대로 걷는데, 익숙한 골목길이었다. 어제 식당을 찾으려 그와 걷던 길이었다. 고백과 거절의 거사가 이루어졌던 식당이 이내 눈앞에 보였다. 문득. 어제 그가 먹던 일본식 파스타를 먹어보고 싶었다. 큰 용기를 내서 음식점에 들어갔다. 쭈뼛거리며 홀을 지나, 자리에 앉고 주문했다. 몇 분 뒤 그가 먹었던 파스타가 앞에 놓였다. 동그랗게 말려진 갈색 면 위로 연두색 완두콩이 한 알 한 알 정갈히 올려져 있었다. 완두콩을 먼저 먹은 뒤, 올리브오일과 간장으로 양념 된 파스타 가락을 몇 줄씩 포크에 돌돌 말아 천천히 씹어 먹었다. 어제 진공청소기처럼 파스타 면을 빨아들이던 그와는 다르게 아주 천천히.
그는 어제의 불편한 시간을 빨리 지나치고 싶었겠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길게 늘이고 싶었다. 최대한 오래 추억하고 싶었나보다. 파스타를 꼭꼭 씹으며 생각했다. 그는.... 이런 맛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먹기 편해서 이 음식을 시켰을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직업, 나이, 이름, 고향. 외에....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좋아했지만, 대면하고 대화를 나눈 것은 딱 세 번이었다. 16년 9월에는 대학원 디자인경영 워크숍에서는 특별강사와 학생으로 1번, 18년 1월 일본 여행 갔을 때 1번, 18년 1월 워크숍에서는 강사와 조교로 1번. 이렇게 단 3번 본 것이 다였는데, 마치 그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나와 정말 잘 맞겠다 싶었다. 진짜 그 사람을 좋아했던 건지, 그 사람을 좋아하느라 팔딱거렸던 내 마음이 반가웠던 건지 헷갈렸다.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14시 고속열차는 빠르게 신주쿠역에서 벗어났다. 3년간 한 번도 놓은 적 없는 그가, 내게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어제는 분명. 홀가분하고 좋았는데.... 고백 후 느꼈던 성취감, 해방감 같은 감정은 가벼워 날아가 버렸는지, 찹찹하고 씁쓸한 무거운 감정만이 내려앉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말끔히 끝날 줄 알았지만, 며칠 뒤부터 공허함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갑자기 눈물이 흐르고 걷기 힘들 정도로 기운이 없고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생각 없이 책을 읽었다. 아니, 그냥 들고 있었다. 여름이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쯤이 돼서야 힘듦이 말라가기 시작했고 차차, 낙엽처럼 바스러져갔다. 감정의 부스러기까지 사라진 느낌이 들었던 건, 그 다음 해 봄 정도였나. 잘 모르겠다. 언제였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 그날을 떠올려보면 우습다. ‘잊는다’는 무형의 감정을, 잘라내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어리석음 때문이다. 마음과 기억이라는 것은, 무형의 안개처럼 서서히 흩어져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건데.... 30대 중반을 훌쩍 넘어 깨달았다. 늦되다.
앞으로는 혼자 좋아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니깐. 다만, 그 감정을 또 홀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자고 생각했다. 혼자 좋아한 것이 죄라면, 그 죄값을 치르는 것이라 받아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