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를 가면. 그곳의 대형 마트나 편의점, 백화점에서 식품 코너를 꼭 구경한다. 이 지역에서는 이런 식재료로 이런 음식을 해 먹는구나! 이런 식재료의 군것질거리가 만들어지는구나! 를 알아가는 재미가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흥미롭다. 특히 여행 메이트가 같은 성향이라면 여행은 한층 원만하고 즐거워진다.
북해도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해 열차를 타고 오타루 숙소에 도착했을 때 점심 식사도 제대로 못 한 채,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춥고 지쳤고 배고팠다. 다른 일정은 다 패스하고, 숙소 근처 할인마트인 coop에서 이것저것 식재료들을 구경하고 마트에서 만들어 파는 음식들과 반찬류(마침! 타임세일! 까야악!)와 간식거리를 샀다. 숙소 1층에 마련된 라운지에서 북해도의 음식들을 맛보며 친구와 감탄했던 여행 첫날 저녁 식사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2016년부터는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는 편의점과 기념품 가게, 길거리 등에서 마음에 드는 과자나 캐러멜, 사탕, 말린 어포류 등을 가방 안에 쟁여 넣고는 걷느라 당 떨어질 때마다, 구경 다니느라 끼니를 제때 못 챙길 때마다 꺼내 먹었다. 가방에 쟁여 들고 다니던 간식거리들은, 얼마 정도 남겨진 채 한국으로 동반 입국한다.
여행지에서 걸어 다니며 먹었던 간식들을 까먹으면, 내 방 안에 있더라도 여전히 그 곳에 가 있는 기분이 든다. 사탕이 입안에서 녹아 버리고 캐러멜이 입안에서 문드러져 사라지는 짧은 순간이라도 반갑고 소중하다. 특히 일터에서는 여행에서의 추억이 눈물 나게 애틋하기까지 하다. 일하면서 계속 까먹는 바람에 북해도에서 사온 사탕 한 봉지가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원래 비행기 타는 것을 무척이나 무서워해 제주도나 해외여행을 가는 건, 가야 할 의무가 아니면 시도할 생각도 못 했는데. 2016년 여름에 친구 따라 태국을 갔다 온 뒤로는 비행기 타는 것이 무서워도 여행을 갔다. 타국의 이국적인 음식 맛도 매력적이지만, 그보다 더 매력적인, 여행의 맛을 봤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른 공간에 발자국을 내다보면 일상에서는 무뎌지고야 마는 내 존재감이 회복되는 것 같다.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감각과 마음을 발견하면서 말이다. 생소한 내가 기존의 나를 뒤흔드는 기분. 그런데, 그렇게 뒤흔들리고 나면 내 존재가 선명해진다. 존재가 선명해지면, 살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물론, 다시 일상을 살다 보면 살고 있는 건지, 죽어가고 있는 건지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로 돌아가 버리지만.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여행지에서 느꼈던 선명해진 기분을 느끼고 싶어 여행지에서 먹던 간식거리들을 남겨서 챙겨오는지도.
오늘, 사탕이 5알 남아있는 사탕 봉지에서 한 알을 꺼내 껍질을 깐 뒤 입 안에 넣었다. 북해도 여행 둘째 날, 오타루의 한 기념품 가게에서 산 사과 모양 사탕. 입 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탕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단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하던 것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았다. 단맛이 퍼져 나올수록 사탕을 사 온 기념품 가게와 그 곳을 나와 걷던 오타루 운하길, 그러다 길거리에서 딸기가 들어간 모찌를 사 먹고, 조카에게 줄 오르골을 골랐던 그 시간이 이어져 흘렀다.
눈 속을 한 발 한 발 내딛던 그때의 느낌이 지금 내 발바닥으로 복귀된다. 길가에 생크림 덩어리처럼 쌓여 있는 새하얀 눈더미 사이를 걸으며 두 발이 있음을 감사해했던 마음도 지금 복귀되고, 폐 속까지 맑게 해준 차갑고 맑은 북해도 공기 향도 지금 내 코끝으로 복귀된다. 다시 가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지금 내가 숨 쉬는 이유가 된다.
계속 선명해지기 위해, 더 자주 떠나보자고 마음먹었다. 있던 곳을 떠나야 더 살고 싶어지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