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항상 ‘이제 와서’라는 말을 반복해왔다. 관계의 타이밍은 늘 어긋났고, 나는 그들을 알아보지만,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친구든, 가족이든, 직장 동료든, 나에 대한 오해는 끊이지 않았다. 오해한 사람들은 마치 잘못 설정된 알고리즘처럼 나를 거칠게 배척했고, 정작 내게 직접 묻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나를 이해하게 되었을 땐, 나는 이미 지쳐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사과하기보다 왜 내가 그렇게 되었는지를 따졌다. 마치 자신들이 깨뜨린 그릇을 보고, 왜 깨졌냐며 원망하는 것처럼.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는 결국 나와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사람만 남았다. 순간을 함께하며 가볍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늘 트러블이 생겼다. 그들은 나를 특정한 '롤(role)'로 규정한 뒤, 그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쉽게 버리거나 불편해했다. 혹은 전혀 다른 의도로 한 말을 자신들끼리 해석해 또 다른 역할을 부여했다. 마치 대중을 상대하는 연예인처럼,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기대치에 맞춰 해석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연예인은 적어도 그 대가로 돈을 받지만, 나는 그렇지도 않았다.
더 답답한 건, 가만히 있으면 무시당하고, 자기 표현을 하면 또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규정하려 하고, 나는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그러면 또 이상한 것들이 들러붙는다. 자유로운 상태로 있으면 불안정해 보인다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이고, 마치 조용히 가만히 있는 ‘인형’이길 바라는 듯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끌리면서도, 동시에 만만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그걸 한때 ‘사랑’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건 그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수행해 주는 관계일 뿐이었다.
왜 나는 항상 역할놀이의 한가운데 있는 걸까. 왜 사람들은 나를 수직적으로 해석하고,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까. 그리고 나는 왜 그들의 기대에 맞춰야 하는 걸까. 마치 정해진 틀을 따라 살아야 하는 로봇처럼. 만약 내가 자유롭게 행동하면, 그들은 나를 불안해한다. 하지만 가벼워지면 무시하고, 무거워지면 부담스러워한다. 이쯤 되면, 애초에 내가 원하는 역할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는 내 자아를 실현해야만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직업적으로.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왜 그냥 나로 살 수 없을까. 왜 사람들은 내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늘 숨은 의미를 찾으려 할까. 그냥 가볍게 흘려보낼 수도 있는 걸, 왜 해석하고 정의 내리고 틀을 씌우려고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기 어렵다. 결국, AI처럼 말해야 하는 걸까. 감정 없이, 오해의 여지가 없게, 딱 떨어지는 말들만 하면서.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정말 내가 아닐 것 같은데.